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과의 미학
게시물ID : sisa_4966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e
추천 : 1
조회수 : 2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4/06 17:16:35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은 “분별 있는 자는 사과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19세기 얘기다. 지금은 분별 있는 사람일수록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안다. <쿨하게 사과하라>를 펴낸 뇌과학자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씨는 “리더들에게 최고의 ‘위기관리 언어’는 사과”라고 단언한다.
 
 진정한 사과는 어떠해야 할까.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에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미안해’ 뒤에 ‘하지만’ ‘다만’ 같은 변명을 붙이지 마라,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 개선 의지나 보상 의사를 밝히라,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용서를 청하라 등이다. 정신의학자 아론 라자르는 <사과 솔루션>에서 잘못된 사과의 유형을 보여준다. “제가 어떤 잘못을 했건 사과드린다”(애매한 립서비스), “본의 아니게 잘못이 있을 수 있다”(수동적 표현), “만약 제 실수가 있었다면…”(조건부 사과), “크게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잘못의 축소), “피해를 줬다니 유감”(교만한 태도) 같은 것들이다.
 
 온 나라의 비판에 시달리던 두 인물이 어제 사과를 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에게 “너나 잘해”라고 막말을 한 데 사과했다. 그는 “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심려를 끼쳤다. 국민 여러분과 안 대표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정석에 가깝다. 문제는 다음이다. “저도 할 말이 많지만, 여당 원내대표로서 말의 품격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저도 할 말이 많지만’은 채프먼과 토머스가 금기로 꼽은 ‘변명’의 범주에 든다. 라자르가 언급한 ‘잘못의 축소’이기도 하다.
 황제 노역으로 논란을 빚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어리석은 저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려 통렬히 반성한다”며 가족 재산을 모두 팔아서라도 벌금을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역시 변명이 따라붙었다. “한 그룹을 움직이다가 재산 전부를 아무런 조건 없이 회사에 투입하다 보니 (벌금을 미납한) 오늘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쿨한 사과, 범인(凡人)들은 도달하기 힘든 경지인가.
 
 
 
경향신문-김민아 논설위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042109245&code=990201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