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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같은 군생활이었지만 마지막에 울컥했던 일
게시물ID : military_488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춘
추천 : 10
조회수 : 1261회
댓글수 : 41개
등록시간 : 2014/09/12 18:30:16

 나름 군생활을 잘 했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주특기를 잘 했고, 내무생활 역시 욕 먹은 적 거의 없이 그렇게 잘 지내왔다.

 엿같은 선임들의 말도 안되는 방식엔 후임들을 대표해서 나가 말을 하고 개선했고
 병신같은 후임들의 말도 안되는 방식엔 선임들을 대표해서 나가 말을 하고 개선했다.

 부대내에서 모든 길을 알고 있는 유일한 운전병과 사고, 사건 순간에도 그를 모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모든게 탄탄했던 군생활,

 전역을 61일 남기고 영창을 가게 되었다. 잘 못 이라면 내 잘 못 이지만, 간부를 너무 믿었던 것 역시 잘 못이었다.
 영창을 가기 전 날, 나로 인해 전 병력이 3박 4일간의 훈련이 끝난 날임에도 불구하고 씻지도 못 하고 싸놨던 군장 그대로 들쳐엎고
 연병장으로 나가 5시간동안 지난 3박 4일의 훈련보다 빡센 얼차려를 받았다.

 훈련이 끝났고 저녁도 못 먹고 내리 5시간동안 연병장에서 뒹굴다보니 쓰러지는 선후임들도 있었다.

 밤 11시 씻지도 못 하고 잠이 들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각 생활관에 돌면서 사과를 했다.
 나는 잠을 자지 못 하고 새벽 3시까지 다시 지통실에서 얼차려를 받다가 당직사관이 들어가서 자라는 말 한마디에 들어가서 잤다.

 다음날 행보관님의 호출, 부대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혼자서 들어가서 잤다고 생각했나보다.
 옆에 있던 당직사관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따.

 결국 영창을 가게 되었고 그날 급하게 짐을 쌌다. 아주 오랜 시간 영창에 있었다.
 
 오랜 영창끝에 부대로 복귀 하는 날 평소 내가 많이 혼냈던 후임이 나를 데리러 왔다.
 담배도 피지 않는 녀석인데 주머니에서 내가 즐겨피던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더니, '땡 상병님, 한 대 피고 가시지 말입니다.'

 오랜만에 피는 담배는 정말로 맛있었다.

 부대로 복귀하고 다음 날 유격훈련 출발. 원래는 운전병이라 행군을 하지 않지만 이미 화가날대로 화가 난 대대장은 나에게 행군을 할 것을 요구했다.

 부대로 복귀한 날 개인정비시간, 들어보니 나 때문에 전병력 전화사용 금지, 티비 시청 금지, 면회, 외박, 휴가 금지령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 냉동을 못 먹었을 것이라며 생활관 후임들이 나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주면서 들었다.

 청소시간에, 다시 각 생활관에 돌면서 후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특히 면회, 외박, 휴가가 간절했을 일, 이등병들에게..,

 하지만 되려 애들은 사과하지 마시라고, 내 잘 못 아니라. 내가 독박쓴거라고 그렇게 나를 챙겨주었다.
 옆에 있던, 이제는 한 분대의 분대장인 4개월 후임은 절대 미안하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격을 다녀오고 나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니 전역날이 다가왔다.
 영창으로 인해 후임들보다 늦게 전역하는 날 아침에는 태풍이 왔다. 일찍 나가고 싶었지만 전병력 실외활동 금지.
 휴가자, 전역자 일단 대기. 아침밥을 안먹으려 했는데 친하게 지냈던 4개월 차 후임 녀석들이 마지막 식사나 하자며
 건조대에 라면과 냉동, 만두 등을 돌려왔더라.

 그걸 먹고 대기하는데 이제 곧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대장님이 방송을 했다.

 오늘 전역자 도열 하지 말라는 방송.,
 뭐 인사야 어제 오늘 많이 해두었으니 상관은 없겠다. 싶었고 결국 나는 전역신고를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이미 시간은 12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애들이 부산스러워지더니 평소 친하게 지냈던 후임 2명이 담배 하나 피자고 해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하나 피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명은 후다닥 들어가고 왠일인지 남은 한 명이 자꾸 시간을 끄는 것 같더라고..,
 여튼 인사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 놈이 위병소까지 돌아가야 하는 길로 가면서 이야기나 하자고 하더라..
 나야 뭐 상관없겠지.., 싶어서 둘이 걸어서 이야기 하고 가는데 부대에서 위병소로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꺽으면
 더 이상 우리 부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에 우리 부대 애들 전체가 도열을 하고 있더라..

 형 수고했어요, 형 놀러갈꼐요, 형 전화 할꼐요.... 
 점심시간이고 그날 태풍이 불어 우의를 입고는 있었겠지만 다들 젖는게 싫었을 텐데 다들 나와줘서 인사를 해주니 고마웠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내가 22개월을 이 곳에서 보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엿같은 군생활, 불합리했던 영창, 후임의 죽음을 모두 그 순간 이 곳에 묻고 나올 수 있었다.
 몇 주 뒤 추석 때 부대 내 후임들한테 약 30통의 전화. 형 밖에서 보내는 명절은 어때..

 보통 나가면 남인데, 아직까지 나를 기억해주는구나, 나로인해 피해도 많이 받았을텐데..
 고맙다.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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