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놓고 보니 똥 얘기를 참 많이 쓰셨더군여...리리로로님
똥게의 여신이라고 불러도 될거같아여..
이렇게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진 몰랐네여..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
건필을 빕니다!!ㅋㅋㅋ
종종 써주세여 일화들 ㅋㅋㅋㅋ
원본글 링크
변비 : http://todayhumor.com/?humorbest_319393
인도에서 쉬한 이야기 : http://todayhumor.com/?humorbest_321947
인도에서 응가한 이야기 : http://todayhumor.com/?humorbest_321903
채변검사 : http://todayhumor.com/?humorbest_351217
지하철역에서 생중계 : http://todayhumor.com/?humorbest_376198
지허철에서 봉변 당하는st : http://todayhumor.com/?humorbest_350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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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나는 변비가 심각하게 심하다.
얼마나 심각하게 심하냐면
먹는 것은 진짜 엄청나게 많은데, 어쩔 때는 일주일까지도 배출이 안될 때가 있다.
분명 머리꼭대기까지 응가가 찬 기분인데, 귀를 파면 귀지대신 응가가 나올 것만 같은데.
아무리 화장실에가서 힘을줘도
비빔밥 위에 챔기름 떨어뜨리 듯, 두 방울 정도....가 최대량이다.
이 만성변비는 어릴때부터 심했다.
고등학교때는 카라멜 스타일의 씹어먹는 변비약을 먹었었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하루 정량이 2알임에도 10알을 다 씹어먹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숨만 쉬어도, 꽉 찬 새 치약에 손가락을 대듯 흘러나왔드랬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래된 나의 변비.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변비의 기억은 7살때다.
내가 일곱살때, 나는 그때 드디어 스스로 변기에 볼 일을 볼 수 있었지.
굉장히 빠른 변기습득에 동네에선 끙아영재라는 별명이 생기진 않았어.
어느 날이었어.
그래. 바로 그날.
그날 유난히 햇빛이 화창하더라고.
오랜만에 끙아가 땡긴 나는 화장실로 뛰어갔어.
나는 그때만해도 옛날 한옥집에 살고 있었는데, 변기는 대문 밖에 있는 푸세식이었어.
나무판자로 되어있고, 한번 갔다나오면 끙아향 바디샴푸로 샤워를 한듯한 냄새를 풍기는 그곳.
하지만 내게 그곳은 일주일에 한번만 허락되는 신성한 공간이었어.
기쁜 마음으로 칙간에 뛰어들어갔어.
(아 이건 여담인데, 아빠 어릴적 동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화장실에서 응가하시다 칙간에다 애기를 낳으셨대. 그래서 그때 태어난 아기 이름 "김칙간")
끄으으으으응아!
끄으으으응아....!!
참 이상했지.
그날따라 삼십분 넘게 끙아song을 불러도 나오지 않는거야.
문밖에선 엄마의 "밥먹어라"는 1차 호출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초조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32비트의 심장박동이 항문주위를 더욱 강하게 옥죄어옵니다.
"너 빨리 안나올래"라는 2차 경고가 들려옵니다.
나는 그냥 중간에 끊고 나가고 싶었어.
하지만 때는 늦었지.
중간에
걸렸거든.
정확히 반.
아주 공평하게 나의 대장과 칙간은 정확히 항문을 경계로
끙아를 반띵하고 있었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말이야.
세상에 공평, 평등이란 단어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지.
마음이 약한 나는 어느 한 쪽의 편도 들어줄 수 없었어.
그렇다고 7살 어린나이의 내겐 무자르듯 싹둑 자를 수 있는 항문의 힘도 없었지.
그때 자르려고 자르려고 안간힘을 써도 안됐어.
문득 든 생각이 항문에 톱니바퀴를 달고싶다.......
잠깐 나의 꿈이 미스코리아에서 과학자로 바뀌는 순간이었지.
그때였어.
화가 난 엄마는 화장실문을 쿠아아아앙하고 잡아당기셨고,
오로지 끈으로만 고정되어있는 잠금장치는 순식간에 떨어져나갔어.
"너 화장실에서 뭐해! 빨리 안나와? 혼날래?"
라며 엄마는 팬티도 채 입지못한 나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셨어.
그래
생각해보면 우리엄마가 현명하셨던거야
만약 그때 팬티를 입었더라면.........
엉덩이 몽고반점이 고유의 푸른빛을 잃었을 테니까.
결론 : 응가 잘하는 것도 복이다.
지지리도 박복한 년.
인도에서 쉬한 이야기.
인도 배낭여행을 했을 때다.
그때 나는 늘 화장실때문에 곤욕을 치루곤했다.
