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괜찮은 동네에서 소문 좀 좋게 난 인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고
스펙도 어느정도 쌓았고 한가지 꿈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노력해왔는데
수시에 전부 떨어졌습니다.
제 성격상 뭔가 이상한 의무의식같은게 있는지,
예를 들어 열 명인 동아리에서 한 명이 희생해서 무슨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할 사람이 없다,
그럼 제가 해야 합니다.
막 지도자의 기질 봉사정신 이런걸 타고난 게 아니라서,
그 엄청난 일을 떠맣고 나서 결국 고생하다가 몸 정신 다 망치고
그렇게 어떻게든 해냈는데 운이 지지리도 또 없어서 혹은 제 마음이 약해서
기록상으로 그 공을 누군가에게 다 줘 버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막 너 그래서 니 공부는 언제 하냐, 이랬는데
실제로 모의고사 성적은 꽤 잘 나왔고 저는 남들 챙기면서도 저 자신을 챙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ㅠㅠㅠ 수시 지원에는 엄청난 열의를 보여서 한 대학에 몇 전형씩 막 지원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 떨어지고, 수능도 평소 등급보다 총 3등급 정도가 떨어졌습니다.
저희 집안은 교육자 집안이라서 어릴 때부터 선생님 하라고 시켰었는데,
저는 심리학과에 가고 싶어서 고집을 부렸습니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고, 허락한 이후로 우연찮게 성적이 급상승했기 때문에 다들 '왜 저런 걸 할려고 하냐'식으로 보면서도
제 생각에 그냥 동의해 주는 분위기였는데, 이렇게 망쳐버려서 흔히 말하는 알아주는 대학에 갈 수 없게 되버린 이상
저 스스로가 용기가 안 나더라구요.
혼자 고민해 봤는데, 제가 심리학과를 선택한 것은 저런 제 성격을 직업적으로 잘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그런 것이라면 선생님이 되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마 전에 사범대로의 진학 의사를 가족들에게 살짝 내비쳤습니다.
다행히 수능 성적으로 제가 사는 모 광역시 시립대의 사범대학교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거의 그쪽 학교로 가는 것으로
확정된 거죠...
집안이 축제분위기더라구요. 오히려 수시 발표가 하나 더 남았다고 하니까 떨어지길 바라는 듯한 분위기에서 좀 놀랐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학 가고 싶다고 할때는 생활비는 당연히 제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거라는 듯이 말하던 어떤 분께서는
사범대 쪽으로 진학한다고 하니까, 1시간 정도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오피스텔을 구해 주시겠다고 하더군요;;
어릴때부터 지방에서만 살아서 서울 살이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은 있었지만, 그런 것도 다 접고 결국 근처 사범대로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는 어떻게든 나중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기로 했는데,
주변에서 제가 한가지 길 정진해 오는 모습을 보고 응원해 주시던 분들 생각해 보니, 마음이 착잡해지네요.
제가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걸까요? 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