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중반 열심히 미드라인을 푸쉬했던 결과, 아리를 조종했던 소환사님은 손 쉽게 탑과 봇 라인으로 로밍을 갈 수 있었고 그것이 승리의 길이 되었던 것이다.
내 곁에는 함께 미드라인을 맡고 있는 동료 견습 소환사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한 수련의 시간은 벌써 8년째였고, 지금은 가족보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소중한 인연이었다.
우리는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맞춰 맥주잔이 부서지도록 건배를 했다. 주점 주인이 락밴드 펜타킬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게다가 그는 펜타킬 2집 앨범의 광신도였기에 주점 안에는 전자 기타음과 비트감 있는 드럼소리, 그리고 영혼을 움직이는 카서스의 노래가 계속 울려퍼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음악 취향은 클래식이었다. 락음악은 머리를 아프게 하고 심장이 빨리 뛰도록 압박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고 락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음악장르에 대해선 관대한 자세를 취하자는 것이 내 지론이었고, 더군다나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생각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료와 어깨동무를 한 채 한 쪽 벽에 크게 붙여진 소나의 브로마이드를 보았다. 동료는 혀 꼬부라진 말투로 그녀를 리그가 아닌, 공연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애써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단 한번도 펜타킬 공연에 가본 적이 없다.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데마시아와 녹서스가 영토분쟁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경기를 열었었고 나는 그때 봇 라인의 마법사 미니언을 조종했었다.
소나는 블루팀 봇라인에 있었고 나는 퍼플팀 마법사 미니언을 조종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기만 연주하며 팀에 기여했다.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는 그녀를 조종하는 소환사뿐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녀는 무슨 말을 어떤 말투로 표현할지 너무도 궁금했다.
브로마이드 안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소나는 온 몸을 보라빛으로 분장한 채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자니 경기때 봤던 소나와 공연을 하는 소나가 실제로 동일인이 맞는가. 괴리감이 들 정도였다.
문득, 곱게 꾸민 그녀가 소환사에겐 "베이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겠어? 기타줄로 목을 그어버리기 전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를 흠모하던 소환사가 그녀와 계약했을 당시의 멘탈 붕괴는 어느정도일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봐 소나님은 그만 쳐다보라고. 구멍 나겠어."
어느새 동료가 자신의 맥주잔을 내 눈 앞까지 들이밀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잔에 거픔 섞인 맥주를 부었다. 그 또한 내 맥주잔을 채워주었다. 우리는 음악 소리에 맞춰 맥주잔을 세게 부딪힌 뒤 얼굴에 쏟아붓듯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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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뜬 것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였다. 필름이 끊겼음에도 어찌어찌 집은 잘 찾아왔는지 나는 바지를 한쪽만 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벨트를 안 풀고도 한쪽 다리는 어떻게 뺐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배게는 침냄새와 술냄새로 젖어있었다. 빤지 얼마 안 된 건데 다시 세탁해야 할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간단한 식사를 위해 토스트를 구웠다. 경기가 끝난 직후, 견습 소환사들에게 며칠의 휴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나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잠을 잘 생각이었다.
스프가 끓는동안 밴들시티 산 라디오를 틀어 항상 듣던 주파수를 맞췄다. 라디오에선 처음 들어보는 잔잔한 현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래식에 대해선 꽤나 많이 안다고 자부했지만, 지금 듣는 곡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무슨 곡이든 어떠랴. 지끈거리는 머리는 썰물 빠지듯 천천히 가라앉았다. 역시 음악은 클래식이 최고였다. 나는 그 곡에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사를 했다. 그 후 나는 샤워를 했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빨래통에 튀는 바람에 안에 쑤셔박아둔 배게는 젖고 말았다. 계속 내버려두면 더욱 고약한 냄새를 풍길거 같아, 나는 세제를 물에 푼 뒤 그곳에 배게를 넣어두었다.
슬슬 이불을 돌돌말아 배게 대용으로 쓰며 잠을 청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 현관문을 시끄럽게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이봐! 어썬! 일어나! 일어나보라구!"
그것은 어제 함께 술을 마셨던 멘델의 목소리였다. 나는 슬리퍼를 반대로 신은 채 급히 나가 문을 열었다. 멘델은 충혈된 눈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야? 문이 부서지겠잖아."
멘델은 한 손으로 머리를 누른채 말했다.
"그 문 보다 내 머리가 먼저 빠개질거 같다구. 온 김에 네 집 거실에 누워서 자고 싶지만 참는 중이야. 아무튼 급하니까 옷 부터 갈아입어. 얼른 가봐야 해."
"무슨 일인데 그래? 변경된 스케줄이라도 있어? 다음 경기까진 멀었잖아."
"그런거라면 내가 여기까지 안 오지. 놀라지 마. 아니, 놀라야 돼. 그래야 내가 온 보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