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전쟁 당시 처절했던 전투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국군 전사자 유해 사진이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2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부터 입수한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 사진에는 미처 쏴 보지도 못한 탄띠를 품고 있거나 팔목 뼈에 멈춰버린 손목시계가 차여있는 숙연한 장면이 담겨 있다.
땅속에 묻히지 못한 유해 일부가 해발 1천400m 고지에서 전투화와 나뒹구는 안타까운 장면도 들어있다.
이들 유해는 신원 확인이 아직 안 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735고지에서 발견된 국군 유해는 10여 개의 묶음으로 된 기관총탄과 뒤섞인채 발굴됐다.
735고지는 1951년 8월 국군 2사단과 중공군이 서로 뺏고 빼앗기는 네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고지의 실제 높이는 해발 735m였지만 수많은 포격으로 높이가 1m가 낮아져 실제 높이는 734m라고 한다.
개미 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사력을 다했지만 미처 기관포를 다 쏴 볼 겨를도 없이 산화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 용인의 무명 457고지에서 발굴된 유해 왼쪽 팔목 뼈에는 주인과 운명을 같이한 듯 멈춰선 손목시계가 차여 있었다. 초침과 분침이 사라져 몇 시에 시계가 멈췄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고지는 1951년 1월25일부터 2월2일까지 국군 1사단 15연대와 중공군 150사단 448연대가 혈전을 벌였던 곳이다.
일명 '썬더볼트 작전'으로 불리는 457고지 전투에서는 중공군 참전 이후 계속된 패배와 후퇴를 만회하기 위해 목숨을 건 기습작전이 전개됐다. 올해 처음 발굴작업이 진행된 이곳에서 유해 70여구 이상이 수습됐다.
지난 14일 강원도 설악산 해발 1천400m 저항령 고지에서는 돌밭에 나뒹구는 녹슨 철모와 헤진 전투화, 왼쪽 상박골(위팔뼈) 하나가 발견됐다. 돌밭으로 이뤄진 곳이다 보니 땅속에 묻혀 있는 유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발굴된 지역 중 가장 높고 험준한 곳이다.
저항령은 해발 1천708m의 대청봉과 1천600m의 황철봉 사이에 있는 곳으로, 1951년 5월7일부터 17일까지 국군 수도사단과 11사단이 북한군 6사단 및 12사단에 맞서 혈전을 벌였다.
국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며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향로봉 지역의 북한군까지 격퇴해 설악산 일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백두산 종주에 나섰던 등산객들이 저항령 일대에서 사람 뼈가 발견된다는 신고를 해온 것이 발굴 계기가 됐다.
유해발굴감식단의 한 관계자는 "비바람 찬 서리 속에서 기나긴 세월을 기다린 고귀한 전사자 유해"라면서 "그분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일이 군복을 입은 모든 사람들의 책무"라고 말했다.
전사자 유해 발굴에 참여한 육군의 한 관계자는 "발굴 현장에서는 손에 수류탄을 쥔 유해나 대검이 꽂혀 있는 유해도 발견된다"면서 "나라를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그분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