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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군대
게시물ID : history_4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하하핳
추천 : 4
조회수 : 3174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04/15 19:26:10
페러디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이그 노벨상’(Annual Ig Nobel Prize)은 ‘흉내 낼 수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기발한 연구나 발명에 대하여 주는 상이다. 2007년도 이그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동성 간에 극단적 연애 감정을 유발시켜 적의 전투의지를 꺽는 일명 ‘게이 폭탄’(Gay Bomb)을 연구한 미 공군 ‘라이트 연구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게이 폭탄이란 폭탄 속에 든 ‘아프로디시악’이란 물질이 적군으로 하여금 극도의 동성애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사기를 떨어뜨리고 군율을 문란케하여 적진을 와해시킨다는 일종의 화학무기이다. 물론 이 연구에 대해서 미국 내 동성애 인권단체에서는 강력한 항의를 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동성애자들을 전쟁 중에 전투는 뒷전이고 다른 남자들이나 유혹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신종폭탄이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 같은 역사가 남아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남성들 간의 동성애는 별로 허물이 될 것이 없는 아주 자연스럽고, 때론 권장되는 현상이었다. 특히 동성간의 관계를 통해 어린 소년이 성인 남성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지혜와 덕을 가르치는 교육에 수반된 것으로 대단히 고귀한 일로 여겨졌다. 이 시기 쓰여진 그리스 문학 작품들에는 ‘젊은이는 나이든 사람을 존경의 대상으로 삼으며, 나이든 사람은 젊은 전사처럼 육체적 균형이 잡힌 젊은이들에게 감복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플라톤은 ‘여자와 동침하면 육신을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정말 보잘 것 없어서 그들은 아이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리스 남성에게 생활의 중심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사회였습니다. 대부분의 생산 활동은 노예들이 담당했고, 그리스의 자유민 남성들은 정치에 관여하거나 병사로서 국방에 종사했다. 스파르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시민 남성이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군사 기술을 익힐 것이 강요되었다. 일곱 살이 되면 어머니의 품을 떠나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병영이나 ‘팔레스트라’(Palestra, 주로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소년들의 신체단련을 도왔던 고대 그리스의 교육기관)에서 보냈다. 그러다보니 접촉하는 사람들도 거의 모두 남성이었고, 군대 안에서도 백전노장의 나이든 선임병과 젊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후임병의 관계는 동성애의 다른 표현인 이른바 ‘그리스식 우정’으로 맺어지기 일쑤였다.
 
