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안경계를 서는 부대를 나왔음. 보통 6개월주기로 내륙과 해안을 번갈아 가면서 이동하는데 해안에 있었을때 일어난 이야기임.
근무를 설 때 조장 사수 부사수 이렇게 3인 1개조로 조를 짜서 근무를 나가는데 당시 일병 말호봉이었던 나는 부사수로 근무를 나갔음.
한동안 아무 사고 없이 조용히 지냈지만 조장을 나가던 병장이 제대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음. 그때 사수로 같이 근무를 나가던
상병고참이 있었는데 이 고참이 좋게 말하면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였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냥 멍청이였음.
조장은 근무중에 순찰이 오면 브리핑도 해야하고 근무 후에 보고도 해야 해는데 이 상병놈은 아무리 해도 브리핑을 외우질 못하는 것임...
결국 참다못한 소초장이 나보고 조장을 서라고 해버린 것임. 말이 좋아 조장이지 짬이 안되다 보니 결국 잡일은 잡일대로 다하고 거기에
추가로 브리핑 준비까지 해야되서 그냥 근무설때보다 두배는 피곤함. 게다가 이놈 취미가 하모니카였음.. 남들 하는대로 그냥 기타나
배울것이지 자기는 남들 다하는건 싫다고 어디서 하모니카를 구해와서 그걸 근무시간 내내 불어댐.. 잘부르면 모를까 이놈은 구강구조가 이상한건지
몸에 철분이 많은건지 하모니카에서 쇳소리가남.. 또 폐활량이 박지성급인지 하모니카를 근무시간내내 불어댐.. 보통 해안근무를 나가게되면
짧으면 7~8시간이고 길면 10시간 이상 근무를 설때도 있음. 결정적으로 이놈이 할줄아는 노래가 하나밖에 없음.. 타이타닉 주제가..
근무를 나가면 몇시간이고 타이타닉 주제가만 줄창 불러댐. 난 아직도 어디서 타이타닉 주제가가 흘러나오면 경기를 일으킴. 내 고막이 제기능을
한다는 걸 그렇게 원망한 적이 없었음. 그렇게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결국 사고가 터짐.
그날도 난 그놈 목구멍에 수류탄을 쑤셔넣고 안전핀을 뽑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근무를 나갔음. 근무지에 도착해서 늘 하던대로 장비를 챙기고
있었음. 그날도 자기 필에 취해서 하모니카를 불던 그놈이 갑자기 하모니카 불기를 멈추고 날 부름. 지 필에 취해서 진짜로 취해버린건지 아니면
자신의 불같은 연주를 듣고도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 한건지 갑자기 날 갈구기 시작함. 왜 근무를 FM대로 안서냐고 ㅈㄹㅈㄹ을 함.
원래는 근무자들에게 실탄을 나눠주고 삽탄한 상태에서 근무를 서는게 FM이지만 사고 위험이 많아서 보통 조장이 실탄을 모아서 가지고 있고
M60탄만 덮개열고 약실에 올린채 근무를 서는게 FM임. 근데 왜 M60탄은 꺼내지도 않았냐며 아주 개 ㅈㄹ을 함. 목구멍 까지 올라온 욕을 눌러담고
죄송하다고 한 뒤 FM대로 근무준비를 하기 시작했음. 탄을 올리고 초소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빵! 소리가 들림.
깜작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갔더니 이 미친놈이 실탄이 올라가 있는 총 방아쇠를 당긴거임.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더니 안전장치가 되있는지
확인하려고 방아쇠를 당겼다고함. 어이가 없었음. 장전되어 있는 총 안전장치 확인하려고 방아쇠를 당기는 미친놈이 설마 내 주변에 존재할거라곤
상상도 못했음. 더 큰 문제는 앞에서 장비깔고 있던 막내 얼굴 옆으로 총알이 지나가서 애 고막나감. 총소리 듣고 깜짝놀라서 내려온 부소초장이
대충 상황 파악하고는 자기가 일단 알아서 무마할테니 들어가서 보자고함. 근무나가면서 해가뜨지 않길 바랬던것 그때가 처음이었음.
그렇게 몇시간을 아무말 없이 한숨만 푹푹쉬면서 근무서다가 난 내 귀를 의심함. 어디선가 친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거였음. 이 미친놈이
또 하모니카 붐.. 세상이 무너져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새끼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에 하늘을 원망함. 그런데 하모니카 소리가 좀 이상함.
자세히 살펴보니 울면서 하모니카를 불고있음. 타이타닉 주제가는 이미 요들송으로 변한지 오래임. 한없이 긍정적일줄 알았더니 지 딴에는
걱정이 되긴 됐나봄. 이 미친놈과는 앞으로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됐음.
다행히 부소초장이 후임탄약관에게 부탁해서 모자란 실탄 채우고 나는 일주일간 군장도는 걸로 마무리. 그 선임은 얘기듣고 빡친 소초장이
넌 근무나가지 말고 보일러관리나 하라고 해서 그해 겨울내내 보일러 병으로 근무함. 하지만 근무후에 간간히 보일러실에서 들려오는 서글픈
하모니카 소리는 그해 겨울내내 나를 미치게 만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