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직원 3명의 이름을 빌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당사자 유우성씨 변호인단을 상대로 거액의 '대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소장에 이름을 올린 국정원 직원은 법정에서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3명은 지난해 4월23일 유씨 대리인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유가려(유씨 동생)씨가 국정원 수사관으로부터 폭행.회유를 받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데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가려 씨에 대한 폭행과 회유가 없었는데 변호인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현재 고소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병현 부장검사)에 배당돼 고소인 조사가 끝난 상태다. 명예훼손 사건을 형사부가 아닌 공안부에서 맡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민사 사건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6억원이며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두번의 재판이 진행됐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소장에 주민등록 번호, 주소 등을 기입하지 않아 "나중에 패소할 경우 소송비를 청구할 방법이 없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올해 2월 담보(공탁보증보험증권)를 제공하기도 했다.
문제는 국정원 직원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됐다는 정황이 나온 점이다.
지난해 10월 간첩사건 공판에 나온 국정원 직원은 "민사소송이 진행중인 것을 알고 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형사소송 말고 민사소송이 제기된 것은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고소를 한 당사자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직원들이 모르는 사이 국정원이 직원 이름을 빌려 법적 절차를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2011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관명 대신 직원을 내세우는 '꼼수'를 부린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해 11월 국정원 수사관들은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또 국정원 감찰실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비판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고소하기도 했다.
민변 관계자는 "당사자가 모른 채 소송이 진행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정원에서 이름만 빌려서 진행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국정원에서 대리 소송을 진행했다면 소송비용을 대신 내줬을 개연성이 크다. 이는 현행법을 어기는 것이어서 또다른 논란이 될 수 있다.
국정원은 앞서 대선 관련 댓글을 작성한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변호사 비용을 대신 부담해준 것이 들통나기도 했다. 이번 두 건의 소송은 공교롭게도 국정원 출신 최모 변호사가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