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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역사 (29) 아편의 중국 전래
게시물ID : history_49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1
조회수 : 12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08 17:19:19
지난 글 : 마약의 역사 (28) 아편 중독을 잠재우는 아편 - 메타돈 (파란 글자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아편이 중국에 전래된 것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로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아편에 관한 문헌이 중국에 실재한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은 아랍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중국과 아편이 동의어처럼 인식되어 왔던 데에는 이런 역사적 맥락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추측컨대, 아편은 기원전 1세기에 아프리카까지 항해했던 중국 항해자들에 의해 본국으로 전래됐거나, 페르시아와 인도 상인들에 의해 티베트로 건너온 것이 기원후 1세기경 불교 성직자들에 의해 중국에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중국의 양귀비 재배는 문화적,지리적으로 고립된 윈난성(雲南省, 중국 남서부에 있는 省)의 서부 지방에서 시작되었으며, 아랍인들과의 아편 교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국내에서 생산한 아편과 인도로부터 수입한 아편 등 적지 않는 물량이 확보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들은 대량의 아편을 중국으로 들여왔으며, 중국인들은 아프-염(af-yum), 아-푸-용(a-려-yong) 등과 같은 아랍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두아르테 바르보사가 1516년에 기록한 자료에 의하면 캄브레이(cambray)의 약품들인 아피암(afiam)은 아편, 쓴 쑥, 그리고 샤프란(saffran)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졌다. 이렇게 시작된 아랍인들과의 교역은 6세기에 이르러서는 대규모의 아랍상선이 중국 근해까지 들어왔으며, 900년대에 이르면 대부분의 중국 항구에 아랍인들의 공동체가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수 세기 후 중국에서의 아랍인들의 영향력이 쇠퇴하자, 그들은 교역의 거점을 말라카(말레이 반도 남서부의 말라카 해협에 면해 있는 항구 도시)로 옮겨 그곳에서 자신들의 물건을 비단이나 은과 교환했다. 하지만 중국과 아랍의 아편 교역은 비교적 소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중국에서 생산되는 부족분을 보충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랍 상인들의 모습 아편은 중국의 여러 계층에 퍼지지 못했으며, 다만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상류계급만이 주소비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밖에 부유한 사람들은 첩들에게 성적인 복종과 도망 방지 차원에서 아편을 자주 사용하였다. 반면 반(半)문맹이거나 문맹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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