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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뷰파인더
게시물ID : readers_49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한스님
추천 : 1
조회수 : 1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17:33:48

그녀가 눈을 맞고 서 있었다.

1월... 영어로는 january. 어원은 야누스에서 따온 말이다. 1월은 두 얼굴이 아닌 차가운 얼굴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1월은 그렇다. 내가 처음 그녀를 본 것은 봄의 기운이 피어나는 4월의 캠퍼스에서다.


22살. 1학년. 내가 가진 타이틀이다. 낯을 많이 가린 탓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난 군입대를 했고 전역한 지금도 과거보단 아니지만 여전히 낯을 가리고 유일한 취미는 사진찍는 것이다.


그날도 전공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단대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잡는데 한 여성이 잡혔다. ‘아름답다’라는 말에는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나는 그녀를 보고 처음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했고 그녀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다른 곳을 찍는 체 했고 뽑아놓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딴청을 피웠다. 나는 재빠르게 강의실로 들어갔고 강의실엔 사람이 3-4명뿐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맨 뒷자리에 앉아 그녀를 찍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에이 이건 별로다. 실물이 훨 낫네.

그녀였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녀는 이미 내가 그녀를 몰래 찍었던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것도 보여줘.

그녀의 당돌한 모습에 나는 잠시 멍해있었고 그녀가 뭐하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나는 ‘네?... 아 네’라고 정말 바보처럼 말하고 말았다. 사진을 넘기는데 제법 많이 찍혔다. 그녀는 혼잣말로 ‘잘나왔네’, ‘이건 지워줘’라며 당차게 말했다. 나는 어김없이 바보처럼 ‘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녀는 맨 처음 사진을 자기에게 보내달라며 당차게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오늘 체육대회인데 수업 왜 들어왔어?

아..그게..전 오늘 체육대회인지 몰라서....

오늘이 과 체육대회였던 탓에 복수전공자인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만 있었던 것이다.

-그래? 경영학과 이민식. 맞지?

네... 나는 네라는 말밖에 못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긴장이 좀 풀렸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몇 살....이세요? 초면부터 반말로 나오는 그녀에게 소심하게 물었다.

-2학년이야. 23살

아..네.. 그렇게 나는 또 네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고 답답했는지 그녀는 나가서 커피 마시자며 책상 위의 내 소지품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적극성에 나도 마음을 많이 열고 그녀와 장난도 치며 점차 우리의 사이는 가까워졌고 갑작스러운 인연이 신기하다는 것도 느낄 새도 없이 우린 서로에게 깊게 빠져 있었다.

나는 항상 그녀의 사진을 소나무 밑에서만 찍어주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왜 소나무만을 고집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밑에서 찍은 이유는 어디에 있는 소나무를 보든 나를 기억하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새해가 다가오자 우린 1월 1일에 일출을 보러가자고 약속했고 12월 31일에 정동진으로 가자고 그녀와 약속했다. 12월 31일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이었고 들떠보이지도 않았고 마음이 무거워보였다. 서로가 깊게 사랑에 빠져있었을 때 그녀는 유학을 결심했다. 그녀는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지만 기약 없는 미래에 자신이 없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남기며 우린 1월 1일 일출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서로 헤어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나 12월 31일. 다시 1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1월은 차가운 얼굴을 갖고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선뜻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외출하고 돌아오는데 우편함에 소나무사진이 붙여진 엽서가 있었다. 그녀였다.


‘외국에서도 소나무가 참 많더라. 그때마다 니가 소나무 밑에서 찍어주던 게 기억이 나. 이 엽서 속 소나무 기억하니? 니가 처음 찍어준 곳이야. 1월 1일,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기다릴게 1일 이곳에서 오후 7시에....’

24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녀를 보기 전이 시간까지... 못하던 술로 마음을 달래고 그녀를 그리워하던 내가 그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24시간 남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오후가 어서 오길 바랐다. 단대 앞 소나무에서 처음 서 있었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간다.


1월... January 더 이상 차가운 얼굴만이 있는 게 아니다. 따뜻한 모습도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발로 땅을 그리며 수줍게 서 있었다.

그녀가 눈을 맞고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키스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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