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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것이 어디 강물뿐이더랴
게시물ID : poop_10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일불이
추천 : 0
조회수 : 2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3/14 00:44:47

4대강이다, 호안정비사업이다 해서 우리나 큰 강들의 강둑은 콘크리트가 덮히고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고, 강변 은모래와 자갈과 갈대숲은 축구장이 되고 자전거길이 되었습니다.  해질녁 은파로 빛나던 강물은 보에 막히고 댐에 갖혀 펄펄튀며 잔여울을 노래하던 흐름을 멈추고 그저 고여 있습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강언덕을 뒤덮은 푸르른 대숲을 무자비하게 찢어내고 머나먼 어느 골짜기부터 구르고 굴러 모난곳이 사라지고 그저 물이 흐르는대로 동글동글 바다를 향해 가는 자갈과 모래를 퍼낸 자리엔 갯버들과 억새가 무성하고 뻘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은 강이 한 곳 있습니다.  섬진강입니다.

섬진강도 하나 둘 늘어가는 상류의 댐들과 도로와 개발에 조금씩 모습을 잃어가고는 있지만 아직 19번 국도 하동에서 구례를 지나 곡성에 이르는 구간에는 푸른 대숲과 은모래와 여울에서 뛰는 새하얀 은어떼처럼 맑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 언저리에서 저는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장마가 옵니다.

강은 며칠동안 퍼 부은 장마비로 무섭게 변해 버립니다. 시뻘건 황토물이 강둑을 금방이라도 넘을 듯 기세좋게 흐릅니다.

저 윗동네 어디쯤에선가 뿌리째 뽑아온 밤나무며 버드나무가 떠내려오고 누군가 아들내미 중학교 교복을 사 주려고

애지중지 키우던 돼지가 기둥째 떠내려오는 축사 지붕에 올라앉아 떠내려 옵니다.

보고있노라면 빨려들어갈듯 무섭게 소용돌이 치면서 누런 물결이 더러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마치 울부짖는듯 거센 물소리를 냅니다.

물이 없을땐 허리께만 적시면 건널 수 있었던 강은 엄청나게 넓어져서 강 건너편은 이제 영원히 건널수 없는 곳처럼 아스라하게 멀어집니다.

그렇게 강물은 세차게 가로막는 것들을 몽땅 쓸어서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여름방학입니다.

아침해가 뜨자마자 읍내에서 택시를 모는 명철이 아버지께서 주신 자동차 튜브를 하나 끼고 온 동네 애들을 다 모아 강으로 갑니다.

강가, 큰 물이 지면 넘치는 들판은 고운 흙모래땅이라 밭농사가 잘됩니다.

동네 어른들이 키우는 수박밭, 참외밭 사이의 고운 흙모래 농로길을 일부러 발로 차 먼지를 일으키며 걷습니다.

동 트자마자 나온 옆집 김씨 아저씨가 우리를 손짓해 부르십니다.

"짚은디는 들어들가지마라잉"

벌이 쏘아 제물에 벌어져버린, 서슬이 허연 수박 한 통을 주십니다.

누구보다 먼저 동네 골목 푸세식 변소마다 똥장군을 지고 다니며 똥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최장군으로 불리는 최씨 아저씨는

개구리참외 여나므개를 따 주십니다.

 

억새가 뒤덮은 강둑을 넘어, 돌로 쌓은 제방의 기단을 지나면 어린 우리 키를 넘는 쑥대 숲입니다.

아직 물에 들어가기엔 좀 이른 시간, 쑥대를 꺽어 올림픽우승선수에게 주는 월계관처럼 둥글게 말아쓰고

허리춤에도 꺽은 쑥대를 꽂아 완벽한 위장을 한 우리는 곧장 총싸움에 돌입합니다.

몸을 숨기느라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면 뺨에 시원한 모래가 닿고 코로 풀냄새가 들어옵니다.

덤블링을 하고 싸름을 하고 한바탕 난장을 치고나면 쑥대밭이 정말 쑥대밭으로 엉망이 됩니다.

 

이제 물가로 갑니다

가지고온 수박과 참외는 물가 모래를 파고 묻어 둡니다. 두어뼘만 파도 모래바닥에서는 찬물이 솟아나와 수박이 시원해 지니까요.

그리고 옷과 신발을 벗어 자갈로 눌러둡니다.

