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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쩔었던 연대장님 썰
게시물ID : military_498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뽕
추천 : 11
조회수 : 2073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4/10/14 17:41:58
 
요즘 찬바람이 들다보니 문득 군생활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강원도 중동부전선에서 땅개로 지냈는데 그때 계셨던 연대장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
 
이라 형편없는 글재주로나마 썰을 풀게 되네요.
 
저는 2008년 보신각 종이 울리자마자 102보충대로 입대했습니다. 보충대 막날 
 
랜덤 부대가기 방송 1차에서 이기자부대가 나와 게거품을 물었고, 이건 연습이었다는
 
신상분류장교님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최종 분류에서 칠성부대가 떠버려
 
거의 실성한 채로 화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게 되었습니다. 그땐 76사단이 있어서 신병교육을
 
7사단에 위탁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빠지진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희망도 개뿔, 팔자에도 없는
 
 GOP로 굴러떨어졌습니다. 험난한 GOP생활에 지쳐갈 무렵, 새로 오시는 연대장님이
 
육사 차석입학 수석졸업이다, 수석입학 차석졸업이다, 수석입학 수석졸업이다 라는 들을때마다 다른
 
스펙을 가진 분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확실한 건 무조건 1차 진급에 통과한 엘리트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등병의 입장에서 당장 새로올 연대장님 보단 바로 아랫 침대에서 쿨쿨 자는 분대 쓰리고가 더 무서웠기
 
때문에 일단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연대장님께 보내는 편지를 쓸 때 고립된 GOP생활에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이 많이 있으면 위안이 되겠다라는 취지의 글을 썼고, 2주도 안되어 통차에 가득실린 책 무더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땐 멍청했는지 책을 운반하느라 먼지투성이가 된 포반장 앞에서 "와 편지썼는데 연대장님이
 
소원들어 주셨습니다." 라고 외쳤고 쌍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연대장님이 오신지 몇 달도 안되어 부대의 분위기가 많이 바꼈습니다.
 
 FEBA 대대장님이 미움을 받아 군장을 쌌다던지, 병사들이 경례를 똑바로 안한다며 영창을 보냈다던지, 연대본부 간부님들이
 
 매일 얼차려를 받고 주임원사님도 예외는 아니었다라는 믿을 수 없는 소문에다가 다른 중대에 가신 연대장님 가라사대
 
"이놈의 관물대를 열어라"하시니 거짓말같이 애니콜핸드폰이 모셔져있었다더라는 신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GOP에서도 연대장님이 순찰을 오실때마다 박살이 나는지라 연대 1호차가 소초를 통과하면 산천초목이 두려움에 떨고 심지어
 
매일같이 귀곡성을 질러대던 고라니마저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대장님 덕분에 많은 책을 받았기 때문에 언젠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연대장님이 우리 소초에 오신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때 저와 부사수는 대공초소를 잡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초소이기에 연대장님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부사수는 연대장님이 곧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1분 1초가 다르게 얼굴이 백짓장처럼 탈색이 되어버렸고, 이 녀석에겐 수화를
 
맡길 수 없어 제가 밖에 나가 수화를 준비했습니다. 말은 덤덤하게 내가 맡으마라고 해놓고 나갔음에도 저도 손이 덜덜 떨리고
 
영하 18도에서도 식은땀이 줄줄흘렀습니다.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은 이미 떠나간 정신줄에 묶여 함께 날라가버린
 
후 였습니다. 드디어 섹터계단을 타고 있는 연대장님과 중대장님이 보였고 세상에서 더 없이 멋진 목소리로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 건빵 ! 을 외쳤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멋졌습니다.이제 암구호 답만 받으면 되는거였습니다.
 
 3초가 흘렀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심상찮은 기운이 괄약근을 타고 척추까지 가서 대뇌에 경종을 울려대고 있습니다.
 
5초가 흘렀습니다. 연대장님이 중대장님을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저도 중대장님을 쳐다보고 제발 입술 때주십쇼 제발!을 맘속으로
 
외쳤습니다.
 
한번 더 외쳤습니다. 건빵 ! 
 
거기서도 5초가 흘렀습니다. GOP수칙으로는 3회 이상 불응시에 빵야빵야!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한 번만 더 외쳐서 답이 안나
 
오면 저는 큰일 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쳤습니다. 건빵 !  
 
이제 생애에서 가장 큰 결단을 내려야했습니다. 되든 안되든 사격자세로 연대장님과 중대장님을 겨누는 시늉을 해서 중대 미친놈 소리를
 
들으며 나락으로 빠지던 , 유도리(?)있게 통과 시키고 왜 암구호를 대지 않은 거수자를 통과시켰냐는 질책을 받음과 동시에 영창을 가던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저의 생명을 구해주는 천상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맛 - 스타아아아아!"  연대장님이셨습니다. 
 
제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는 사이, 한계단 씩 올라오는 중대장님의 표정은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피해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초소로 올라오신 연대장님은 중대장님을 쳐다보며 "정신 나간 놈 !"이라고 일갈하시고 저와 부사수에게
 
"정말 수고한다. 너네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된 건 이놈이다!"라고 하시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오히려 중대장님의 위기가
 
병사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연대장님과 중대장님은 떠나갔고 그 떠나는 길엔 우렁찬
 
갈굼소리와 "어 -억!"하는 비명이 함께 했습니다.  그 이후 연대장님이 우리 소초를 더 자주 방문하게 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죠.
 
제대한지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위기지만 제 평생 그렇게 공포스러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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