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난 12월 개봉한 '변호인'이 줄곧 흥행 1위 자리를 지키며 1100만 명을 동원했지만, 북미에서 2월 7일 개봉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영화가 북미에서도 개봉하기만을 기다리던 한인들은, 1월 중순 LA에 위치한 CGV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개봉 예정일을 훨씬 넘긴 뒤, LA CGV가 '불법 동영상 유출' 때문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상영을 취소, 북미 상영 자체가 무산되는게 아닌가 우려스러웠다. 다행히 북미 배급을 맡은 웰고USA 측에서 미국과 캐나다 주요 도시에 31개 상영관을 확보하며 2월 7일 개봉 약속을 지켰다.
▲영화 '변호인' 북미 포스터
ⓒ Well Go USA Entertainment
LA 다운타운의 리갈 극장에서는, 오후 7시 50분 상영분이 한 시간 전에 매진되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미리 예매를 하지 않은 채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한인도 있었다. 극장 측 관계자는 이 영화에 대한 흥행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결과라며 놀라워했다.
실제 이 극장은 2월 7일 개봉하는 영화의 상영관과 상영시간표를 3일 전에야 확정했으며, 스크린 앞 쪽의 좌석은 아예 매표를 하지 않았고, 개봉 당일 극장 내에 영화 포스터 한 장 붙이지 않는 무성의를 보였다.
이 극장은 현재 5일간의 상영시간표만 확정했는데, 주말 흥행 여부에 따라 '변호인'의 상영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크기보다 더 넓은 남가주에, 단 네 곳의 극장에서만 '변호인'을 상영함에 따라 멀리서 이 극장을 찾은 한인도 많았다.
남가주에서 극장 단 네 곳만 상영... 멀리서 찾아오는 한인들
영화관 안은 2시간 7분 내내 웃음과 흐느낌이 교차했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모두 박수를 쳤다.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더 봐야 할 영화라고 입을 모았지만, 영화를 본 느낌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묘사가 너무 밋밋하여 감동이 적었다는 의견을 낸 관객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영화를 기대하고 왔다는 제임스 오씨는,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이기 보다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로 봤다고 말했다.
아직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을 다시 떠올렸고, 그 많은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 독재정권의 후예들에 의해 여전히 유린되고 있는 현재가 안타깝다고 했다.
거대한 의료보험 회사의 횡포에 맞서, 급성백혈병 환자 편에 서서 정의를 찾아가는 풋내기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레인메이커가 생각났다는 관객도 있었다. 고문을 자행한 경찰의 폭력을 증언한 군의관 윤중위가 헌병대에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에 대한 얼마 전 재판이 떠올랐다는 관람평도 나왔다.
개봉에 맞춰 < 뉴욕타임즈 > 와 < 워싱턴포스트 > 영화비평
영화 속 고시생 송우석은 고시공부를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고 아파트 벽에 새겼지만,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정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었다. 일제시대 고등경찰을 아버지로 둔 고문경찰 차동영이 '빨갱이'를 '만들어' 내는게 과거라면, 종북몰이로 한국민주주의를 상처내는 모습은 현재와 같다.
판사와 검사가 한통속이 되어 국보법 위반사건을 찍어내던 것이 과거라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축소 조작을 지휘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현재이다. 제대로 된 기자들은 모두 해직 당하고 '비겁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살아 남아있던 이 기자가 과거라면, KBS 앵커에서 하루만에 청와대 대변인이 된 민경욱은 현재이다. 그러나 변호사 송우석이 법정에서 외치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영화를 본 후 40여 명의 한인들은 한인타운의 한 국밥집에 모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단체관람과 뒷풀이를 추진했던 '내일을 여는 사람들' 총무 이지은씨는 많은 한인들이 '변호인'을 보고 한국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어서 다행이라며, < 또 하나의 약속 > 이 북미에서 개봉하게 되면 이번과 같이 단체관람을 추진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편, 이 영화 개봉에 맞춰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도 영화비평 기사를 썼다. 영화 줄거리는 물론 양우석 감독과 배우 송강호를 소개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인에게 독재정권시기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아님을 언급하며, 한인이 아닌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크게 감동을 주지 않을지도 모르나, '절제된' 고문 장면만으로도 관객의 가슴을 흔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즈는, 영화 초반에는 '변호인'이 코메디라고 생각할 관객이 있을지 모르나, 실제 이 영화는 매우 진지하고 교훈적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