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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을 고백합니다.
게시물ID : gomin_4907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yInSad
추천 : 12
조회수 : 505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2/11/30 21:23:54

안녕하세요.. 저는 동두천에 살고있는 손성훈 이라고 합니다.

저는 빠른 95년생으로 곧 성인이 될 대한건아 입니다.

제목처럼 제 인생을 고백하려 합니다.

글이 길어질 수 있으니 바쁘신 분들은 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들의 잦은 다툼과 폭력, 또한 외삼촌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저와 저보다 한살이 어린 남동생이 굉장히 어렸을 때 부터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 하셨고,

그 과정에서 저와 제 동생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아버지와 어머니를 오가며 생활하였습니다.

몇년은 아버지가 키우시다가 또 몇년은 어머니가 데려가 키우시고...

그 과정에서 저는 서울 돈암동에 살다가 의정부로 가게 되었고, 의정부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 하였습니다.

초등학생때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조금 활발하고 산만한.. 밝은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문제가 조금 달라졌지요..

전 중학생때 흔히 말하는 '따' 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기 일수였고, 좀 논다 하는 아이들은 저를 괴롭히고 끌고가서 때리고, 돈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다 억하심정이 생겨 그 아이들에게 반항이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질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친구로 두게 되었고,

저는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아닌 괴롭히는 쪽이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부족한 내신점수로 인해 불량하기로 소문난 학교에 진학하였고,

입학하고서 몇일이 지나지 않아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론... 공갈.. 절도.. 특수절도.. 사기.. 같은.. 자잘한 범죄들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기소유예를 받고.. 보호관찰을 받고.. 소년분류심사원에 갔다가 다시 보호관찰을 받고..

그러고도 저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다시 절도를 저질렀습니다..

절도를 저지르고는 곧바로 도망쳐 나와 입학예정이였던 기술학교 입학식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다가는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를 도망치게 만들었고,

전.. 처벌이 두려워 무작정 도주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오랜기간을 교재하였던 여자친구의 집으로 숨어들어, 여자친구에게는 말하지 않고,

그곳에서 택배일을 하면서 조용히 먹고 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제 인생이 너무 한심하였고.. 정말 '인간 쓰레기'라는 단어가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자살을 고민하고 있을 때..

제 친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왔다구요..

조용히 불러 하루 일을 같이 하고서 밥을 먹이고 잘 다독여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때 동생이 제게 말해주더군요.. 형 11월 21일이 재판이라고..

그리하여 저는 2012년 11월 21일 8~9개월에 달하는 도피행각을 끝내고 재판장으로 향했습니다.

재판장에 가니 아버지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계속되는 비행을 저지르고 부모님이 싫다고 그렇게 사라져버린 이 못난 아들을요..

그곳에서 저는 저를 위해 빌고 또 비시는 아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못나고 쓰레기 같은 아들을 위해서 고개를 숙이고 비시는 아버지를요...

그렇게 저는 재판장에서 판사님의 보호관찰2년, 대전소년원 1개월위탁 이라는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직후, 보호관찰소에 신고를 하러 갔는데, 제가 보호관찰중 재범후 도주, 소재불명이 되어 구인장이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수갑을 차고 포승줄을 묶고서 소년분류심사원에 2번이나 가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들어간 그곳에서 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욕을하면 가만히 듣고있고.. 시키면 시키는데로.. 바보처럼 있었습니다.

8일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 엇나가기 시작하는 동생.. 날 사랑해준 여자친구..

8일째 되는 날에, 21일 재판때 받은 처분이 먼저라면서 구인장(일종의 영장 입니다.)이 기각되어 집으로 가라고 내보내 주었습니다.

전 아버지를 만나뵙고 어린아이 처럼 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서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또 감사하다고.. 몇번이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차를 타고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내려주시고 먼저 가셨고, 저는 여자친구의 집에 들어가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차일각오도 하였고 죽도록 맞을 각오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그저 저를 안아주고 왜 말하지 않았었냐고, 왜 혼자 힘들어 했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12월 3일, 대전 대덕소년원에 가게 됩니다.

이렇게 쓰고보니 제 인생은 정말 한심하고 짧은 인생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제게 더 이상의 비행은 없습니다.

저를 위해 노력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저를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해준 여자친구를 위해, 형을 보면 밝게 웃는 동생을 위해..

제 꿈은 소설가 입니다. 비록 맞춤법도 엉망이고 글쓰는 재주조차 없지만 저는 글을 읽고 쓸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오유인 분들도 모두 열심히 살아주세요!

이렇게 맞춤법도 삐뚤빼뚤하고 엉망진창인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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