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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BGM]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게시물ID : panic_500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굿바이사교육
추천 : 13
조회수 : 600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6/12 02:13:29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Ui6MS
 
 
 
개요
  일본에서 15~18세 되는 남자애들이 원한도 없고 만난 적도 없었던 여고생을 하굣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감금하며 여러 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폭행등 귀축 행위를 벌이고 끝내는 죽게 하여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 버린 뒤, 평상시와 똑같이 일상을 보낸 엽기적인 사건.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
 
 
발단
  1988년 11월 25일, 소년 A는 자전거로 아르바이트에서 귀가 중이었던 소녀를 발견한다. 소년 A가 공범이었던 소년 C에게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 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 C는 소녀를 발로 찬 뒤 도주, 그 후 소년 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 주겠다. 나도 아까 그 녀석에게 칼로 위협당했다' 며 말을 걸어 소녀를 데려다주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집에서 10분쯤 남은 어두운 창고 앞에서 난 야쿠자의 간부다. 야쿠자가 너를 사고로 위장해 차로 치어 죽이기로 되어 있다. 얼마 뒤 차도 이리로 오겠지만 한 번 하게 해 주면 용서해준다며 호텔에 데려가 강간, 그 후 '원래는 야쿠자가 너를 죽이기로 되어 있었지만 넌 내 여자친구와 닮았으니 살려주고 싶다. 너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윗선과 잘 얘기해 볼테니 그 때까지는 여기에 있어라' 라며 그들의 아지트(소년 C의 2층집)로 끌고 가 수 시간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할 거라고 위협,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사건의 전개
  11월 30일, 소녀를 집에 보내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 혹시 소녀의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된 소년 A. 소년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부모에게 '가출했으니 찾지 마. 친구의 집에 있으니 실종신고는 취소해 줘'라고 먼 지역의 공중전화로 5일에 걸쳐 3회씩 전화하게 하며, '경찰서도 멀리 있고, 근처에도 야쿠자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 고 협박했다.

 
  소년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분명히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년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에서 소녀를 데리고 들어와, 모친은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소년 C의 부친도 소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하는 등 소년 C의 부모님도 그 당시에는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소년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가 학대당하던 바로 옆방에는 C의 형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는 모른 척했다. 그 형에 그 동생
 
