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를 입속에 임신한 여성, 헉” 지난 6월 중순, 한 인터넷 매체의 기사 제목이다. 63세의 한 여성이 반숙 오징어를 먹다 입안에서 오징어가 수정돼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총 12마리인 그 새끼오징어가 워낙 촘촘하게 붙어 있어 제거에 애를 먹었다는 외지 보도를 소개한 것이다. 이 보도는 제목만 상이할 뿐 대부분의 우리나라 인터넷 매체들이 받아 보도했다.
처음 뉴스가 나왔을 당시, 누리꾼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이 뉴스가 온라인을 달궜다. 추가적으로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곳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것이다. 회의론을 펴던 누리꾼들은 더 의기양양해졌다. 저런 희귀한 사건이 정말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왜 보도되지 않았겠냐. 등등. 그런데 여기서 반전. 뉴스의 원 소스가 된 외지 기사의 댓글 창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 외지 기사는 자신의 뉴스 출처를 공개했다.
보도가 처음 나온 곳은 영국의 <데일리메일>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6월 15일, 리처드 하틀리 파킨슨이라는 기자가 작성한 기사. 기사 내용은 한국에 소개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기사에 따르면 뉴스의 원래 출처는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국립 생명기술정보센터가 발간하는 과학논문 잡지.
논문 제목을 대충 번역해보면 이렇다. “기생충처럼 보이는 오징어 정낭에 의한 구강점막 침입: 한 한국 여성의 사례 보고.” 그런데 잠깐. 적어도 논문의 제목과 요약에 나온 내용만으로 봤을 때 <데일리메일>의 보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공개된 자료 어디에도 <데일리메일>의 표현처럼 ‘새끼오징어(baby squid)’를 입안에 ‘임신(pregnant)’했다는 말은 없다.
인터넷에 공개된 요약본만으로는 단정지을 순 없다. 논문의 주저자로 보이는 교수를 수소문해 연락해봤다. 관동의대의 박갑만 교수다. 다음은 그의 말. “아, 그게 올해 2월에 낸 논문인데, 아니사키스라고 보통 오징어에 있는 기생충인데요. 그 아니사키스인가 해서 봤는데 아니더라구.”
보도와 이야기 얼개는 비슷하다. 한 여성이 반숙 오징어를 먹었고 정자 덩어리를 씹은 것이다. 정자 덩어리를 씹은 이 여성은 입안에 통증을 느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오징어 정자가 조금 특이하게 생겼거든요. 화살처럼 튀어나오는데, 정자 하나 하나가 입안에 박혀버린 겁니다.”
혹시나 해서 논문을 요청해서 받았다. 논문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2008년 2월. 병원은 강남 세브란스다. 바로 병원에 가서 들여다보니 그 오징어 정자가 일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여 혹시 기생충인가 검사를 했고,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케이스다. 박 교수에게 인터넷에서 한창인 ‘새끼오징어 임신 논란’에 대해 들어봤는지 문의했다. “아니, 그거 내가 쓴 논문 요약만 봐도 다 설명되어 있는 내용인데….”
결론 나왔다. 전문성(?)이 의심되는 어느 영국 기자에게 우리나라의 상당수 인터넷언론사가 낚인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오징어 입속 임신사건’의 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