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중국 한나라 말기 군웅(
群雄)의 한 사람인 부춘(
富春:
浙江省 富陽縣)의 호족(
豪族) 손견(
孫堅)이 오나라의 시조이다. 손견은 원술(
袁術) 밑에서 동탁(
董卓)을 토벌하여 세력을 얻었지만 유표를 토벌하는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맏아들 손책(
孫策) 또한 원술의 휘하에서 몸을 의지하였으며 영자강 동쪽의 여러 군(
郡)을 평정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자객에 의해 26세에 암살되었다. 이후 손책의 동생 손권(
孫權)이 19세에 주군이 되었다. 손권의 인품과 덕망으로 아버지와 형님의 신하와 세력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며 점차 명망있는 신하들도 가세하였다. 208년(건안 13) 유비(
劉備)와 연합하여, 조조(
曹操)의 대군을 적벽(
赤壁) 싸움에서 크게 무찌른 뒤, 천하를 3분(
三分)하여 그 하나를 영유하게 되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한나라 헌제(
獻帝)로부터 제위(
帝位)를 양도받아 위(
魏)의 황제가 되자 손권도 오왕에 봉해졌고 222년 스스로 연호를 황무(
黃武)라 부르고 229년 위와 촉한(
蜀漢)의 싸움이 격화하자 그 틈을 타고 무창(
武昌)에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오라 하고 도읍을 말릉(秣
陵:현재의
南京)으로 옮겨 그곳을 건업(
建業)이라 불렀다.
오나라가 위치한 지형은
양자강 중, 하류로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였다. 강을 바탕으로 물자교역이 많았고 수군(
水軍)이 뛰어났다. 손권 때 위세를 떨쳤으나 그가 죽자 국내의 정치파벌이 형성되고 서로 싸우고 내란도 자주 일어나 국력이 쇠퇴하였다. 특히 태자와 동생간의 파벌로 권력쟁탈전이 벌어졌다. 결국 두 파벌은 모두 패망하고 10세의 어린 손량이 태자로 즉위하게 되면서 오나라의
권력투쟁은 국력을 분열시키게 된다. 263년 촉한이 위에게 망하고, 위가 진(
晉)에게 망하자 진은 대군을 파견하여 오를 공략하였다. 280년 진에 함락되고 오는 멸망하였다. 이후 중국 중원은 통일되어
삼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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