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인간 잠들어 있다. 봄이면 무논 넘어 뻐꾸기 소리 청명하고, 여름이면 개구리 소리 왁자지껄 들리는 곳, 가을엔 누렁소 워낭 소리 느리게 지나가고, 겨울이면 천지간에 흰눈 펄펄 내려 덮히는 곳. 창공을 지나가는 태양이여! 잠시 걸음을 멈추어라. 들판을 달려가는 바람이여, 냇물이여! 잠시 귀를 기울여라.
1946년 9월1일. 산도 들도 아직 가난했던 조국. 한 인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저 평범했던 집안, 그저 평범했을 뿐인 가족들. 그저 평범했을 법했던 한 인간의 생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 판사가 되었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운명이 그를 불렀다. 불의한 세상이, 고난 많은 역사가 그를 불렀다. 타는 열정으로 그는 소리쳤다. 사자후를 토하듯 외쳤다. 원칙과 상식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 보통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인 민주주의 대한민국!
그리고 2009년 5월23일. 그는 마침내 신화가 되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굴하지 않는 정신의 위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보라! 여기 왕소금같이 환한 미소 지으며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한 평범한 생애, 바위처럼 누워 있다. (김영현 삼가 쓰다) -김영현(소설가)
그대는 세상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길을 애써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가는 길이 정의로운 길임을 스스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험난하고 아프고 외로웠으나, 그대는 치열하게 그 길을 뚫고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대는 그 길이 옳았음을 세상에 입증시켰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대의 인간적인 소탈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갖 권위주의와 지역주의, 분단 고착, 빈부 갈등 따위를 온몸으로 타파하려는 그대의 열정적인 노력은, 모든 한국인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아아, 그대는 죽음까지도 이토록 순결하구나! 아깝고 분하고 또 애통하다! -이성부(시인)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번쩍 치켜들었던 당신의 오른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패배한 자들을 위해, 또 그들과 함께, 그게 지는 길일지라도 원칙과 상식의 길이라면 두려움과 불이익을 마다하지 않았던 당신의 삶에게, 또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공포와 폭력의 기억보다 더 오래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당신의 삶에게, 또한 지는 길처럼 보이는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영원히 승리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준 당신의 죽음에게. -김연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