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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수험생활을 마친 열 아홉살 여고생이 문재인을 지지할 경우.
게시물ID : gomin_5005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식인컴퓨터
추천 : 8
조회수 : 32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2/10 00:15:24

오유를 하는 걸 주변인들이 알게 되면 저는..

그런데 너무 답답해서 글까지 쓰게 되네요.

 

 

저는 이번에 수능을 본 열 아홉 살 고등학생입니다.

저에게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사를 배운 학생으로서, 근현대사를 배운 학생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나라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문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고 하는 것들이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공부만 하다가 뭔가 흥미로운 것들을 제 손으로 직접 찾아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선거에 대해서 저 혼자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수능이 끝나고 이렇게 오랜 기간을 흥미로워하지 못 했을 듯합니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어제는 문재인 후보의 광화문 선거유세에도 다녀오고, 오늘은 안철수 전 후보의 유세 활동을 보러 나갔다 왔습니다. (악수까지 했어요!ㅎㅎ)

 

(이건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ㅋㅋㅋㅋㅋㅋ 귀여우셔요.... 실제로 두 분 뵈니 더욱 더 믿음이 갔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

 

 

그런데 이런 제 관심을 주변 어른들이 더 흥미로워하시는 것 같아요.

처음에 저는 정치나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과 싸워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그러셨어요.

제가 박근혜 후보가 생선을 이만큼 챙겨서는 구천원을 내밀었다, 말씀드렸더니 네가 그 상황에 있었느냐,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라, 하셨어요.

그 때 많이 반성했습니다. 아버지가 혼내시는 걸 완전히 이해했고요.

 

 

그러나 어른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 무례를 무릅쓰고 언성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어른들의 논리가 너무나 모순적이기 때문이예요.

제가 박정희는 어쨌든 독재자고, 경제 발전은 매우 위대한 업적이지만 그것은 대통령으로서 의무였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피해를 본 수많은 희생자들은 누가 보상해주냐,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이 바로 박근혜라고.

 

그런데 엄마께서는, 그런 이유 때문에 박근혜를 몰아붙이는 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박근혜와 박정희는 따로 떼어 놓고 봐야 한다고. 기가 찼습니다.

사실 박근혜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박근혜의 삶이, 박근혜가 후보로 나올 수 있었던 게 다 박정희 때문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그럼 왜 박근혜를 뽑아야 하는지 물었더니 박정희가 경제 건설을 했기 때문이래요...

아...... 무슨 ... 저한테는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했다는 건 떼어놓고 봐야할 문제라고 하시고

그걸로 박근혜를 평가하면 안된다고 하셨으면서

왜 박근혜를 뽑는 이유는 박정희의 경제 성장 업적 때문입니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 어머니뿐이시면 제가 투정을 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학원 선생님도, 할아버지도, 이모도, 모두 정치에 관심이 많다며? 하고 물으신 후 저렇게 저한테 대답해 주셨어요.

 이제는 정치고 뭐고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회의만 들어요.

어린 제가 신문을 뒤적거리고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하니 재미있으셔서 자꾸만 저에게 일부러 그러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저에게는 너는 배부른 시대에 태어나서 보릿고개를 모른다. 보릿고개를 없애준 사람이 박정희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이 생각해봤는데, 그 말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벌어주신 돈으로 한 번도 배곯지 않고 여태까지 살아왔고,

학원 다니고, 학교 다니고, 발전된 나라에서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살아와서 이렇게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배고프고 가난하고 나라가 기아에 허덕였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겠죠.

 

 

그런데 저는 자꾸 화가 납니다.

어른들은 저에게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뭐랄까, 말할 권리조차 없다고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죄가 아니예요.

그리고 그 시대를 기록해 놓은 기록물을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나는 건, 제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인터넷에서 발견한 거짓된 잡지식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조금 안타까웠고,

왜 이런 사실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일까, 의문도 들었습니다.

방금 전 엄마께 박정희가 친일파였다는 것은 알고 계시냐고 여쭤 보았는데,

저를 완전 이상한 아이 취급하시면서 어떻게 친일파가 대통령이 될 수 있냐고, 확실한 거냐고, 오히려 저를 추궁하시더라고요.

이제 말할 기운도 없어요. 입이 아프고, 머리가 아픕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모두 왜곡되고 편파적인 아이들이 지어낸 루머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새누리당 의원의 대다수가 친일파의 자식들이고 우리의 근현대사가 친일파가 주도한 역사라는 걸 왜 모르시는지,

모르시더라도 왜 제 말은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이시는지, 혹시 지금 박근혜를 지지하는 모든 어른들이 이런 것인지, 자꾸만 마음이 답답합니다.

 

 

 

 

저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제 친구들도 선거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친구들이 안철수 후보의 살인미소와 문재인 후보의 섹시함만을 보고 그들을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거의 2~3년 내내 교과서와 EBS 문제집만 보고 살아왔는데, 바로 그 책들에 박정희의 독재가 적혀있단 말이에요.

 전두환의 정치 행태도 적혀 있고요.

 

 

사실,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뽑지 않아야 할 이유는 충분한 거 아닙니까?

경제건설로 독재를 용서해줘야 한다면,

그럼 정말 극단적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많은 시설물들을 지을 기회를 줬으니까 우리 땅을 지배했던 것을 용서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이건 비교할 게 안 되지만, 너무 답답해서 자꾸 그런 논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 친구들 외에 어른들이 있을 때에는 정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제가 사는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참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꾸만 가족들 간에 다툼이 생긴다면, 부모님과 조부모님과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차라리 포기하려고요.

 

 

어제 문재인 후보가 한 사람당 열 명은 투표장으로 끌고 가야 한다,

오늘 안철수 후보가 안철수 사퇴했다고 투표 안 할란다, 하는 부모님 설득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으로서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 그들을 도우려 했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른들은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너도 사회에 나가봐라. 너도 찌들거다. 잇속을 챙기게 될 거다. 어쩔 수 없다. 어른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고.

저는 사춘기 이후에 어른들이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속물이 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며 살 거예요.

 아직 경제활동을 안 해서 배부른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속물이 될 거야, 하는 것보다는 아니야, 나는 정의로운 어른이 될 거야. 하고 생각하는 게 나으니까요.

 

그리고 제 자식한테는 너는 어른이 되어도 정의로워야 한다. 순수해야 한다. 라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만약 사회의 모습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어요.

 

 

 

 

 

 

제발 투표율이 높아졌으면 좋겠네요.

 

선거권이 없는 저희들, 방금 수험생활을 마친 열 아홉 살, 예비 사회인들을 위해 모두 투표해주세요.

혹시 이렇게 긴 글을 모두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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