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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사 청소하다가 25년 전 편지더미 발견함
게시물ID : military_492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도맛바람
추천 : 10
조회수 : 1457회
댓글수 : 40개
등록시간 : 2014/09/25 00:51:56
올해 3월. 상말을 한참 즐겨야 할 때 구병사를 창고로 바꿔서 활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옴.

그리하야 2주동안 구병사 공사를 시작하게 됨. 관물대를 다 빼고 침상을 뜯고 시멘트로 된 건 오함마로 다 때려 부수는 중이였음.

그러다가 침상아래 그리고 라지에이터 근처에 아주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세면백을 하나 발견함. 쓰레긴 줄 알고 버리려고 꺼내보니

그 안에 편지 봉투가 빽빽하게...어림잡아 50통은 넘게 있었음. 하도 신기해서 작업 끝나고 나중에 읽으려고 생활반에 가져감.

애들이랑 같이 하나하나 읽어보니 1989년에 입대한 김 창기라는 분임. (병624기셨음..아  필승!!)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들(이게 읽기가 제일 짠했음), 힘들어서 투정을 부렸었는지 누나에게서 온 편지는 자살하지 말고 버텨보라는 글도 있었고,

펜팔도 했었나봄. 근데 초장부터 많이 들이댔는지 여자는 계속 바뀜. 남자들한테도 몇 통 있었고, 

입대부터 쭈욱 편지를 해 온 여자가 한 명 있었음. 이 여자가 보낸 편지는 처음에 읽을 때 남매구나, 

여동생이네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내용이 좀 달라짐. 나는 오빠가 좋다느니 하여튼 연애편지 

비스무리하게 넘어가길래 아 이 처자랑 썸을 제대로 타네 싶었음. 

이 편지들이 하나같이 어체가 좀 신기했음. 잠깐 써 보자면

오빠, 오늘은 무얼 했어.
나는 오늘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하고 미팅 했어.
여자 넷 남자 다섯이 나왔는데 스물 한 살이라는 오빠가 
추근대지 무어야. 오늘 밤은 오빠 생각이 왜 이렇게 나는지 몰라.
오빠는 지금 자고 있겠지?그리고 영옥이한테 편지 보낼 때 
글 좀 따뜻하게 좀 써주어. 그게 그렇게 어렵다니
 
이런 식이랄까? 물음표도 안쓰던데. 게다가 요즘 우리처럼'ㅋㅋㅋㅋㅋ' 이런 게 없어서 그런지 진지의 진지체. 

완전 옛날 사람인 것 같아서 소름돋음. 아 옛날사람 맞네

아 하여튼 편지를 다 읽고 나니 큰일을 마친 것같이 몸에 힘이 쭉 빠짐. 마치 한 사람의 역사를 모두 본 것처럼 경건해지고 숙언해졌달까 그랬음.

그 날 저녁에 이 편지를 본인에게 찾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편지에서 단서 다 찾아 노트에 작성하고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누가 갖다 버렸는지 어느 날부터 안보임...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고.. 괜히 선배님께 죄송한 마음이 듦. 착잡한 건 지금도 그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걸어온 발자취를 한 번 쯤은 되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을 거 아님? 

편지).JPG

p.s. ㅋㅋㅋㅋㅋ그리고 구병사 침상을 뜯으니 그 아래 소주병이 한가득 했음. 한 중대 소주병을 담는데 마대를 20개 씀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정관님이 소주 상표 보시더니 이거 자기 하사시절 때 단종된거라고. 새끼들 많이도 쳐 마셨네 이러고. 심지어 개봉 안 된 소주도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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