그리스 군대는 ‘팰랑스’라고 부르는 밀집보병 대형으로 전투를 벌였다. 그리스의 군대는 밀집 보병대형으로 전투를 수행했기 때문에, 오와 열(Rank and File)을 유지하면서 이동하고 공격하는 데에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도시국가간의 전투는 평지에서 벌어지는 이 밀집보병들 사이의 전투였고, 대열을 구성한 앞뒤 병사들의 오와 열은 전술적으로 밀접하게 상호의존적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무너지게 되면 곧 전열은 흐트러지고 패배로 이어지기 쉽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밀집대형은 병사들 상호간의 굳은 신뢰가 생명이었다. 그리스의 시인들은 전쟁터에서의 윤리에 대해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 죽을 때까지 싸울 것, 방패를 집어 던지고 도망치는 일처럼 비겁한 일은 없다’고 노래했다. 그것은 한 명의 병사라도 대열을 이탈하면, 그것을 곧 대열 속에 있는 전우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따. 그리스 보병의 밀집대형은 단순히 전술적인 대형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곧 자신의 남성다움과 도덕성을 평가받는 장이기도 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향연’에서 “연인으로만 이루어진 국가나 군대를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모든 병사들이 연인과 함께 싸운다면 아무리 적은 세력이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인’이란 남성과 남성간의 관계, 즉 요즘 식으로 하면 게이커플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동성애가 보편적인 삶의 태도로 인정받았던 그리스 사회에선 실제 서로 사랑하는 남성 연인들로만 이루어진 군대가 존재했으니, 그리스 중부  도시 국가 ‘테베’(Thebe)의 ‘신성대’(神聖隊, Hieros lochos, Sacred Band)가 그것이었다. 테베의 장수 ‘고르기다스’(Gorgidas)는 부족과 가족을 중심으로 편성된 기존의 그리스 군대가 종종 무너지는 것을 보고 ‘사랑의 힘으로 편성되는 군대를 만들면 좋겠다’ 라는 발상을 하였다. 대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가장 고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며, 또 사랑하는 연인이 위험에 빠진다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것 또한 사랑의 힘이기에 이것을 이용하면 전장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편성된 ‘신성대’는 게이커플 150쌍, 300명의 병사들로 이루어졌고, 테베 군대의 돌격대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스에서 교사와 학생은 사랑하는 사람(Erastes, 에라스테스)와 사랑받는 사람(Eromenos, 에로메노스)의 관계였다. 테베에서는 소년이 자라서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되면, 그의 ‘에라스테스’가 갑옷과 투구, 무기 일체를 선물해 주었고, 출전에 앞서 신전에서 ‘에로스’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게이커플로 구성된 신성대의 위력은 가히 대단하여 전쟁터에 나선 병사들은 자신의 위험은 돌보지 않고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당시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가 몰락하고 스파르타가 패권을 쥔 상태였는데, 스파르타의 횡포에 참다못한 그리스 각 ‘폴리스’(도시국가)들의 반감이 높아져 가던 상황이었다. 결국 테베가 스파르타에 반기를 들었고 이어 기원전 371년, 양군은 ‘레욱트라’에서 맞붙었다. 스파르타의 왕 ‘클레옴브로토스’는 기병 1천명과 중장보병 1만명으로 ‘에피논다스’가 이끄는 테베 군을 공격했다. 이에 맞선 테베 군은 신성대를 주축으로 한 좌익을 극단적으로 강화, 먼저 스파르타 군의 우익을 쳐부순 다음 나머지 스파르타 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스파르타의 왕 ‘클레옴브로토스’도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후 30여 년 간은 테베 ‘신성대’의 전성시대였다.

기원전 338년 여름, 떠오르는 신흥 강국 ‘마케도니아’와 ‘테베-아테네’ 동맹군이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카이로네이아 전투, Battle of Chaeroneia) 보병 3만과 기병 2천으로 이루어진 마케도니아 군의 우익은 ‘필리포스 2세’가 직접 맡았고, 좌익은 ‘알렉산더’(후일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리게 될) 왕자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테베-아테네 동맹군은 병력은 3만 5천 정도로 마케도니아 군에 비해 약간 많았지만, 전체적인 전투력은 마케도니아 군이 앞서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리스 동맹군에겐 기병이 거의 없었다. 그리스 군의 좌익은 아테네 군이, 우익은 테베 군이 담당했는데 ‘신성대’는 가장 우측을 맡고 있었다. 밀고 당기는 접전 끝에 ‘필리포스 2세’가 거짓으로 퇴각하자 아테네 군이 이를 추적하면서, 테베 군과의 사이에 균열이 발생했다. 이 틈을 노려 ‘알렉산더’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기병대가 돌입하여 그리스 동맹군의 전열을 끊어 놓았다. 거짓으로 퇴각하는 척하며 아테네 군을 유인했던 마케도니아 군의 우익도 방향을 180도 선회하여 아테네 군을 공격했다. 테베 군은 이에 극도에 혼란에 빠졌고, 특히 ‘신성대’는 마케도니아 기병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기세가 오른 마케도니아 군의 공격에 아테네 군은 패주하고, 테베 군은 전장에 고립되어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이 전투에서 끝까지 싸운 신성대는 300명의 병사들 중 254명이 전사했다.

전투가 끝난 직후, 시체를 확인하던 ‘필리포스’는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긴 창에 대항하다 장렬히 전사한 그들의 주검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그 부대가 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필경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하긴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도 어릴 적 동성 친구인 ‘헤파에스티온’을 열렬히 사랑했고, 페르시아 원정 당시 얻은 시동 ‘바고아스’를 죽을 때 까지 곁에 두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게이 폭탄을 개발하며 동성애가 군기를 문란케 하고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미군의 연구결과는 또 하나의 편견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출처] 동성애 강의실#33 -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군대|작성자 게이총각


↓ 레욱트라 전투의 개념도. 이 전투에서 테베 군은 좌측의 신성대를 강화하여 적의 우측을 선제격파, 적군 진영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전면공격을 취해 승리하는 전술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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