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글이긴 한데,
조금 아쉬운 내용이 있어서,
제가 다른 곳에 적은 글을 가져와 봅니다.
음식 글이지만, 정치적인 내용이 들어 있어서 불편하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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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한국술은 구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오히려 일본술이나 와인보다 더 구하기 힘든 것이 한국 전통주입니다.
시골에 물어물어 갔는데,
뭐 아직 담그질 않았다던지,
담그시는 분이 돌아가셨다던지,
그런 경우를 몇 번 당하고 나면 정말 한국 전통주 구할 엄두 조차 못 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이 반영되는 것이
한국 전통주 연구소 - 농림수산부 산하 사단법인, 2006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한국전통주진흥협회 농림수산부 산하 사단법인, 2007년 말에 만들어 졌습니다.
그만큼 한국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할까요?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박정희 입니다.
먼저 간단히 한국의 술에 대해서 정리 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농경을 시작하던 오래 전부터 술을 빚어왔죠
곡식으로 빚은 발효주 역사가 정말 깁니다.
–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扶餘條)>
부여에서는 은나라의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온 국민이 크게 모여 날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름하여 영고라 한다.
– <예조(濊條)>
예에서는 10월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니, 이름하여 무천이라 한다.
– <마한조(馬韓條)>
5월에 씨를 뿌리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에는 한데 어울리어 밤낮을 쉬지 않고 술을 마시며 노래하며 춤춘다.
간단하게 중국의 역사서만을 봐도 한민족이 얼마나 음주를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입니다.
한국술은 술을 거르는 형태로
-탁주
-청주
-소주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탁주라고 해서 막걸리만 생각하시는데, 막걸리가 대표적인 탁주이고,
재주(滓酒), 회주(灰酒)라고 있고,
고급탁주로 이화주, 추모주(秋牟酒) 등이 있습니다.
탁주는 거르지 않은 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청주는 걸러낸 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소주는 청주를 증류시켜서 만드는 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도홍주와 이강주, 문배주와 같은 술들은 분류상 소주입니다.
전통주가 소주 계열만이 상품화된 상태로 남아 있는 이유는 '보관'이 용이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있는 특징이 술을 빚는 횟수로 술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로, 술을 빚는 횟수로 구분되지요.
삼양주라면? 최고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 번이나 빚어서 만드는 술이니까요.
지금 솔직히 한국술은 몇몇 막걸리와 경주법주, 이강주 등 10개 내외의 술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한국에서 파는 '소주'는 안동소주를 제외하고는 '희석식 소주'입니다.
웃긴 것은 원료가 '사탕수수'를 수입하여 발효시키고 거기에 고구마, 쌀 등을 발효시켜 섞습니다.
그래서 주정을 만들어서 거기에 물을 섞습니다.
이 때 그 맛을 좀 좋게 하기 위해서 화학적 조미료를 넣습니다.
그리고 그런 맛을 감쇄시키기 위해서 활성탄을 이용해서 걸러줍니다.
뭐, 대나무 숯을 이용해서 좋다고 하는데
활성탄보다는 좋겠지만, 그 숯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맛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한국의 전통주인양 아시는,
일반 소주들은 우리나라에서 나지도 않는 사탕수수가 원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고구마, 쌀 등의 곡류를 발효시켜서 만드는 알코올에 화학조미료넣고 물넣고 석탄으로 거른 술입니다.
그런 술을 먹어야 하는 자체가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한국의 전통주는 기본적으로는 '쌀'과 '누룩',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들어가는 것들도 있지만 모두 천연 재료입니다.)
이런 한국술들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주세정책으로 가정에서 빚은 술을 밀주라고 해서 엄한 단속을 펴왔습니다.
1909년 조선총독부의 ‘주세령’,
1916년 약주, 탁주, 소주로 주종 강제 단순화, 업체별 최저생산량 제한
1917년 자가양조 전면 금지 등의 '주세법'을 만들며 제한을 겁니다.
‘주세법’을 시행하며 우리 선조들이 ‘집집마다 빚어 먹던 술(가양주)’을 금지시키죠.
대신 술제조에 대해 면허제를 실시하여,제한된 양조장 면허를 통해 술을 생산 판매하게 했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게 목적이었지만, 집에서 술을 빚어 먹던 우리 문화는 조금씩 사라져 갑니다.
이 '주세법'으로 인해 전통의 향교나 명절 제사때 올리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서 항일의식이 꽤나 고취가 됩니다.
당시 일제는 밀주 빚는 것을 엄격히 금했는데 이유는 주세를 걷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럼에도 가정에서 암암리에 술을 빚어 왔고 그때까지만 해도 전통주의 비법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제사문화와 술은 떨어질 수 없으니까요
이때 일본 사케 업체가 부산에 공장을 세워서 여러 제품을 만듭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정종(正宗)' 이었고 이 술이 많이 팔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식 청주를 정종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런 한국술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인해 내다 파는 청주들이
모조리 일본 사케로 되면서 정종이 청주의 대명사로 인식되었습니다.
(정종은 국어 사전에서는 없어져야 하는 단어입니다. 차라리 '사케'라고 해주세요.)
이런 한국술에 대한 정책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거치면서 극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1964년 만성적인 식량부족사태 해결의 일환으로 양곡관리법이 시행이 됩니다.
양곡관리법으로 모든 증류식 소주를 제조금지시킵니다.
그리고 술의 중요 원료인 누룩 제조 역시 금지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밀주에 대한 엄한 단속을 하고,쌀로 술을 빚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 해버립니다
아예 사라집니다.
일제시대와는 틀린 강력한 군사정권의 힘으로 실제로 생산을 못하게 만들었다고 봐야죠
우리나라의 전통술은 박정희 때,그 대가 끊겼다고 봐야 합니다.
쌀을 술 따위에 낭비할 수 없으니. '쌀이 없으면 밀로 만들면 되지.'라는 유신정부의 강철같은 의지였죠.
한 마디로 빵을 쌀로 만들라는 소리지만 시절이 어느 때라고 정부의 시책에 반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그 때부터 막걸리는 밀이나 옥수수와 같은 잡곡을 사용하여 만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막걸리를 제외하고는 쌀이 없으면 한국의 전통주 거의 대부분의 술은 만들 수 가 없어지죠
그리고 79년에 잠시 풀렸다가, 다시 금지시킵니다.
백미 100%의 쌀막걸리가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쌀막걸리 제조를 다시 금지한 이후 무려 11년이나 지난 1990년에서였습니다.
30여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마을마다 생활문화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던 우리 술은 사라지고
몇몇 대기업이 수입 원료로 생산하는 소주나 맥주, 심지어 양주에 의존하는 왜곡된 주류 산업 구조로 재편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전통주만 600종류 가양주를 모두 치면, 16만종이나 되는 술이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는 종류가 200종, 상표등록이 되어 판매되는 주종이 30여종에 불과한 것이 한국 전통주 시장입니다.
박정희가 먹었다던 배다리쌀막걸리 , 금정산 산성 막걸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법 때문에 중정에서 14년간 몰래 청와대에 반입을 해왔습니다.
뭔가 아이러니 하죠?
국민들에게는 못먹게 하면서 자신은 먹었다는 막걸리
웃기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