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과거] 산문 - 구간 반복
게시물ID : readers_4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울텍스
추천 : 3
조회수 : 1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15:23:31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빨간 모직 코트를 걸치고 높은 굽이 있는 워커를 신고 있었다. 단지 서 있는 것만은 아니였다. 하늘에서 자꾸 무언갈 찾고 있었다. 나도 하늘에서 열심히 그녀가 찾을 법한 것들을 찾아보았지만 하늘에는 눈과 구름뿐이였다. 그렇다면 눈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구름을 보는 것일까? 혹시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눈의 결정은 없다는 얘기를 인터넷의 어느 사이트에서 보아서 정말 그런가 하고 보았던 걸까. 하지만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육안으로 어떻게 눈의 결정체를 관찰한단 말인가. 아니 혹시 모른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는 달라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채 몇 분의 시간도 갖지 않고 떠나는 이 저녁의 거리를 그녀만이 홀로 서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문지기였을까. 그렇다면 무슨 문지기였을까. 눈의 문지기였을까. 구름의 문지기였을까. 지금 문득 생각해보니 하늘의 문지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어 속담에 이런게 있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모든 구름엔 은빛 안감 - 의역하면 섬광같은 것이다 -이 있다. 그녀는 몇 년마다 한 번 열린다는 하늘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나는 오들오들 추워졌다. 그녀가 문지기건 아니건 간에 나는 이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목적도 없이 이유도 없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내 귀에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이어폰이 꽂혀져 있었다.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데로 갈 것' - 내가 산책을 나온 이유가 생각났다. 무의식적으로 이 가사를 머릿속에서 되뇌이고 있었나보다. - 하지만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였다. 나는 문득 황금같은 주말에 씻지도 않고 아침을 라면으로 떼우고는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모든 인과관계를 깨닫게 되자 난 혼란에 빠져버렸다. 내가 지금 걷는 이유와 목표를 알게 된 것이다. -아니 이유와 목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바른 설명이지만- 일단 나는 몸을 데우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거리의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커플들과 주말을 맞아 외식을 하러 나온 가족들, 혼자서 산더미 같은 파지를 끌고 파란 불을 기다리는 할머니, 노스페이스 패딩이 아닌 네파 패딩을 입고 웃고 떠들며 가는 학생 무리들, 그리고 눈을 맞는 한 여자. 그녀가 내 눈 앞에 또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빌 수 밖에 없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난 분명히 그녀 옆을 지나갈 때 그녀가 한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문지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만 있을것 같던 그녀가 또 내 눈앞에서 무언갈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도 아까 보았던 것처럼 눈을 맞고 서 있었다. 단지 서 있는 것만은 아니였다. 그녀에게서 자꾸 무언갈 찾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아까의 그 자세로 하늘에서 무언갈 찾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서 찾아야하는 것은 그녀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다시 하늘을 올려보았다. 잿빛 구름 배경에 눈은 아까보다 더 뭉쳐져서 단단하게 그리고 촘촘하게 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아까 눈의 결정에 대한 얘기가 생각났다.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는 눈들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눈들은 바람 가는 데로 떨어지거나 날아갔다. 마치 밤하늘에 노란 별들이 날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눈들이 내 얼굴을 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고개를 흔들었다. 앞을 보니 그녀는 어느새 드디어 간듯 하다. 생각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약간 큰 듯한 사이즈의 야상에다 안에는 니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서있었다. 아는 사람이였던가, 머리를 뒤집어 보았지만 그런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하늘을 보았다. 저기 먼 하늘에 구름이 밀려가고 볕이 드는 것을 보았다. 아까 그녀가 찾던 것이 저것이였을까? 몸도 녹일겸, 그것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옷에 쌓인 눈을 털고 신호등 앞에 섰을 때, -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은 그 부분에서 구간 반복되고 있었다.

 

 

--

문단 구분을 하기가 힘드네요. 다닥다닥 붙어서 읽기 힘드셨던 분들께 죄송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