  한 번은 소년 C의 모친이 소녀가 계속 집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피해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댁에 이런 이름의 딸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고, 피해자의 모친은 '지금은 없습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소년 C의 모친은 주저하다가 가짜 이름을 대고 바로 끊어버려, 피해자의 부모는 가짜 이름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야 했기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소년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전을 보거나 같이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등 불량한 소년 C의 친구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소녀는 소년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소년 C와 소년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소녀는 소년 C의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 올라 2층의 소년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 뒤 그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소녀는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을 당했고,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살려 줘'라고 했지만 감금 말기에는 '죽여 줘'라고 말할 지경까지 되었다. 또한 가해자 소년들이 폭행할 때 틀어 놓은 타케다 테츠야의 '성원(声援)'이라는 노래의 가사인 '힘내, 힘내'를 때때로 혼잣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감금 초반에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켜 먹이거나 소년 C가 소녀의 칫솔 등을 사 주거나 하는 등 나름의 배려를 해주었으나 감금이 지속될수록 소녀의 상처나 화상이 심해짐에 따라 식사, 목욕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계란 등 집에 있던 것을 소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 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초, 소년 A등 4명이 낮잠을 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곧 소년 A가 눈치챈다. 그 뒤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소년 C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소년 A는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그 뒤로 그 소녀에게 가했던 것들은 실로 귀신과 짐승도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풀려나면 경찰에 신고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 자살로 위장해 죽이자느니, 분쇄기에 넣자느니, 콘크리트에 넣어 바다에 던지자느니 하는 대화를 웃음 섞어가며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당한 일들
주의 : 심신이 온전한 사람들은 열람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소년 C는 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아는 사람에게 공언해 소년 C의 주위의 100명 정도는 소녀의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재판 기록에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하였다. 어떤 여자는 소녀의 얼굴에 '화장'이라며 매직으로 수염을 그리기까지 했다.
  • 소녀의 성기에 성냥을 삽입해 불을 질렀으며,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발라 불을 지른다. 엄청난 고통에 소리지르면 입과 코를 때렸다. 그리고 다시 불을 질렀다. 상처가 아물 틈이 없이 화상을 입어 끝내 상처가 곪아 썩는 냄새가 나게 된다. 이 행위로 인해 소녀는 이미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상처가 곪아 온 방안에 피가 튈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천장에도.
  •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으며, 화상으로 소녀가 악취를 풍기자 소년 A는 소년 C의 부모님이 눈치챌까 두려워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그때부터는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 하며 토하는 모습을 즐기곤 더럽다며 폭행하고, 항문과 성기 등에 불꽃놀이용 폭약을 꽃아놓고 터뜨렸으며 고통스러워 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저항하면 폭행당하기 때문에 이후에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되고, 어떤 일을 해도 반응이 없기까지 했다.
  • 소녀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르게 하고, '뭐야, 너 얼큰이가 됐구나'라며 놀렸다. 또한 그 볼과 눈 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놓고 소녀의 성기와 항문에 온갖 이물질과 벌레 등을 삽입하였으며,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 그리고 폭행으로 그것을 몸 안에서 깼다.
  • 소녀는 매일같이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며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소년은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라', '미친 짓을 해보라'는 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 영양 실조와 스트레스로 장기에 큰 손상을 입은 피해자가 배를 감싸며 쓰러졌다. 소년 A의 얼굴을 보며 제발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소년 A는 마지못해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음식물을 소화해 낼 수 없었던 상태.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 버린다.
  • 소녀가 용변용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소년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회 구타하고 소녀의 상의를 전부 벗기고 혹한(12월)의 베란다에 내몰아 여러개의 담배를 억지로 피우게 하였다. 이에 견디지 못한 소녀가 구토하자 소년 A는 따뜻하게 해 준다며 이미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다리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점화하였다.
  • 소년 A는 가수 코이즈미 쿄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의 '예-이!'에 맞추어 소녀의 옆구리를 박자에 맞추어 구타했다. 소녀는 신음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억지로 고통을 참아 얼굴이 찡그려지면, 소녀의 표정을 보며 소년들이 재미있어 하였다.
  •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혈흔에 살아 있는 바퀴벌레까지 먹어야 했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상처가 곪고 피가 멈추지 않아 피해자의 피를 보고 더럽다며 자신들의 손발에 비닐봉지를 쓰고 구타했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일상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일삼았다. 12월 5일 열차추돌 사고(츄오 소부센 히가시나카노역 열차 추돌사고. 당시 사망 인원은 기관사+승객 1명.)가 일어나 소년 A는 '저 열차에 네 아버지가 타고 있어서 죽었다고 뉴스에서 봤다. 알고 있었냐'라고 말하며, 피해자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어떤 기분이냐'라고 물어 슬프다고 대답하니, '사실은 거짓말이야'라고 하며 이후 A, B, C 세 명은 '죽었다', '아냐, 살아 있어'라고 반복하며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결말
1989년 1월 4일, 소년 A는 마작 내기에 크게 실패해 10만엔을 잃은 후 소년 D의 집에 가서 일행과 합류한다. 피해자의 상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이미 피해자를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 정도로만 여기게 되어 C의 집에 가지 않고 방치해 둔 소년들이었지만, A는 마작에서 진 분이 풀리지 않고 10시에 개장하는 사우나에 가기 전, '오랜만에 그 녀석을 괴롭히러 가자' 고 제안해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소녀를 폭행한다.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꾀병이다' 라고 말하며 폭행을 계속하고, 사우나에 간 후 다음 날 한 소년에게 '피해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는 연락을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C의 자택에 가서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안 뒤 모두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니다' 라고 하지만...

소년 A는 소녀를 이불로 싼 뒤 여행용 가방에 넣어 껌 테이프로 말아 근처의 공장에서 훔친 드럼통에 넣고 차에 실은 뒤 일하던 타일 공장에서 조달해 온 콘크리트를 흘려넣고 벽돌 등으로 고정했다. 굳이 콘크리트를 넣은 까닭은 공구리 괴담을 사실로 믿어서인듯.

드럼통을 처리하기 위해 검은 쓰레기 봉투에 넣어 다시 껌 테이프로 밀봉한 후, 소년 A가 빌려온 왜건을 운전해 바다에 버리려 했지만 무서워져 도쿄의 매립지에서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바다에 버렸다면 영영 미제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년 A는 이때 드라마 '톤보'의 마지막 회 비디오를 찾고 있었다. 피해자가 납치된 날,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에서 빨리 귀가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몇 번인가 피해자가 말한 적이 있어서, 같이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꽃다발과 함께 비디오를 넣으려고 했지만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는 소년 B의 만류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소년 A는 '피해자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저주받기 싫어서…'라고 말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http://otona.yomiuri.co.jp/history/photo/anohi090329.jpg
범인들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 사진.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밝혀진 것은 사건 발생 4개월 뒤인 1989년 3월 29일이다.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있었던 강간, 절도등의 혐의로 잡힌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 형사가 무심코 한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는 질문에 공범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 내용을 자백하였다.

