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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나는 추억과 사귄다.
게시물ID : readers_49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드립의정석
추천 : 10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2/12/02 19:14:00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이제 그녀의 머리는 짧다.
그녀는 언제나 오후 한시엔 병원앞 작은 공원에서
김밥을 먹는다.
사실 그녀를 다시 본지는 일주일 밖에되지 않았다.
우연을 가장해 몇번 마주쳤지만 날 알아보지 못한다.
하는수 없이 용기 내서 인사해본다.''누구 기다리세요? 자주 여기 계시네요.''
''딱히요..그냥 여기가 좋네요.혹시 저 아세요? 전에 뵌듯 한데.''
''아뇨..그쪽 닮은 친구가 있어서 인사해 봤어요.죄송합니다!''
''잠깐만요!저기......''
그녀의 말을 전부 듣지도 않고 도망간다. 그녀는 이제 휠체어를 타는데 능숙하지만
그래도 날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

내가 처음 그녀를 봤던것은 친구가 마련해준 소개팅.
소개팅에서 나는 그녀의 약간 갈색 빛의 긴생머리에 반했다.
동갑이었던 우리는 영화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통해 한달후 내 고백을 시작으로 3년동안 사귀었다.
''혜진아.나 할말있어.''
''뭔데?말해''
''음..어.. 나랑 사귀자!''
소심하고 바보같았던 고백이었지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승낙했고
첫눈이 내리던 날 그녀는 내 첫사랑이 되었다. 
우리는 데이트겸 주말마다 영화관에 갔는데 그녀는 언제나 초코우유를 마셨다.
''콜라는?''
''난 이게 더좋아 히히''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영화관 앞 큰공원의 분수앞 의자는 자연히 우리가 만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이공원 분수가 유명하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소녀시대가 타는 차는?''
''뭔데?''
''제시카!''
''그게뭐야 크크''
그녀는 나를위해 농담도 많이 해주는 밝고 적극적인 사람이었지만 꼼꼼하지는 않았다.
처음과 달리 약속을 까먹고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고 그녀의 행동에 난 실망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을때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헤어진 그날역시 첫눈이 내렸다.
마치 그녀를 위로하기라도 하듯이.
하루종일 분수 앞에서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다.
그러나 그녀를 찾는사람은 없다.

그녀와 헤어진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소식을 들은것은 2년후.그러니까 며칠전 그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애인 얘기가 나왔을때 였다.
''니걔 기억나냐?왜 내가 소개 기켜줬던애.''
''장난하냐? 내 첫사랑 이잖아.. 왜 기억을 못하겠냐.지금도 가끔 생각 나는데.걔왜?''
''나도 최근에 들었는데 걔 지금 아파서 병원이래.''
''교통사고 라도 당했대?
에휴,깨진애 얘기는 왜하냐 술맛 떨어지게.''
''아니 그런게 아니라 종양이래,뇌종양. 이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가족만 겨우 기억한다그러데? 병원 다니는데 오래 못산다더라.''

충격이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니.
그녀와의 추억들이 잠시 생각난다.
그리고 한가지 드는 의문.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어디야.걔 어느병원이냐고!''
''이제와서 걱정되냐? 친구한테 물어볼게. 기달려''

그날밤 난 그녀 생각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심란하다. 
'만나야하나?'
'혹시 내탓 인가?'

일주일 하고도 이틀전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윤혜진 ㅇㅇ병원이래''
''알았다. 땡큐''
만나야 한다.
만나서 뭐라도 해야한다.
속으로 병원이름을 되새긴다.


오늘도 그녀는 병원앞 공원에 있다.
인사를 한다.
이번엔 그녀가 좋아하는 초코우유를 2개들고.
''안녕하세요''
''아! 어제 만나셨던분이네.
왜 도망가셨어요?
혹시..제가 너무 이뻐서 놀라신거 아니에요?
하하 장난이에요.''
그녀가 깔깔깔 웃는다.
살이 빠지고 머리가 풍성하진 않지만 밝은 성격만은 여전하다.
처음 고백했을때처럼 두근 거린다. 
''혹시 초코우유 좋아하세요?''
''어! 제가 초코우유 좋어하는거 어떻게 아셨지?
초면엔 다들 보통 커피 주시던데.
전 커피 별로 안좋아 하거든요.
아,하나 있다''
''카라멜 마끼야또!''
동시에 외친다.
그녀는 커피중엔 카라멜 마끼야또 밖에 안마셨다.

그녀가 말이없다.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정말 저 모르세요?''
아니오..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모른다고 대답한다.왠지 그래야 할것 같다.
''제이름은 윤혜진 이에요
스물 여덟살이고요. 그쪽은요?''
''어..동갑이네요. 제 이름은 박서진 입니다.
뜬금 없을진 모르겠는데 우리 영화 보러 갈래요?''
아차! 잘못말했다.
''진짜요? 영화 엄청 좋아했는데 못간지 2년은된거 같아요! 이번주말에 갈래요?''
의외다.이제 남남일줄 알았는데.
헤어진후에 한번도 영화 본적이 없다는 말이 내 가슴을 후빈다.
''왜 그렇게 좋아 한다면서 2년동안이나 영화보러 안갔어요?''
''조금 아파서요.''
죄책감이 든다.
''별거 아니에요 다나을수 있대요.
서진씨 처음봤는데 엄청 편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저 원래 이렇게 쉬운 사람 아닌데.''
나도 이런거 처음인데.
''제 번호 불러 드릴게요~
010-......''
알고있다.
핸드폰에 있던 번호는 지웠지만 
그렇게 빨리 잊혀 질리없지.
''안 적으세요? 엄청 똑똑하신가 봐요.''
''아닙니다. 적어야죠''
''다시 부를게요~''

약속은 일요일. 원래 만나던 공원과 영화관은 아니다.
그녀는 이사를 갔고 
이 만남은 처음처럼 긴장된다.
오랜만에 멋좀 내본다.

일요일에 공원에서 만난 그녀는 화장도 하고 가발도 썼다.갈색 가발을.
이번엔 목발이다.

차로 영화관까지 간다.
그녀가 고른것은 공포영화.
그리고 초코우유.
보는 내내 꺅꺅거린다.
너 이런거 하나도 안무서워 하는거 다 알어. 어디서 수작이야 크크.
내가 마음에 드나보다.

저번에 했던 연애와 비슷하다.
아니다. 다르다.

이제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예전보다 잊어버리는 일이 별로 없다.
안까먹는 노하우가 생겼나?
메모? 약?
사랑의힘?이건아니다.
예전에도 사랑은 했으니까.

오늘은 데이트하는 날이다.
매주 하는거지만.
하지만 특별하다.
고백할거니까.
''우리 오늘은 어디갈거야?''
그녀가 묻는다.
''비밀''
우리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냔다. 어디긴 어디야 여기지.

예전 우리가 만나던 공원으로 간다.
예전 우리가 앉았던 의자다.
''내가 유머 하나가르쳐줄게 들어봐''
''흠!흠! 오렌지 먹은지 얼마나 오렌지''
''헐..''
''재미없어? 그럼 니가해봐.''
''잘들어.
소녀시대가 타는 차는?''
''뭔데?''
''제시카!''
예전보다 나아진게 없구만.
''풉''
그래도 웃어준다.
사랑하면 유치해진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 할말있는데.''
''뭔데?말해''
''음..어.. 나랑 사귀자!''
이런.나도 나아진게 없다.

분수가 솟는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쁘네.

눈이 온다.
첫눈이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앞으로도 혼자가 아닐것이다.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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