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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 시대의 새로운 가족형태 下
게시물ID : panic_486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3
조회수 : 129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27 18:26:34

 

 상> http://todayhumor.com/?panic_48527

 

 중> http://todayhumor.com/?panic_48604

 

 

 

 

 

 

 

 完>

 

 

 "오빠도 저거 보여?"

 

 "응? 뭐?"

 

 미영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내 팔을 끌어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얼굴은 아예 내 팔에 파묻고 있었다.

 

 "저 여자.......보이냐구."

 

 "여자?"

 

 "저기 서있는 남자 옆으로 얼굴 내밀고 있는 여자......오빠한테도 보이냐구."

  

'미영이가 보고 있는 것'

 

그게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 ‘여자’라는 단어가 폐부를 푹- 찔러왔다.

팔에 매달린 미영이한테서 전염되듯, 두려움이 내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늘 봐왔던 방의 풍경밖엔 보이지 않았다. 옷걸이에 걸린 하얀색 셔츠, 살짝 덜 닫혀 빼꼼 열린 서랍 문 같은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나는 미영이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발쪽에 서있는 남자의 형상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미영이는 내가 그냥 잠들어버리자 부엌으로 가서 소금을 가지고 왔지만, 내가 하도 곤하게 자고 있어서 장난칠 기분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소금은 다시 가져다 놓고 내 옆에 누워서 같이 잠들었다고 했다. 자다가 서늘한 느낌에 눈을 떴더니 웬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고 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남자라는 강한 확신이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온몸은 밧줄로 꽁꽁 묶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미영이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눈을 깜빡거리면서 남자를 쳐다봤다.

 

 그 남자는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이었다. 다만 눈만은 하얗게 치뜨고 있었다. 그 하얀 눈으로 미영이를, 아니 우리를 쳐다보고 서있었다. 미동도 않고 서서.

 미영이는 자기가 평소에 겪었던 가위하고는 다른 느낌이었다고 했다. 처음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지만 단순히 놀라서 그런 거였을 뿐, 숨통을 조이는 공포심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미영이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영이는 곧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깨고 말았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른다. 몸은 여전히 가위에 눌려있었으니까, 1분일수도 있고 한시간일 수도 있었다. 

 이마는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손바닥에도 식은땀이 차올라서 축축했다. 나는 옆에서 쿨쿨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미영이는 나를 깨우려고 "오빠"하고 수도 없이 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미영이는 불경이며 주기도문을 외웠다. 이렇게 하다보면 가위가 풀린다는 속설을 맹신하는 건 아니었지만, 달리 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는 조금전 그대로,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비릿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냄새 때문인지 강한 현기증이 일었다. 미영이는 우욱.....올라오는 토기를 겨우 참아냈다.

 그때 그런 미영이를 비웃듯이 어디선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웃음소리였다.

 깔깔대는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아니라 바람결에 날리는 듯한 작고 가느다란 웃음소리였다고 한다. 어떻게 들으면 흐느낌 같기도 했다고 한다.

 

 그 웃음소리는 남자의 등 뒤에서 나고 있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소리가 가까워질 수록 남자의 옆구리 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완전히 얼굴이 쑥 튀어 나왔다. 웃고 있는 입술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였다. 여자는 남자의 옆구리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여태까지 등 뒤에 숨어 있었던 것처럼.

 

 하얗고 창백한 인상의 여자가 붉은 입술이 찢어져라 웃으며 미영이를 쳐다봤다.

 입술은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었지만 두 눈은 싸늘하게 정색하고 있었다.

 남자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극심한 공포가 다가왔다.

 미영이는 너무 무서워서 숨을 헐떡였다.

 여자가 자기를 쳐다보면 쳐다볼 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너무 빨리 뛰어서, 이러다가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대로 심장이 펑 터져선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미영이는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나를 불러댔다. 오빠, 오빠, 오빠.....!!! 하고.

 나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은? 지금도 있어?”

 

나는 미영이를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떨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내 눈에야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미영이가 확인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내 팔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무서워.............그런 건 처음 봤어........이중으로 된 꿈도 꿔봤고, 별별 가위 다 눌려봤다고 생각했는데...........그렇게 무서운 여자는 처음 봤어..........”

“괜찮아.....오빠가 있잖아. 괜찮아.”

“나 집에 갈래.”

