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모든 예술은 일종의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목적성에 대해선 음악 미학에서 좀 벗어나는 주제라 자세히 언급하긴 힘들다. 또 언급하기에는 너무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스러운 주제인 것 같다. 여튼 음악은 인간의 모든 예술 활동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실재와 가까운 것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음악은 별다른 보조적 수단이 없이, 오직 음향만으로 실재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관념적인 공허한 의견만이 아니라 실제로 음악 자체가 가진 내재적 규칙(코드나 화성)이 우리의 감성과 일정하게 조응하기 때문이다.
2.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감성과 공명하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도 이 부분에 대한 합리적인 증명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것은 합리적인 증명의 영역을 초월해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감성이 음악과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하지 않는다면, 감동 자체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럴 때는 음악이란 단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조율된 소음의 덩어리일 뿐이다. 동물에게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들려줘도, 감동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음악을 통해서 감동을 체험한다.
3.
음악이 가장 궁극적인 실재와 유사한 것인지,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게체인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또한 인간이 예술을 통해 느끼는 감동은 개개인의 감성에 따라 달라지고, 그 감성의 여부도 사고 능력의 깊이에 따라 상이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지에 대해선 어떤 철학도 과학도 완벽하게 설명은 못한다. 내게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하나의 설명은 오직 음악만이 우리의 존재를 우발적이고 우연적일 뿐인 물리적인 존재의 세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4.
음반을 부수거나, 악보를 찢어버리거나, 심지어는 악기들을 모두 다 때려부순다고 해도 음악은 지울 수가 없다. 악기는 형상(바이올린이라던지 피아노라던지)과 질료(목재)의 결합이지만, 음악 자체는 순수하게 음향을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 존재들이 처한 '물리적 상황들의 우연적 만남이라는 현실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사르트르는 그것을 원에 비유했다. 하나의 '고정된 중심으로 회ㅤㅈㅝㄴ하는 직선'인 원처럼, 그것은 영원하고 한계가 없다. 이 세계에 기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음악은 기적의 체험과 가장 유사한 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