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보자면 재미있고 스릴 넘쳤지만, 평소 버릇처럼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보자면 스릴밖에 없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아래는 혹평 가득, 스포 가득하니 주의해주세요. 굉장히 주관적인 의견이고, 러닝타임 속 내용을 모조리 기억하진 못합니다. 중간중간 약한 욕도 섞여있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두서없는 데스큐어 2시간 10분짜리 예고편 본 기분이었어요. 예고편은 왜 중요한 장면 안 보여주고 그냥 딱딱 끊어다가 떡밥만 존나 보여주고 끝나잖아요? 딱 그 꼴. 중간부터 그냥 모든걸 포기하고 그냥 감독 장단 맞춰주기로 마음 먹었죠. 해탈하고 봤어요.
뉴트랑 민호가 토마스에게 정신적인 지주고 베스트프렌드 역할인데, 비중이 정말 끝도 없이 낮아진데다가 너무 고분고분 토마스한테 끌려다니는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냥 토마스가 비글짓을 하니까 어휴 저 새끼 또 저러네. 하는 느낌으로 휩쓸려버림. 말려도 소용 없고 두 사람이 조언을 주고 충고를 해도 그냥 아무 대책도 없이 저지르고 보더라구요. 급하니 급한대로 일은 저지르는데 그 후의 대책도 없고, 뭔가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할 생각도 없고. 그냥 무작정 모든걸 저질러버려요. 다 끝나고 나면 거기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난 너희를 위해서 한거야, 어쩔 수 없었어. 하고 자위같은 변명과 함께 그제서야 설명을 해줍니다.
물론 결과는 좋았죠. 결과만 좋을 뿐이었던게 문제지…
대책이 있냐는 뉴트 물음에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오른팔 조직”이란게 산에 있으니까 간다, 그 뿐인 것에 1얼척 소모. 무슨 조지 말로리도 아니고… 근데 그걸 또 일행들 모두가 납득합니다.
아무튼… 러닝타임 130분의 대부분이 이랬던 것 같아요.
토마스가 저지른다 → 일단 저질렀으니까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일행들 모두 이판사판으로 따른다 → 일이 대강 정리되면 애들이 무슨 일인가 따진다 → 그제서야 설명한다. → 대책은 있냐. → 놉.
애들이 토마스를 믿는 것처럼, 토마스도 사람을 너무 잘 믿어요. 위키드와 잰슨에게 뒷통수를 맞았으니 이제 좀 다른 사람들을 경계할만한데 말이에요. 오른팔조직이 정확히 뭔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냥 위키드의 적이고 면역자들을 데리고 갔다고 하니까 찾으러 갑니다. 그 이상 조사해볼 생각도 없이 그냥 찾으러 가요. 가서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취급을 받을지, 위키드보다 착한 조직인지, 그 어떤 사항도 모르면서. 홀몸이면 대책 없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도 자기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렀으려니 뭐, 하고 넘기겠는데… 자기가 이끌고 나온 이들이 한둘인가요? 아무리 길이 하나 뿐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그 조직에 대한 무언가 일말의 의심도 없는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무모함이 기억상실증 부작용인가…
2부는 정말… 토마스를 따르는 글레이드즈 모두가 비글새끼 가만 놔두지 못하는 개주인의 심정으로 붙어있는게 아닐까 추측하면서 봤음… 뉴트가 대책 있냐고 물으면서 안 후려팬게 용하다 생각했구요… 덤으로 제 마음의 소리를 대신 해준 뉴트에게 리스펙트…
덧붙여 토마스가 사람 잘 믿는건 부작용 or 성격이 그래서 그렇다고 어떻게든 납득을 하겠는데, 대체 호르헤랑 브렌다는 왜? 왜 이렇게 토마스를 맹목적으로 믿는건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위키드에서 온 놈들인데, 오른팔조직에 대한 토마스의 발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검증과정조차도 없이 그냥 무작정 위키드에서 온 면역자가 산에 있다고 했으니까 있는게 맞구나, 천국행 티켓이다, 하고 따라나섭니다. 2얼척 소모.
솔직히 호르헤는 그냥 예의상 애들한테 어른 패라고 하기 힘드니까 대신 패라고 나온 것 같아요. + 운전기사. 브랜다는 트리샤 퇴장하면 영 허전하니까 나온 것 같고… 그 외엔 등장에 어떤 목적이 있는 캐릭터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설에서는 사막에 익숙한 안내인으로서 사막 속에서 방황하는 토마스를 이끌어주는 역할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지만 영화에서는 솔직히… 음.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습니다. 뚜렷한 목적이 없어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캐릭터들은 그 목적에 대한 동기도 개연성도 안 보였고요. 정말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평면적이어서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질 않았어요… 제한된 시간 내에 너무 억지로 여러 에피소드를 집어넣으려다 토마스를 제외한 캐릭터들의 감정묘사는 하나도 남지 않아버린 느낌.
한 명만 빼고요.
스코트라 후기들이 하나같이 트리샤 썅년으로 점철되어있는데다 소설에서도 트리샤는 썅년으로 나오니까, 그래 얼마나 썅년으로 나오나 보자 하러 갔는데 결론은 그냥ㅋㅋㅋ스코치 트라이얼 안에서 제일 정상적이고 입체적이고 개연성 빵빵하고 동기 목적 확실한 캐릭터인 것 같아요.
오히려 원작보다 영화 쪽 트리샤가 훨씬 좋았음…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친구들을 배신하게 되지만 다수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그 가치관이 트리샤 안에서 확립되게 된 계기가 뚜렷했죠. 감염된 어머니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같은 사람, 자기와 같은 딸들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실험은 꼭 필요하다, 라는게 트리샤의 생각이었잖아요? 솔직히 에바 페이지는 일단 악역포지션이니 뭔 말을 해도 걍 미친년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데 가장 가까웠던 친구요 동료요 연인에 가까운 사람이 합당한 동기를 제시하며 나는 다수를 위한 소의 희생을 지지하겠다, 라고 말하니까 그제서야 이게 가치관의 차이라는거구나. 틀림이 아니라 서로 다름이다, 라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다름에 대해 뒤따라오는 피해가 너무 커서 문제지… 아 몰라 무튼 트리샤언니 사랑해요ㅠㅠ
마지막으로 민호 포지션 → 쿠파 페이지에게 잡혀간 프린세스.
연출이나 장면에 대한 허술함도 쓰라면 정말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진도 없는 후기라… 그냥 캐릭터에 대한 실망감만 썼습니다. 사도나 보러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