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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개, 쭈니에게.
게시물ID : animal_497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작은짐승
추천 : 6
조회수 : 56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6/15 17:42:40

IMG_0583.JPG


사랑하는 나의 개, 쭈니에게.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이 기억나.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겨울에, 친구와 놀다가 일찍 헤어지고 집에 들어왔는데 원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너와 함께 와계셨어. 

널 보고 너무 신나고 놀라서 옷도 안벗고 할아버지 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어. 

한줌도 안되는 보송보송한 너를 안으니 너는 낯선 내 손, 내 옷을 막 핥았어. 어른들은 '예뻐해 줄 사람을 아나보네~' 하며 웃으셨지. 

우리방 문지방을 못넘어와서 그 앞에서 낑낑거리고, 방 밖으로 나갈때는 배를 미끄럼틀 삼아 쑥~ 하고 내려갈 정도로 넌 작고 어린 아가였어.

엄마와 아빠가 티비 볼 때 등에 대던 커다란 베개는 네가 조금 커서 베개위를 올라갈 수 있게 됐을 때 부터 네가 떠나는 날 까지 네 차지가 되었지. 


넌 정말 착하고 사랑스럽고 기특한 아이야. 바닥에 음식이 놓여있어도 절대로 입대지 않고, 아무리 작은 물건이어도 밟고 지나가는 법 없고,

가족들, 친구들은 처음보더라도 다 알아보고 어찌나 애교도 많이 부리는지.. 제삿날이나 명절엔 절대 소란피우는 법 없고,

병원에 가도 조용히 주사도 잘 맞고, 제 새끼들 낳았을 때는 얼마나 잘 돌보던지. 내가 울 땐 뭘 아는지 말 없이 옆에서 빤히 바라보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 발 밑에 언제나 납작 엎드려서 날 기다리고, 내가 밤을 샐 때는 어떻게 귀신같이 아는지 새벽 네시만 되면 

자다 말고 일어나서 졸린 눈을 해가지고 얼른 자라고 한 번 보고 가고.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은 한시간에 한 번씩 내 방을 한바퀴 슥 순찰 돌고 나오고,

내가 집 근처에 왔다 싶으면 오분 전부터 현관 앞에서 꼬리치며 날 기다렸다며. 내가 책이라도 읽거나 노트북이라도 끌어안고 있을라 치면 

꼭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서 그런거 쳐다보지 말고 너 이뻐하라고 방해했지. 노트북은 특히나 미웠는지 사람 물건 안밟는 네가 마구 밟고다녔어ㅋㅋ 


늘 너에게 호통치시는 할아버지지만, 할아버지 발밑에 누워서 할아버지와 같이 햇볕 쬐던 너. 햇볓드는 곳만 쫓아다니면서 누워있고 ㅋ 

마당 앞에 큰 목련이 필 때면 가끔씩 창가에 기대서서 하염없이 목련피는 걸 구경하는 것 같았어.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봄을 내다보고 있는 것 처럼. 

몇달 만에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생각도 못했는지 벙쪄있다가 나인 줄 알아채고 신나서 마구 뛰어다니던 네 모습이 생각나. 

보고싶은데 자꾸자꾸 몇달씩 나가있다가 들어오는 내가 밉고 보고싶고 야속하지 않았을까.. 미안해 쭈니야. 언니는 늘 떠날 때 마다 인사했는데,

너에게 그게 마음처럼 잘 전해지지 않았나봐.. 영문도 모르고 늘 널 언제나 두고 가서 미안해. 


너 먹으면 탈나니까, 너 그렇게 좋아하던 고구마, 감자, 맛있는 거 많이 못줘서 미안해. 너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 못시켜줘서 미안해.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자꾸자꾸 말도 없이 떠났다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 다시 떠나버리고.. 자꾸 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가 떠나는 모습까지도 보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해.. 


내 사춘기와 내 어린 이십대를 함께 보내준 너에게, 어떻게 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까. 네가 없었다면 내가 이런 소중한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을까. 요즘들어 네가 너무 궁금하고 네가 너무 걱정되고 네가 너무 보고싶었는데, 이렇게 되려는 걸 나도 모르게 알고있던 걸까. 

왜 그렇게 갑자기 가버린거야. 여름에 내가 한국 못간다는 거 알고 못기다리고 일찍 간거야? 반년만 더 기다려주지.. 딱 한번만 더 나 반겨주지.. 


쭈니야. 사랑하는 내 강아지. 13년동안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 예쁜 추억 남겨줘서 고마워.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나 최고로 여겨줘서 고마워. 어떤 사람들은 갖지 못할 기억, 사랑 남겨줘서 고마워. 너무너무 예쁜 네가 우리 가족으로 있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할머니나 할아버지, 엄마가 불경 외실 때는 늘 그 곁에 엎드려서 가만히 불경소리 듣고 있곤 했잖아. 그러니 편안한 곳으로 떠났을 거라고 믿어.


네가 떠나서 언니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이토록 소중한 네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이 감사해. 

그 곳에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네가 그렇게 무서워하고 좋아하는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랑도 많이많이 뛰어놀아.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쭈니야. 언니가 많이많이 사랑해. 나중에 다시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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