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봉건주의에 대한 기치로 프랑스 혁명-공화주의란 게 파생되었고, 그 이후 간접 민주주의가 실현되기까지 100여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민주주의의 기본 체계는 권력 견제와 국민 주권 중심인데, 제가 보기에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가 한계를 맞고 있는 거 같아요.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것들의 결정권은 여전히 소수가 틀어쥐고 있고, 간접 민주주의에서의 '적대'의 문제들은 여전히 합의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프랜시스 푸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고할 때, 서방 세계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자부했어요. 이제 더이상 자유 민주주의 진영에 대한 도전, 적이 없다고 본 것이죠. 이제 자유 민주주의의 조화로운 체계가 세계를 지배 할 것이라 봤어요. 그런 세계사적 의미에서 푸쿠야마의 선고가 있었던 것인데, 그 이후 2000년대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적, 911테러로 가시화된 종교 근본주의가 대두되고, 내부에선 네오 나치나 신 극우주의가 대두되고, 심지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일들이 빈번해 졌어요. 다시 민주주의를 사유 할 때가 온 것이죠.
즉 포스트 맑스주의이자 정치 철학자인 라클라우의 말대로 새로운 적대가 출현하기 시작 한 거예요. 라클라우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통렬히 비판한 나치 정치학자 칼 슈미트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면서, 통합 불가능한 적대(칼 슈미트는 민주주의의 이상인 다수와 소수의 조화로운 결합이라는 걸 냉소적으로 비판했어요)가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봤거든요. 여하간 라클라우는 그런 비판을 받아들여, 민주주의가 결국 적대에 기초해 있으며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이라고 봤어요. 그러니까 역사의 종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거죠. 공산주의가 없다하더라도 새로운 적대가 출현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현재의 정치-경제적 문제들이 과연 독재에서 온 것인가. 이건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여전히 과거 반 독재 프레임이 유용한가. 그리고 이 문제들은 과연 보수 정권에서만 반복되었는가. 라고 따졌을 때 애석하게도 아니거든요.
제가 외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노조 비판에 대한 보수 정권들의 톤이나 헤게모니 방식들이 사실 김대중-노무현 시절에 정립되었다는 거예요. 법질서? 밥그릇론?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이런 노조 비판론들이 독재 정권의 프레임이 아니라는 거예요. 소수가 다수를 거스른다(이기주의 밥그릇), 이기적인 소수가 법질서를 어지럽힌다(법치주의)... 프티적인 시민의 시선에서 봤을 때 정부의 이런 톤들은 아주 상식적인 주장들이거든요?
제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촛불 때 였어요. 어느 한나라당 대의원이란 분이 언론사에 글을 투고한 걸 봤는데, 역시 법질서와 상식주의적인 발언을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갔을 때 정치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그쵸... 대의제에서 합의가 될 수 없잖아요. 근데 아주 익숙한, 노사모들이 상식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의 프레임(참여정부도 내내 시위나 노조에 대해서 떠들던..)이 촛불을 비판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한나라당 의원의 손 끝에서..
맞잖아요. 대의제에서 쇼부를 봐야하잖아요. 법질서 지켜야 하잖아요. 상식에서 벗어난 과잉 프레임 문제잖아요. 질서를 어지럽히고 다수의 시민들에게 폐를 끼치고.. 맞잖아요. 틀린 이야기 아니잖아요. 심지어 요즘 사람들은 공공장소에 대한 강박들이 있잖아요. 조금만 모나도 신상 털잖아요.
이것들이 과연 독재에서 온 것들인가요? 기존 민주당류 정권이 들어서면 끝나는 문제인가요? 전 촛불 이후에 보수주의자들의 이와같은 주장들을 보고 크게 깨우친바 있어요. 아.. 독재 정권? 웃기는 이야기야..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거라고!! 근데 과거 87년 프레임을 들고와서 독재 운운하는 게 맞아?라고 말이에요. 실제로... 촛불 때 탄압? 그건 껌이예요. 반 FTA 시위 때 2006~7년 시절에 나가보신 분들이라면, 명박 산성? 우숩죠 솔직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어요. 기존의 담론을 가지고 답습하면 현재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한 청사진이 안 나와요. 분배와 풀뿌리 민주주의. 기존 민주주의는 이제 한계를 맞았다고 전 보는 거예요. 분배는 민주주의의 기본권을 더 확대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풀뿌리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복원과 함께, 일상적 토론과 합의 문제, 정치 참여의 모델들을 사유해야 하는 것이예요. 즉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역사를 충실하게 앞으로 견인할 수 있는 건, '민주주의'란 단어에 집착해서 기계적으로 내뱉는 게 아니라, 그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히고, 이제껏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이예요.
저나 여기 계신 분들이나 얼마나 게으르고 책임의식이 없는지.. 어떨 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거 자체가 신물이 날 정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