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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여신 (좀 깁니다)
게시물ID : readers_48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참치
추천 : 0
조회수 : 27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2/02 14:33:18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코가 에일듯한 매서운 바람에 윤기 나는긴 머리가 너풀너풀 흔들렸다.

충동적으로 뛰쳐나온 바람에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옷들 사이로 한기가 밀려들어왔다.

산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천 끝이 닳아버린얇은 코트 위로 늘어진 빨간 목도리를,

지영은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힘을 주어목에 둘둘 말았다.

 

추워.”

 

한숨을 쉬듯이 조용히 읊조렸다.

조심스레 새어 나온 그 단어와는 달리

하얀 입김이 그녀의 뜨거운 입술 사이에서서늘한 공기 사이로 무겁게 쏟아져 내렸다.

하얀 입자가 뭉게뭉게 부풀어오르다 맥없이흩어졌다.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지영은 이내픽,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다시 한번 커다란 구름이 입술 사이에서피어 올랐다.

절망스러운 눈으로 그녀는 현재 서있는 곳의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에 들어오는 풍경에 가슴이 잔뜩 답답해져왔다.

인상을 찡그리며 지영은 슬프게 중얼거렸다.

 

이건 아니야. 이건……정상이 아니야.”

 

귀로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들은 현재 그녀를한 없이 나락에 빠트리고 있었다.

숨이 막혀왔다.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호흡을 하기 위하여

그녀는 어느새 구부려진 어깨를 쭉 핀 후고개를 위로 치켜 올렸다.

코에 힘을 주어 한껏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뒤 천천히, 이제는 뜨거워진 공기를, 내쉬었다.

다시 한번 훅-하며 구름이 피어 올랐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이 덧없는 행동이 현재 혼란스럽고도어지러운 마음에 평온을 찾아주기를 빌었다.

 

그때였다.

 

고개를 치켜 올리며 자연스레 시야가 높아진그녀의 눈에

하늘 꼭대기까지 닿아있는 빛이 보였다.

그 빛은 아름답고도 오색찬란하게 반짝이고있었다.

어두운 눈으로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지영은다시 한번 헛웃음을 흘렸다.

얼마나 언발란스한 광경인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움에 감탄할만한그 빛은

도저히 현재 하늘아래 버젓이 펼쳐진 광경에어울리지 않았다.

고개를 내렸다.

지영의 눈앞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 빛의 아래에는, 그렇다.

 

악마들이 하하, 호호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지옥이었다.

 

 



 

 

 

 

커플지옥.



지영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저 다만 따듯한 집에서 편안히 시청하던드라마에 등장한 케이크가 먹고 싶어

밖으로 나온 결과가 이렇게 끔찍할 줄은몰랐다.

그녀는,그래, 다만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만을 먹고 싶었던 것인데.

설마하니 곧 다가올 부쉬 드 노엘과의 만남을기다리며 가볍게 시내로 나선 그녀를

서로의 몸을 둘둘 말아 안고 있는 남녀떼가 맞이할 줄은 정말 꿈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렇게 눈앞의 광경이 주는 충격에 그대로그 자리에 멈추어 선 후 여태까지 얼어있었다.

마음에 침범한 경악과 절망의 무게에 짓눌린몸을 움직이는 일이란 불가능 했기에

그녀는 그저 그렇게 눈을 맞으며 가만히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추위에 노출된 두 발은 정신을차린 그녀가 움직이려고 해도

꽁꽁 얼어서 도저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하늘이 그녀를 완전히 버리지는않았는지,

얼마 동안 열심히 발가락을 부츠 안에서꼼지락거리자

점차 얼어붙은 몸에 열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충격에서 벗어난 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행한 심호흡이효과가 있었는지 점차 그녀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 그깟 케이크 오늘만 파는 것도 아니고……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불끈 결심을 한 뒤 뒤돌아 서는 그녀의곁으로 한 커플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보기에도 따듯하고 폭신한 커플 목도리를한 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두 남녀는 걸어가고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두 사람의 안면에는 수줍지만행복한 미소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영은 무심코 손을 올려 자신이 두르고있는 빨갛고 낡은 털실 목도리를 만지작거렸다.

 

이제는 너덜너덜해져 보온이라는 제 역할도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 목도리는

3년 전, 그녀의 남자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것이었다.

돈이 없어 이런 것밖에 못해준다며 미안하다는얼굴로 웃는 그를

지영은 그저 그 목도리를 손에 꼭 움켜쥔채 감동 어린 얼굴로 쳐다봤었다.

 

하지만 다 과거일 뿐이야.”

 

모든 기억을 털어버리듯 고개를 탈탈 흔들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굳세게 발걸음을옮겼다.

그런 그녀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다시 한번어느 한 커플이 그녀의 몸을 툭 치고 지나갔다.

 

, 죄송합니다.”

우와. 오빠는 진짜 예의 바르다- 실수로 부딪힌 사람한테 사과까지 하고! 헤헤. 이러니까 내가 오빠만 좋아하는 거야.”

아 뭐야. 하하

 

상식인 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보인남자가

뭐 그리 대단해 보이는지 애교를 떠는 여자와

그런 여자가 사랑스러웠는지 자연스레 팔짱을낀 채 걸어가는 남자를 보며

지영은 멍하니 서있었다.

실없는 웃음이 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가벼운 실소로 보이는그 행동에

얼마나 어수선하고도 복잡한 심경이 담겼는지는지영, 그녀 혼자만이 알 뿐이었다.

 

지영은 주머니에서 두 손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추위에 서 있었던 탓인지 주머니에넣어두었던 것이 무색하게

두 손은 빨갛게 꽁꽁 얼어있었다.

그녀는 방금 그녀의 옆을 스쳐나간 커플들을떠올렸다.

단단히 맞물린 두 손과 착 달라붙어 꽈배기꼬이듯 꼬인 두 팔도 생각이 났다.

두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갑작스레고개를 들었다

환하게 빛나는 얼굴에는 매력적인 웃음이활짝 피어있었다.

 

두 팔을 좌우로 쭈욱-하고 스트레칭을 하듯이 피어 올렸다.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친 상태로 잠시 손목을돌리며 팔을 털던 그녀는

힘차게 두 팔을 가슴 위로 교차시켜 두손을 그녀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끼어 넣었다.

즉각적으로 손으로 퍼지는 뜨거운 열기에지영은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그래. 솔로면어떠하리!!

그녀는 솔로이기에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남아돌았고,

형편이 여유 있었고,

매일매일 마음 졸이는 일 없이 평온했다.

 

나는 나에게 당당해. 역시 이 세상에는 나자신이 가장 소중한 거야.”

 

앞으로 시간에, 돈에, 질투에 반드시 쪼달릴 가여운 커플들을 비웃어주며

겨드랑이 팔짱을 낀 지영은 빨간 목도리를휘날리며 당당히 집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이 순간 진심으로 행복했다.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그녀는 코트에 묻은 눈을 휘날리며당당히 발걸음을 남기었다.

 

그래. 솔로만세였다.

 

 

솔로만세.

 

 

 

 

저자. 허참치

 

 

 

 

 

 

 

 

 

 

 

 

 

 

꾸준히 눈팅하던 오유와 오유의 유저들에게이 글을 바칩니다.

안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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