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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청춘의 벽이 무너졌도다 6
게시물ID : panic_500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8
조회수 : 117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12 17:36:09
 
1~3편> http://todayhumor.com/?panic_49808 
 
4편> http://todayhumor.com/?panic_49873 
 
5편> http://todayhumor.com/?panic_50021
 
 
 
 
 
 
 


 
 6.
 
 

“자기 장인 장모한테.”

“...........??”

나는 그저 “네??”하고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부산하게 호들갑을 떨면서 내 등을 때리고 꼬집으면서 그날 밤의 스릴에 대해 수다를 떨 뿐이었다. 남의 말은 요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일방적인 대화법을 가지고 있었다.

삐에로의 그것같은 아주머니의 입술이 나를 어지럽게 한다. 내가 대꾸할 의지 없이 멍하니 서있는 걸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려도 상관없을, 의미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누가 범인일까?”

“왜 죽인 걸까?”

“왜……하고 많은 장소를 다 놔두고 모텔에 숨겼을까?”

왜?

왜?

왜??
.
.

.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왜?”라는 의문이 나를 에워싼다. 나는 그녀가 방출한 호기심의 무게에 짓눌려 헐떡인다. 마지 말에 무게가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이 내리깔린다. 그걸 코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아주머니는 여전히 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고장 난 인형처럼. 아무런 의미없이 입을 연신 벙긋거린다. 영혼이 없는 텅 빈 육체가 입을 벙긋거리며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이토록 즐겁게 만든 원인이 두 구의 시체라 생각하면, 이건 이거대로 어지간히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즐겁게 떠들어대는 아주머니의 얼굴에선 죄책감도, 죄의식도, 양심도 보이지 않는다.

“전……그만 가볼게요.”

나는 소름을 털어내며 그 자리를 떠났다.

아주머니도 힘찬 걸음으로 씩씩하게 돌아갔다.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범죄현장으로의 복귀였다.








억지로 사무실에 앉아있긴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하루종일 째깍대는 초침소리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최근 잦아진 실수에, 윗선이며 아랫선에서 수근대고 있었다.

“정신을 어디 빼놓고 다녀?!”

호된 질책에도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 걸 보면, 상사의 말대로 정신이 휴가나간 모양이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전 내내 초조해했던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사는요?’

아내의 목소리는 더없이 다정했다. 내가 대충 때웠다고 답하자, 그러다 속 버린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평소와 똑같았다. 아침에 그건 뭐였지. 그 표정, 그 웃음……이 떠오르자 다시 소름이 돋으려 했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침엔 내가 잠이 부족해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내도 전날밤에 컨디션이 안좋았으니까, 서로 뾰족한 상태였던 거다. 그래, 그런 거겠지. 그렇지 않고선……그 낯선 반응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일상 얘기를 늘어놓던 나는 불현 듯, 아침에 그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여보. 장모님 말이야.”
‘우리엄마? 왜?’
“그게, 음....생신이 이 무렵 아니었나? 선물 뭘 보내드리면 좋을까 해서.”
‘당신 정말 일등 사위네.’
“그렇지?”
‘그럼. 최고 사위지. 반년전부터 장모님 생일 준비를 하는 걸 보면.’

이맘때 아니었나?
헛다리짚은 게 무안해서 웃어버렸다.

“미안해, 여보.”
‘뭐가 미안해.’
“그냥……여러가지로. 그날 몰래 빠져나갔던 것도 그렇고.”
‘어? 기저귀 갈아야겠다. 끊어, 여보. 이따 저녁에 봐요.’

소란스러움이 나한테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핸드폰을 내려놓기 무섭게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있을 아내를 떠올리니, 아침에 느꼈던 감정들조차 미안하게 생각됐다.











나는 전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편의점이 어디있었는지부터 떠올렸다. 오는 내내 담배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잊을 정도의 강렬한 흡연욕구가, 스스로도 한심했지만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막 돌아 서는데 쿵, 어깨를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상대방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후덕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그는 바로, 요즘 이 동네를 후끈하게 달구고 있는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청춘모텔의 주인장이었다. 희끗한 그의 옆머리에 시선을 주다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가 불쑥 한걸음 다가왔다.

“퇴근이 늦군.”

안개가 그의 입을 타고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조소를 금치 못했다. 안개라니. 흔해빠진 담배연기일 뿐인데. 사장의 얼굴 가득 고뇌가 떠올라 있어서 그리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오랜만이군.”
“아……네.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게 언제였지. 까마득 멀게 느껴졌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장을 보며 난감함을 느꼈다. 몇 번 그의 고객이 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가다 인사를 할 만큼의 단골손님이 아닌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오해하겠군, 따위의 태평한 고민을 하던 나는 어깨를 움칠 떨었다. 아침에 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장인장모라고? 저 사람이 내 장인어른이란 말이야? 아무 얘기나 믿고 소문이나 퍼뜨리고 다니는 악질이었다. 다시는 그 아줌마하고 상종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애야 그렇다쳐도, 자네라도 한번 찾아오지. 안 온다고 아내가 많이 서운해 해.”
“………….”