은근히 비위가 약해서그런게 아니라, 인도 공중화장실마다, 심지어 돈내고 들어가는 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돈을 냈기때문인지. 이게 화장실 이용료인지 관람료인지 헷갈리게 각 칸마다 내용물이 가득차있는데, 이게 색깔이 황토색도있고 진갈색도 있고, 심지어 검정색도있고 그 색채의 조합이 마치 색채의 마술사 샤갈 같기는 개뿔 가뜩이나 심한변비가 더 심해졌었다.
인도는 땅덩어리가 넓기때문에, 보통 이동시간이 열시간이 넘는것은 기본이다.
기차를 이용할때는 화장실이 있어서 괜찮은데, 버스를 탈때는 미리 볼일을 봐놓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그 낭패의 중심에 내가 서있었다.
그날 나는 총 1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버스로 이동해야만 했는데,
역시나 버스 출반 전 들른 1루피짜리 공중화장실은 다른사람들의 응가로 가득차 있었다.
결국 볼일을 못보고 버스에 올라탔던게 화근이었다.
아니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난 대인배이기때문에 내 방광도 크다고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콜라랑 물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버스 출발 약 세시간 후.
온몸이 땀으로 범벅됐다.
미치겠네미치겠네를 64비트로 내뱉었다.
난 침대칸에 탔었는데, 같이 탄 일행도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곧 죽는거 아니냐며
기내에서 몰래갖고내린 담요를 비닐봉지 안에 깔아주며 여기에 흡수시키라고했다.
그리고 매너좋게 뒤돌아 귀까지 막고 앉은 일행...
난 차마 그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일단...그 담요깐 비닐봉지를 밑에 깔고 바지를 내렸는데
아직 이성이 남아있던 터라, 차마 쉬를 할수가 없었다.
그러기를 또 세시간 후..
인도 사람들이 버스기사에게 버스를 잠시 세워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새벽,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버스가 멈췄다.
그러자 자고 있던 인도사람들도 벌떡일어나 우루루 버스에서 내려 도로변에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했다.
난 고민했다.
밖에서 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다.
한국사람은 몇명밖에 없다. 근데 그 마저도 또 남자다. 그 사람들도 밖에서 쉬를 하고있다.
여자는 나 혼자다.
근데 난 미칠지경이다.
내 몸 어딘가를 바늘로 찌르면 바로 쉬가 나올만큼 온몸이 쉬로 가득찬지 오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기도 전에 난 맨발로 침대칸에서 점프를해서 뛰어내렸다.
일행이 던져주는 슬리퍼를 끌고 버스에서 뛰쳐내리긴 했지만,
허허벌판이다.
나무하나 없다.
바위도 없다.
인도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과연 내가 쉬를 할 것이지 말 것인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버스기사는 빨리 타지않으면 출발해버리겠다고 소리치고있었다.
일단 바지를 내렸다.
오오..하는 수근거림.
아 어쩌지.
이제 문제는 앞을 보고 볼일을 보느냐, 뒤를 보고 볼일을 하느냐였는데..
차마 그 큰 많은 눈동자들을 마주보며 쉬를 할 자신은 없었다.
난 과감히 뒤를돌아 엉덩이를 까고 쉬를하기 시작했다.
칠흙같이 까만 밤거리의 하얀엉덩이두쪽. 마치 팥죽속의 경단이 된 기분이다.
난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잠깐만 참으면된다. 잠깐의 부끄러움만 참으면 난 이 방광의 엄청난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나.......
잠깐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참았던 탓인지 끝없이 쏟아져나오고있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수근거림이 더 크게들려온다.
인도말을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작은동양여자의 무한한 에너지분출에 놀란 것 같았다.
긴 여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인도사람들은 그 큰눈으로 날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한국사람들은...애써 내 눈을 피하며 자는척을 했지만 입가에 그 미소를 어쩔꺼냥;ㅐ모하ㅓㄴㅇㄹ;ㅗㅁ;리ㅏㅓㅏ오;ㅎ마ㅓ대ㅑㄹ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나는 이불안에서 발차기 공인8단이 됨.
2탄 인도에서 응가한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인도에서 응가한 이야기
인도에서 쉬한 이야기에 이은 인도에서 응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인도란 타지마할이 있는 나라 '인도'이지만, 글의 내용상 그냥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에서...라고 봐도 무방함을 밝히는 바입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쉬한 이후로,
나에게 노상방뇨란 희열을알게 해줬다.
그 후, 일정은 인도 사막 사파리를 하는 것이었는데,
사막 역시 화장실이 있을리 없었다.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낙타 등에 올라타고 몇시간을 가다보면 엉덩이도 아프고 꽤 힘들다.
내가 탄 낙타이름은 조니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좀 간지났다.
다른 사람들의 낙타 이름은 원빈, 장동건 등이었다.
워낙 한국관광객이 많다보니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했다.
