97년 여름 연세대,
이유가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무척 심한 데모였다. 그것도 90년대 들어 유례없이 전경들이 학교 안까지 밀고 들어가 진압 작전을
펼친 초 강경 진압이었다.
몇몇 전경들은 작전중 교내에서 성난 학생들에게 방패와 화이바를 뺏기고 심하게 구타당해 머리가 깨져 이마에 선혈을 낭자히 흘리며 복귀했다.
몇 소대 누구는 방패위를 손으로 잡고 방어하다가 학생들이 휘둘러대던 각목에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땅바닥에서 잘근잘근 밟히고 있던
잘려나간 손가락을 힘겹게 찾아들고 기어들어와 복귀했다.
잡아온 학생들을 닭장차에 밀어넣기 전 대기시키기 위해 무릎꿃린후 대가리 박아 대기시키던 임시 초소에 나는 대원들과 함께 대기중이었다. 다음 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간동안 벌써 몇번째 출동인지 셀수도 없다.
씨발씨발 악을쓰며 전조가 복귀하는데 모두가 얼굴이 제정상들이 아니다. 피흘리는 놈, 부상당해 업혀들어오는 놈.. 그걸 보며 나도 깊은 분노를 느끼며 화이바를 집어들고 이 개자식들 다 죽여버린다..벌떡 일어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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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누군가 내 전투화를 잡았다. 선임이 지르는 '준비!' 라는 소리에 대원들이 모두 잠시 조용하지 않았더라면 들리지 않을만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잡혀들어와 무릂꿇린채 대가리 박고 다음 닭장차를 기다리던 삼십여명의 학생들중 한 놈이 내 전투화를 잡았다. 선임이 앞에서서 작전 지시중이었기 때문에 자세히 볼수는 없었지만 머리가 다 헝클어진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다.
....오빠....저...XX에요...
반 흐느낌 반 울음...고개도 들지 못하고 머리박은 채 벌벌떨며 웅얼거리는 소리는 마치 공포에 질린 한마리 짐승이 내는 소리같았다.
신촌연합동아리 후배였다.
...야...너 왜 여기.....
나도 짐승의 소리를 내었다. ...
선임의 출동지시와 함께 마침 닭장차가 도착했다. 잡혀온 학생들 인솔하는 쫄다구 내 앞으로 출동시키고 내가 인솔자로 나섰다. 어차피 출동간 3분정도 시간이 남았다.
3분동안 이 아이를 여기서 내보내야 한다. 저 닭장차를 태우면 안된다. 썅 이 기집애가 왜 여기 잡혀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줄줄이 차에 태우다 '야이씨발 똑발로 안 걸어!' 하며 이 기집애 종아리를 걷어찼다.
너무 세게 차서 아이는 보기좋게 땅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일어나지 못하고 끅끅 대며 땅에 주저앉아 ....자세히 보니 청바지 사이로 오줌을 싸고있다.
'야야 살살해라 씨발 애 잡는다' 선임 소리를 애써 무시하는 척 하며 '화장실좀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데리고 나왔다.
나와서 자세히 보니 씨발 무슨 기집애 얼굴을 이렇게 험하게 후두려 패놨는지 ..목소리 아니었으면 못알아 볼뻔 했다. 머리는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졌고
위아래 입술은 모두 얻어터져 싯뻘건 메기처럼 흉한 모습이다.
'야 너 왜 여깄어? 어?'
'오빠 .. 저 데모하러 온거 아니에요... 동아리 XX오빠 만나러 왔는데... 오늘 조인트 모임이잖아요...'
나도 안다.
왜냐하면 나도 그 동아리 선배고...나도 너랑 같은 학교 다니는 사람이고 ...
..간신히 내보냈다. 화장실에서 머리 대충 매만지고 내가 쓰던 마스크 씌워서 내보냈다.
다시 잡혔을지, 두들겨맞고 다시 잡혀들어왔을지는 모르겠다.
그 뒤로 영원히 뭔가 바뀌었다. 분노의 대상도, 나는 누구와 싸우는지도, 누가 내편인지도, 왜 싸우는지도, 왜 '진압'을 해야하는지,
왜 '공격'을 해야 하는지
그 아이가 뛰쳐 나가며... 흐느끼며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빠.. 딴 사람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