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 전이네요 7시쯤 해떨어진 후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집앞에 꽤나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동네 빵집을 지나가는 길에
너무나도 맛있어 보여서 빵 두개를 샀어요. 카스테라랑 하난 뭐였지..
첫인상은 남자분이시고 조금 마른 대학생? 같았어요.
집앞에서 절 조심스럽게 부르더라구요. 저기요 저기요 하고.
걸을땐 항상 이어폰을 끼고 다녀서 친구나 누군가 부르면 한번에 알아요.
딴거 듣고 있을때도 저 부른다는거. 처음 한번은 못들은척 해요.
솔직히 낯선사람이 말 걸어서 피하고 싶었어요 ㅠㅠ
그래서 괜히 흥얼거리면서 계속 걸었어요.
근데 정말 조심스럽게 저기요... 저기요... 하면서 다가오시더라구요.
동작이라고 해야하나 정말 조심스럽고 실례지만... 이런 태도여서
몇걸음 지나치고 나서 이어폰을 빼고. 네?? 했어요.
말씀이 되게 빠르셔서 무슨 말씀하시는지 좀 이해는 안갔어요.. ㅠㅠ
푸른빛 셔츠에 와인색 가디건 입으시고 머리는 댄디한 스타일.
피부는 조금 검고 왠지 우리사람 같지 않은 눈망울? 눈이 신기해서 계속 봤네요.
옷차림은 꽤 깔끔한 스타일이셨는데 외투가 없이 겨울바람에 벌벌 떠시면서 이야기하니까
일단 이야기만 들어보자. 하고 죄송한데 천천히 좀 말씀해주세요 부탁했어요.
고3이라고 하셨고 가출한건 아닌데 친구들이 알바자리 있다고 해서 여기 왔는데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다고 하셨어요. 조금 얼버무리는듯 사정을 이야기 하셨는데
의심부터 가더라구요 ㅠㅠㅠㅠ 저를 해칠것 같지는 않은데...
이분이 필요한건 결국 돈이고 나는 거짓말에 속고있는건 아닐까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해요? 하고 묻자
연신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 진짜 돈같은걸로 이러면 안되는건데 아 정말 죄송해요.
몇번이고 죄송하다고 그러시길래 다시 물었어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되는데요 조금 퉁명스럽게 재촉했더니
그럼... 제 스마트폰 보시면서 버스표 좀 끊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
다시 연신 죄송하다고 덧붙이시고.
근데 그 자리가 아파트 입구였어요. 정확히는 아파트 입구앞에 공중전화 하나씩 있죠? 거기요.
시험기간이고 집앞에 이미 다 도착한 판에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갈 순 없었어요.
집이 어디시라구요? .. 강원도 고성이라고.
지금 막차라도 타고 가야하는데 요금이 8900원이라고.
그럼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어떻게 가시려구요?
버스타고 가면 될것 같다고. 발을 동동 구르시더라구요
결국 지갑열고 만원짜리랑 천원짜리 한장씩 드렸어요.
빨리 피하고 싶었어요. 걸음 돌리려고 하는데
죄송한데... 그 빵도 주세요.
처음엔 빵 하나만 드리고 돈은 죄송하다고 피하려고 했는데
이미 지갑에 있던 돈을 다 드려버렸으니 솔직히 너무 속상했어요 ㅠㅠ...
부모님께서 힘들게 벌어온 돈도 쪼개서 용돈 주신 건데.
그냥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머릿속을 지우고 싶었어요. ㅠㅠ 속상해..
돈 받으실때랑은 다른게 빵은 먼저 달라고 하시니까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어요.
나 또 속은건가 ㅠㅠ 다시 달라고 하기도 뭐한데...
다 포기해버리고 빵도 줬어요. 줬던 빵이 뭔지가 기억이 안나네요.
친구에게 말하면 나 또 호구라고 놀리고 혼내겠지 ㅠㅠ...
엄마 미안해.. 월말에 이자때문에 힘든데도 용돈 받아쓰는거..
근데 이렇게 허무하게 써버릴줄은 나도 몰랐어.
빵은 워낙 배가 고프시니까 먼저 달라고 하신거 아닐까?
나도 정말 너무 배가고프면 그랬을꺼야.. 그분 진심이었을꺼야.
엘레베이터 안에서 거울보면서 별 생각이 다 나더라구요..
정말 대인배는 못되는게 내가 속지 않은거라고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럼 정말 급한분 도운거라고 확신 할 수 있으니까 ㅠㅠ...
...
오자마자 시외버스 요금표를 검색했어요.
춘천-고성 검색하니 간성시외버스터미널이네요.
금액이 8900원이겠지 맞겠지하고 클릭했는데
중고생 12300원.
ㅠㅠㅠㅠㅠㅠㅠ 괜히 검색했나봐요
그냥 친구한테 털어놓고 혼나고 잊어버릴껄...
의심되서 검색한 저도 밉고 또 속은 것 같아 속상하고...
글쓰면서 상황 정리해볼땐 아 그분 정말 진심이었을꺼야. 하는데
최소한 제 전화번호라도 물어보시지 ㅠㅠ.. 그냥 가버리셨어..
다음부턴 이런 부탁 또 오면 그 분이 정말 진심이어도 못 도와드릴것 같아요.
제가 너무 등신 호구 같아서요. 그땐 저보다 착한 오유분들이 도와주길 바래요.
이렇게 누군가 돕는다는게 사소한것도 저에겐 힘든일인줄 몰랐네요.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요 ㅠㅠ 진심 급한 분이었는데 도와드리고서 혼자 멘붕인건지
또 속아버린건지 그 분이 괘씸해졌다가 내가 괘씸해졌다가..
시험기간이라 예민해졌네요... 자꾸 속상해죽겠네요.
저 정신 차릴 수 있게 충고 좀 해주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