“지금.....??”

“여기 더 이상 못 있겠어.”

 

미영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혼이 쏙 빠진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 차마 말리질 못하겠어서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 시간이 새벽 3시 반이었다. 내가 잠든지 두 시간, 미영이가 잠든지 한시간만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미영이는 시무룩했다. 내가 이것저것 말하면서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고개만 끄덕였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그런 우리를 보고 “젊은 부부가 싸움이라도 했냐”며 관심을 보였다. 

 

 택시는 우리를 골목에 남겨두고 부웅 떠나갔다.

 미영이는 같이 들어가자고 했지만 미영이는 언니 부부하고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다른 핑계를 대고 외박 허락을 맡았을 텐데, 남자친구를 떡하니 데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고가.”

“이 시간에?”

“그럼 거길 다시 들어가려구?”

“내 집인데 뭘....게다가 나한텐 보이지도 않고.”

“찜질방에라도 가자 그럼. 그 남자.....날 쳐다보고 있었던 게 아니야. 오면서 가만 생각해보니까 계속 널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아.”

“날?”

“그러게 소금 뿌리자고 했잖아.”

“미영아. 연규는 내 친구야. 가는 길에 마지막 인사라도 하러 왔던 건가 보지.”

 

그때 문득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며 귀신하고 얘기하던 연규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영이까지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귀신이 존재하는 건가 생각되기 시작했다.

 

‘정혜씨가 와줘서 고맙대. 너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보기 드문데,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둔 내가 운이 좋대.’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 나는 볼 수 없었던 ‘그 여자’는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내가 안방에서 본 잔상이 내 모습이 반사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바로 장례식장으로 갈게. 가서 잠깐 눈이라도 붙이지 뭐.....넌 들어가.”

 

미영이가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OO동으로 가주세요.”

 

OO동은 내 자취방이 있는 동네였다.

발인이 있는 날도 아니고, 이 새벽에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민폐라는 생각에서였다. 모두 지쳐있을 텐데. 특히 연규 어머님은....

피로가 몰려와 이대로 잠들고 싶어졌다. 발가락이 노곤하게 풀어졌다. 가로등만 드문드문 켜져있는, 도로를 지나는 차 조차 드문 새벽의 거리를 쳐다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연규에 대한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미영이를 안심시키려고 아무 말이나 지껄인 거였지만, 정말 연규가 나한테 인사를 하러 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 여자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아저씨. 죄송한데 K대 병원 쪽으로 좀 가주세요.”

“완전히 반대 방향인데....”

 

기사는 궁싯대면서도 방향을 돌려주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주차장 한구석에 서서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라이터의 불꽃이 어둠을 뚫고 파지직 터져나왔다. 나는 입에 물었던 빨간 불씨를 바닥에 비벼끄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미영이가 묘사한 그 여자의 하얀 얼굴과 서늘한 눈빛이, 마치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

 

지하로 내려가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늘 뭉쳤던 멤버 중에 한명이었다. 녀석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걸어왔다.

 

“너도 왔어?”

너도 라니.......?

 

“애들 다 왔어. 너까지 왔으니까 다 모인 셈이네.”

 

안에 들어가보니 평소 연규와 친하게 지냈던 몇 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얼떨떨해하며 들어서는 나를 어색하게 맞아주었다. 누워 계시던 연규 이모님이 상을 차려주겠다고 일어나셨다. 이모님을 겨우 말리고 우리끼리 차갑게 식은 편육 몇 조각을 안주로 술병을 꺼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술잔이 몇 번 오고갔다.

 

“연규가 친구들한테 인사하러 온 거야. 짜식.....그렇게 보고 싶을 것 같았으면 왜 죽어, 죽길.....”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내 집에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모두들 새벽에 가위에 눌렸고, 마음이 뒤숭숭해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다시 찾은 거라고 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좌중을 살폈다.

 

“야....니들도 그 여자.....봤어?”

“.........”

“나는 못보고 미영이가 봤는데.......그 여자 웃고 있었대. 계속. 연규 등에 매달려선.....”