난겁이 꽤 많은편이어서 낙타를 탈때마다 "엄마야!!"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때마다
낙타몰이꾼은 어설픈 한국말로
"엄마는 꼬리아에 있어"라고 날 놀려댔다.
그렇게 도착한 사막 한가운데.
해는 뉘엿뉘엿지고 추운 저녁이 됐다.
낮에는 해가 너무 뜨거워서 땀이 줄줄흐르지만, 사막의 저녁은 해가 떨어지고나면 급속히
모래온도가 식으면서 겨울옷을입고 침낭속에 들어가서 불을 지펴도 덜덜떨면서 자야한다.
밤이돼서 나무를 주어다가 불을지피고 모두 삥 둘러앉아 이런저런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근데...그때 신호가 왔다.
하필 사막에서 신호가 오다니.
난감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칠흙같은 어둠이 내렸다는것.
나는 일행들 몰래 빠져나와 캄캄한 모래언덕으로 향했다.
그리고 모래를 대충 파내고 응가를 하기 시작했다.
사막에서의 응가는
모래의 차가운 기운과 응가의 뜨끈한 김이 동시에 내 엉덩이를 때리는 멜랑꼴리한 기분을 느끼게한다.
한덩어리를 떨어트렸지만...
또 남았다.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힘을 주자니, 탑을 쌓고 올라와 응가가 내 엉덩이에 입맞춤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쭈그려앉은상태에서 몇발자국 옮겨 다시 힘을줬다.
근데 또 남았다...
엠병
다시 몇발자국 옮겨 또 눴다.
근데 또..남았다...
다리를 미친듯이 저려오고 멀리서는 날 찾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랜턴이 점점 가까워져오고있었다.
빨리 끊던가 빼내던가 해야했다.
나는 힘을 빡!!!하고줬다.
그때였다.
엉덩이에 뜨끈한 것이 닿았다.
이런씨.
응가구나!
난 고개를 돌려 내 엉덩이를 쳐다봤다가 너무깜짝놀라서 응가위에 주저앉을뻔했다.
내 엉덩이에 닿은 뜨끈한 그것은 응가가 아니라
내 낙타 조니뎁의 혀였다.
우리가 타고온 낙타들은 그냥 사막에 풀어두는데, 도망을 가지못하게(보폭을 좁게하기위해서) 앞발은 앞발끼리 묶어두고, 뒷발을 뒷발끼리 끈으로 묶어둔다.
그래서 멀리는 가지못하고 그 주위를 돌아다닐 수는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낙타를 풀어놓은 곳인줄 모르고 그곳에서 응가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내 낙타 조니뎁은 초코렛색이어서 더더욱이 안보였다.
아무튼 조니뎁 덕에...난 휴지없이도 뒷처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불빛이 내 얼굴을 비췄다.
일행이 날 찾아온것이다.
"거기서 뭐해? 괜찮아?" 라고 묻는 친절한 일행을 향해 나는 미친듯이 소리쳤다.
"저리가!!!오지마!!!!!!!!"
"으..으응..아..알겠어..빨리와 사람들기다려.."
라고 말하고 일행은 멀어져갔다.
난 대충 바지를 올리입고 기분이 매우 안좋아보이는 조니뎁에게 목례를 한뒤 일행들에게 유유히사라졌다.
그리고 다음날.
어디선가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으악!!여기 똥밭이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부스스 일어나서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는 똥밭으로 향했다.
가관이었다.
1자 모양의 응가들이 2차선 도로의 중앙선처럼 일렬로 굳어있었다.
나도 덩달아 우엑거렸지만 난 사실 내똥이라 안더러웠지롱
그렇게 사막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조니뎁이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
낙타몰이꾼말로는 낙타는 기분이 좋으면 침을뱉는다고했는데
조니뎁표정은 그게아니였음..........
진심으로 카악퉤하고 뱉었음.
그 분노에 가득찬 눈빛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쏘리.
채변검사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주기적으로 채변검사를 했었다.
첫 채변검사는 초등학교1학년에 갓 입학한 어느날이었다.
매우 인자하고 기품있으신 여자담임선생님께서
교탁에 올곧게 서서는
"여러분, 내일까지 똥가져오세요" 하시기에
어린 나이에 나는 채변검사라는 의미를 모른채
담임선생님의 취미가 똥수집인줄로만 알았었다.
난 낯가림이 심한성격이라 별로 친해지지 않은 담임선생님께
내 똥을 갖다드린다는게 아직은 이른 것 같아서는 개뿔 그때부터 변비가 심해서
몇날며칠을 나만 똥을 내지 못했었다.
난 매일 아침마다 선생님께 아침인사대신
"똥가져왔니?" 소리를 들어야했고
그때마다 난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흔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선생님께서는 드디어 내게 최후통첩을 하셨다.