 

그새 해에 달아오른 자갈밭을 지나 맨발로 뜨거워진 모래위를 달립니다.

미지근해진 얉은 물을 지나 종아리가 잠길 쯤이면 차가운 물이 튀어오릅니다.

 

섬진강은 물살이 셉니다.  허벅지가 잠길 정도만 들어가도 물속에 잔자갈도 없이 모래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래가 물살에 세차게 흘러갑니다.

잠깐 서 있으면 발바닥 주변 모래가 파여 나가고 발이 모래속으로 들어갑니다.

물살을 이기며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모래속에 숨어있던 모래무지가 밟혀서 발바닥을 간지럽힙니다.

 

다리를 펴고 엉덩이만 바닥에 댄 채 팔을 쫙 벌립니다.  물살을 받은 몸이 떠내려 갑니다.

비행기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듯 우리는 물살을 받아 흘러갑니다.

 

한시간쯤 이렇게 놀다보면 입술이 새파래집니다. 온 몸에 닭살이 돋고 추워집니다.

강가로 나와 따뜻하게 달궈진 모래속에 몸을 묻습니다.

달아오른 자갈중에 예쁜놈을 골라 귀에 대고 고개를 기울이면 귀에서 물이 빠집니다.

이제 묻어둔 수박과 참외로 배를 채울 시간입니다.

 

배가 부르면 잠시 자러갑니다. 이제 낮이라 그냥 햇볕아래 있다가는 모두 뻘겋게 익은 가재꼴이 되니까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로 갑니다. 다릿발은 우리가 올라가서 누울만큼 넓고 시원해서 딱 좋은 낮잠터입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속에서 여울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꿀잠을 잡니다.

자다 더워서 일어 납니다.  어느새 다릿발에도 해가 들어와 뜨거워졌습니다.

 

누군가 강가에 나가 유난히 짙은 쑥색의 납작한 돌 하나를 줏어옵니다.

돌찾기 입니다. 다릿발에서 돌을 던지고 하얀 강바닥 모래위에서 잘 보이는 쑥색돌을

먼저 집어오는 사람이 이기는 단순한 게임입니다.

 

다릿발 사이는 물이 깊어 아이들 키를 훌쩍 넘습니다.

잠수해서 눈을 뜨고 잘 살펴야 돌을 찾을 수 있는데, 물살이 있으니

본다고 바로 줏을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돌찾기를 하는데 갑자기 영표가 얼굴이 벌겋게되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는 미친듯이 머리를 물속에 박고 흔들어댑니다.

서너번 머리를 뒤흔들던 영표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다릿발 조금 윗쪽에 있던

기수에게 욕질을 하며 쫓아갑니다.

 

기수는 죽겠다고 웃으면서 강가로 도망갑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기수가 서 있던 위쪽에서 우리들 사이로 뭐가 떠내려 옵니다.

네. 똥입니다.

망할 기수놈이 수박을 잔뜩 처먹고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자 우리 위쪽에 선채로 똥을 갈겨버린 것입니다.

맨 처음 떠내려온 똥 선발대가 마침 물속에서 쑥돌을 찾아 기쁘게 솟아오르던 영표 정수리에 예쁘게 앉은 것이고요.

 

막 나와 따끈한 똥을 무스삼아 머리에 칠한 영표가 눈 뒤집혀 기수를 쫓는 뒤를 따라

우리도 똥을 피하러 강가로 나옵니다.

피하긴 했어도 어째서인지 떠내려오는 똥이 자꾸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에 뒤를 자꾸 돌아보며 강가로 나옵니다.

 

도망간 기수는 어느새 강둑에서  똥묻은 영표는 똥표라고 소리치며 놀립니다.

잡히는 죽인다고 악 쓰며 쫓아가다 지친 기수가 돌아옵니다.

 

그 강물위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흘러갔습니다.

아름답던 풍경과 친구들과 어린시절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푸짐하고 따끈하던 기수의 똥도 흘러갔습니다.

 

기수놈이 다섯살박이 이쁜 딸을 남기고 뜬금없는 급성백혈병으로 죽은지도 벌써5년입니다.

그녀석이 죽던 그때처럼 섬진강 푸른 강물위에 하얀 매화꽃이 그 시절의 은어떼처럼 비치겠네요.

 

** 똥게 개설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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