 

 우리는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교대로 장례식장을 지켰다. 연규와 그 여자가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규의 발인이 있던 날 모두 모여서 진심으로 녀석이 극락왕생하길 기도했다. 기도가 이루어진 때문일까, 그 뒤 연규는 우리한테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가위에 잘 눌리는 편인 미영이도 안심하고 내 집에 드나들 정도가 됐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친구들은 모두 봤을 텐데, 나만 연규의 마지막 인사를 못 본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연규는 그렇게 차츰 우리의 삶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연규 어머님께서 먼저 전화를 하셨다.

 

며칠 있으면 연규의 기일이었고, 그렇잖아도 찾아뵈려고 했기 때문에 그 날 저녁 댁으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연규 어머님은 나를 친아들처럼 반갑게 맞아주셨다. 친구들도 곧 온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제사상 차리는 걸 도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씩 연규가 여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헛것도 보이고.....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자꾸 그런 생각 하시면 안돼요, 어머님. 연규가 보고 싶으시겠지만 녀석....좋은 곳으로 가야죠.”

“그렇지?”

 

어머님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었다. 옆으로 돌아 앉으셨지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나는 티슈를 뽑아서 어머님 손에 쥐어 드렸다.

 

“우리 얼마전에 가족 사진 찍었잖아. 연규 그렇게 되고 최근에 찍은 사진도 없고, 제대로 된 가족 사진 한 장 없는게 한이 됐거든....”

“왜 안 걸어놓으시구요?”

 

나는 휑한 거실 벽을 보면서 의아해서 물었다.

보통 가족 사진은 크게 액자에 걸어놓지 않나? 연규 때문인가?

 

“박 서방이 사진을 찾으러 갔는데, 글쎄........사진관 주인이 죄송하다면서 돈을 돌려주더라지 뭐니.”

“네? 왜요?”

“이상한게 같이 찍혔다고. 자기가 사진관 연지 이십년이 다 돼가는데 이런 건 처음본다면서, 다시 찍으러 오든지 환불받든지 하라더라구..........”

“환불 받으신 거예요?”

 

웬만해선 환불해주는 경우가 없을 텐데....

어머님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내 손을 꽉 잡으셨다.

 

“다시 안 찍으시고요?”

“애들 아빠가 하도 단호하게 나와서...........도대체 뭐가 찍혔는지 좀 보자고 보여달라고 했는데 나는 끝까지 안 보여주더라고. 박 서방도 말리고. 그래서 내 생각인데, 연규가 같이 찍힌 게 아닌가 싶어.”

“..............설마요......”

 

아직도 연규가 가족 주변을 맴돌고 있다니. 그런건 너무 슬프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연규 어머님은 눈물을 연신 닦아내고 계셨다.

 

“그 양반, 그런 얼굴 처음 봤거든. 살면서 한 번도 겁먹은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사진관에 갔다 와선 얼굴이 하얗게 질렸더라구. 안마시던 술을 다 마시고 취해선 ‘그년이 연규를 잡아먹었느니’ 어쨌니 저쨌니 하시던데........나한테 뭘 숨기는 게 있는 건지......혹시, 넌 뭐 알고 있는 거 있니?”

 

평소 몸이 약하신 연규 어머님이 받을 충격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을 비밀로 부친 모양이었다.

어머님은 연규 장례식장에서 실신까지 하셨었다. 어디까지 알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아버님까지 숨기고 계신 이야기를 내가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모르는 이야기예요.”

 

모두 연규가 선택한 거였다.

그 여자와 함께 하는 동시에, 생전에 사랑했던 이들과도 함께 할 수 있다니.

연규 어머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녀석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맹세하던 연규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바퀴를 울렸다.

 

연규 어머님은 연규 사진을 꺼내오셨다. 매일 닦고 또 닦아도 먼지가 앉는다고 투덜대셨다.

 

 "제가 닦을게요. 어머님 좀 쉬세요."

 

나는 연규 어머님의 손에서 액자를 받았다.

하아, 하고 입김을 불어서 구석구석 먼지 한톨 없이 쓱쓱 닦아 냈다.

그러다 문득 손을 멈추고 웃고 있는 연규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연규를 찾듯이.

그러나 여전히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연규가 이 집에, 이 가족 곁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녀석은 지금 행복할까?

지금............어디에 있을까?

 

 

 

 

 

 

 

 

 

 

 

 

 

 

 

/

 

 무서웠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배경음을 올리고 싶은데 올릴 줄을 몰라서; 늘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비가 오니까

 빗소리를 배경음 삼아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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