"송이야. 안되겠다. 너만 똥을 안냈어. 빨리 지금 집에가서 똥눠서 가져와."
난 선생님께서 건네주시는 채변봉투를 들고 5분거리에 있는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하교시간이 아닌데도 집에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는 깜짝놀라셨고
나의 자초지정을 들으시더니 화장실변기 옆에 신문지 한장을 깔아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줘도 응가는 나올생각을 하지않았고
급기야 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어어엉 엄마 똥이안나와 으어어엉 나만 똥 안냈대"
라고 울부짖었다.
순간 엄마의 눈은 매섭게 빛났고
자신의 딸이 남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날 화장실에서 얼른 끌어내시고는 문을걸어잠그고 힘을주기 시작하셨다.
엄마의 힘주는 소리는 화장실문밖까지 들려왔고
나도 덩달아 손에 힘을주며 끙끙거리며 엄마를 응원했다.
그렇게 오분여의 시간이흘렀고
엄마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채변봉투를 건네주셨다.
난 너무나 기뻤다.
엄마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길로 난 채변봉투를 흔들며 학교까지 미칠듯한 속도로 뛰어갔다.
그리고 수업중인 뒷문을 열어제끼며
"선샌닌!!똥가져왔어영!!!!!!헤헷"
이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당황하셨지만, 애써 웃으시며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고
그런 선생님의 고운 두 손위에 채변봉투를 올려놓자
갑자기 엄마야를 찾으시더니 집게손가락으로 채변봉투끝을 들어올리며
양호선생님께 가져다주라고 명하셨다.
난 해맑은 표정으로 양호실에 달려가서 문을 열어제쳤는데
그곳엔 이미 나에 앞서 도착한 똥봉투들이 가득했다.
난 아직까지 살면서 그때처럼 여러사람의 응가를 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무리속에 자랑스럽게 내 봉투를 끼워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 난 정상판정을 받았고 회충약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후로도 몇번 채변검사를 더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마다 난 내것을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빠도 같은 초등학교였으므로 오빠것을 반띵해서 가져가거나
(서로 더 많이가져가겠다고 서로 더 푸느라 싸운기억도 난다.)
아빠가 출근전 모닝응가를 하실때 앞에서 기다렸다가 젓가락을 건네드리곤했다.
(나무 젓가락으로 퍼야하는데 아빠젓가락을 드렸다가 요단강에 발담그고옴)
지금은 어른이 돼어서 채변검사를 할 일은 없지만
가끔씩 채변검사를 했던 순수한 옛 시절이 떠오를때면 밥맛떨어짐.
지하철에서 봉변 당하는st
나는 지하철에서 종종 봉변을 당한다.
지하철만 타면 나는 국민호구로 변신!!
불특정 인물들의 타겟이되어 여러사람의 눈 요깃거리로 전락하곤 한다.
naber에 "2호선 호구녀" 검색하면 나올리가없음.
아침마다 붐비는 2하철 지호선에 몸을 싣고 일터로 끌려가는 나
난 지식인이기때문에 아침마다 배포되는 무료 석간신문은 빼놓지않고 읽는다.
신촌쯤에서는 거의 자리가 나기때문에 자리에 우아하게 앉아 신문을 읽곤하는데,
을지로 입구쯤에서는 3페이지쯤 읽고있는 신문이 갑자기 없어진다.
폐지줍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가끔 아저씨들이 내가 읽고 있는 신문을 그냥 가져가버리시는 것이다.
난 분명 열심히 읽고있었는데
내가 너무 신문에 빠져있으니
"어딜봐 날봐! 나만봐!!" 라는 눈빛으로 신문을 가져가버리시곤
유유히 뒤돌아 다음칸으로 가버리는 쿨한 폐지수집가.
이제는 익숙해져서 폐지줍는 분이 지나가시면 읽던 신문을 접어 무릎위에 올려놓는다.
읽고있는 도중 가져가버리시면 내 앞에있던 사람과 허공에 떠있는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하이파이브를 해야할지 손가락을 짤라야할지 고민하다 결국 나는 "내가 바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를 외친다.
어느날은 집에가는 지하철안, 자리에 앉아가고있었는데
내 옆에 한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리고 곧 다음역
문이 열리기전 문 너머로 내 옆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떼들의 보이지않는 경쟁이 시작됐다.
3
2
1
드디어 문이열렸고
아주머니 하이에나 두분이 달려오셨다!!
그렇게 파마한 아주머니 하이에나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셨고
그분의 친구로 보이는 꽃무늬옷 하이에나 아주머니는 내 무릎위에 앉으셨다.
......
난 어찌해야할지몰라 낑낑거리며 아주머니의 궁뎅이를 피해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런 나를보던 아주머니들께서는
"왜 일어나?"
"어머 괜찮은데. 앉지? 그냥 가도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