담당형사는 자백의 내용을 반신반의한 채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 공원 정비 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시체를 묻었던 드럼통 한 개만 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즉시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 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며,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 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 정도로 극도의 영양 실조 상태에다 원래 51kg이었던 체중은 36kg으로. 또한 피해자의 위에서는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소변 등이 발견되었다.
손발은 묶인 채였고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성기는 안면보다 더한 상태였다고 한다. 얼굴의 일부 뼈는 으스러져 있었고 가슴에 수많은 바늘이 박혀 있었으며 영양 드링크 2개가 성기에 삽입되어 있는 상태였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벗겨져 있었고, 왼쪽 유두는 펜치 같은 것으로 집혀 손상되었으며, 제대로 붙어 있는 치아는 하나도 없었고, 뇌 또한 축소되고 약간 녹아 있는 상태였다. 고막 역시 심하게 손상되어 최후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다. 소녀는 사망하던 당일, 2시간에 걸친 폭력이 끝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괴로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한다.

시신의 상태는 이미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 있었고 부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으로 확인은 절대 불가능했던 상태. 그러나 남아 있는 지문이나 치열을 조합해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 현 미사토 시 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 고교 3학년 후루타 준코(古田 順子, 17)인 것이 확인됐다.

소녀가 야시오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뒤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사건 후 관련인들의 진술에서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 것은 알았지만, 소년 C가 두려워 이를 묵살하였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자랑이다

소년 A의 부모는 이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 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으나 피해자의 부모는 거부. 피해자의 모친은 사건 내용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장시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충격적인 것은 소년 B의 생모가 아들의 인생의 망가진 것이 피해자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의 묘를 때려 부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는 것. 대를 이은 천하의 개쌍놈들이 아닐 수 없다.

초반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일부 찌라시들은 소녀의 얼굴이나 수영복 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며 행실이 불량한 아이였고 소년 그룹의 동료 중 하나였다는 등 헛소리를 그대로 기사로 내놓는 천하의 개쌍놈급 짓을 하기도 했다.
케이크 만들기가 취미였던 피해자는, 어머니와 얼마 후인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만드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였으며 졸업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범행을 당하기 전 미성년자 성폭행범에게 집요하게 교제를 전제로 한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남자가 소년들 일행에게 정보를 주고 그녀를 협박했고, 소년들은 계획적 범행인 게 탄로날 게 두려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피해자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성적은 톱클래스였고, 더군다나 피해자가 살해된 1월 5일의 얼마 뒤인 1월 18일은 피해자의 생일이었기에 18살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에 일어난 이치카와 4인가족 살해사건의 범인은 이 사건의 범인들이 징역형을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의 범행은 별거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사실 우연한 계기로 범인들이 자백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들의 주변인은 모두 피해자를 목격하거나 정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했고, 심지어 폭행과 강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단 한 명이라도 경찰에 신고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또한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흉악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 증거도 없이 묻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이라도 용기 있게 대처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의자에 대하여
주범인 소년 A는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흉악함 때문에 1심에서 17년, 2심에서 20년형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각각 5~10년, 5~9년, 5~7년을 선고했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 있지만 그들은 약식 기소하였고, 형벌도 가벼웠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법정에서도 그들은 피해자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발언하였고, 소년 A는 반성조차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소년 A가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바보같이 잡혀 버린 내 자신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한다. 천하의 개쌍놈들

피해자의 부모는 피고인 측의 면회 신청 및 성묘를 절대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재판의 증언 당시 피고인에 대한 원 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하였다. (이게 다 일본의 청소년 보호법때문이지만…)

현재 소년 A를 포함한 4명은 출소하였지만 대부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한다. 이 중 한 명은 또 다시 폭행 사건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

공범 중 한 명은 나중에 참회한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참회할 거였으면 그런 짓에 참여하지 않는 게 옳지 않았을까?

20여 년 후, 한국에서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이라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 단 이 경우는 상대가 면식범인데다, 부지불식간에 납치당한 일본 사례와는 경위가 좀 다르다.

참고로 이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 단위로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를 갈 때마다 해당 지역에 정체가 밝혀져 버려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으며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그리고 사건 명칭으로 검색하면 범죄를 저지른 4인방의 인적 사항(본명 + 출소 후 개명한 이름, 사진 등)을 해당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2ch에서 꾸준히 해당 사건의 스레가 작성/유지되는 걸 보면 이런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듯. 까놓고 말해 보복 살인이 허용되는 사회였으면, 우발적인 살인도 아니고 계획살인에 그 죄질이 극히 흉악하여 누가 봐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게 분명한 만큼 피해자 가족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맞아 죽을 놈들이다.

굳이 인터넷 할것 없이 방송에서 잊을만 하면 그때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 때문에 왠만한 일본인들이라면 이 사건을 잘 알고있으며, 용의자들이 멀쩡하게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것도 전부 알고있다. 아무리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가족들과 용의자의 사진은 이미 퍼질때로 퍼진지라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동네에서 어느 한사람이 우리동네에 그 범인과 가족들이 살고있다는것을 알게되면, 일본사회 특성상 그동네의 모든 사람이 알아버린다. 용의자들은 일본을 떠나지 않는이상 사회에서 지속적인 왕따와 보복을 당하며 끝없이 죗값을 치뤄야 한다. 지금까지 용케 안맞아죽은게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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