침묵이 이어진다.
사내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말문이 막힌 듯했고, 나는 그의 말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저게 무슨 소릴까 싶어서였다.
사내의, 자발적 침묵과 나의 타의적 침묵이 밤공기에 섞여 날카롭게 피부를 찌른다.

사장이 새로운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뱃갑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머뭇거리면서도 한 개비 꺼내 들었다. 실은 아까부터 담배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에, 거절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해로운 연기를 달게 빨아 들였다. 서서 담배를 피우면서 지척에 있는 가로등에 날벌레들이 푸드덕대며 달려드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도 딱히 할 말은 없다는 걸 알기에 대충 담배를 피우고 떠날 생각이었다.

“지하……에 있던 시체, 경찰엔 모른다고 했지만 실은 짐작 가는 데가 있다네.”
“……?”
“그놈이 아닌가 싶어.”

흥미를 자극했다.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자네는 모르고 있었을 테지. 우리애가 오래 사귀었던 놈이 있었어. 놈팡이 같은 놈이었지. 말도 안 되는 사상으로, 세치 혀를 놀려 순진한 여자애들을 꼬드겨 방탕한 길로 들어서게 하는 놈이었어.”
“잠깐만요. 저, 사실은.”
“미안하지만.”

사내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이번만큼은 내 말을 들어주게. 우리가 이렇게 단둘이 얘기한 적은 처음이지 않는가.”

그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권위적이거나 오만했더라면 나는 갈 길을 갔을 거였다. 하지만 어딘가 애잔한 구석이 있었다. 내가 이대로 무시하고 떠나버린다면 그가 밤새 방황하며 괴로워할 거란 건 자명했다. 어차피 담배도 피워야되는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안심하고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우리애가 급히 전화했더군. 남자친구가 크게 다쳤다면서. 1년만에 통화하는 건데 다짜고짜 돈을 달라더군.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몇 번째인지 모를 가출을 한 상태였지. 그애는 미련없이 훌쩍 떠났다간 돈이 떨어져야 슬그머니 기어들어오곤 했네. 그래서 우리는 또 돈을 뜯어내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치부했네. 그런데, 응급실에서 그애를 보았어. 부산한 응급실 한켠에 홀로 앉아 있더군. 마침 입구 정면의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우리와 눈이 딱 마주쳤지. 멍하게 풀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어. 자네를 부축해 들어오는 나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더군.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우리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 애는 어떤 원망도 분노도 토해내지 않았어. 그저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지. 그리곤 예전의 생활은 잊고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조용조용 살기 시작하더군. 그 놈팡이 같은 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확실했지. 어쩌면 딸의 말대로 정말 크게 다쳐서 불구가 되거나 죽었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우리는 숱한 추측만 쏟아냈지 딸에게 그 놈이 어떻게 됐는지, 그날밤 왜 응급실에서 있었던 건지를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네. 솔직히 물어보고 싶지 않았어. 다 잊은 것처럼 살고 있는데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았던 거지. 평범한 삶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어. 한동안은 그랬지. 그런데……그 애가 이제는 자네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더군.”

그의 손끝에서 퉁겨져나간 꽁초가 포물선을 그렸다.

“우린 내버려뒀어. 잘됐다 싶었지. 알겠나? 순진한 자네 옆자리를 꿰차는 걸 보고만 있었단 말일세!”

목소리가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그가 갑자기 내 손을 꽉 쥐었다.

“그래. 나도 말도 안 되는 얘기란 건 알아. 하지만 의심을 떨칠 수가 없어. 그 놈의 시체가 왜 우리 건물 지하에 묻혀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생각만으로 끔찍한 상상이지만……그쪽으로 기우는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어.”

고백처럼 이어지는 두서없는 이야기들.
이제 얘기를 들어주는 일도 질린다.
그 아주머니도 그렇고, 모텔 사장도 그렇고 제정신이 아니다. 모텔 벽이 무너진 뒤로 다들 미쳐버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광기가 온 동네에 눈처럼 뒤덮였다.
나는 그의 손을 털어내듯이 떼어냈다.

“말씀 다 하신거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리 앤 잘 지내나?”

걸음을 딱 멈췄다. 미친 짓거리에 장단 맞춰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도대체 저 남자는 왜 내 장인인척하는 거지? 아내의 친정 가족은 J시에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게 아니라. 숨겨둔 친아버지라도 된단 거야? 불쾌감에 못이겨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뭔가 착각하신 모양인데 제 와이프는—”
“자네까지 그럴 필요 없네. 우리 애 끔찍하게 여기는 건 알고 있네만, 없는데서까지 장단 맞춰줄 필요 없어.”
“장단이라뇨.”
“딸의 분열증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걸세.”

입이 떡 벌어진다.
이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다.

“정신분열증을 말하시는 겁니까?”

내 목소리가 고깝게 들렸을 텐데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딴사람처럼 바뀌었을 때, 때때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때……사람들은 자기 신념에 맞춰 각기 다르게 분석하지. 누구는 거짓말쟁이, 누구는 분열증, 다중인격……누구는 굿을 하고, 정신과 치료를 하지. 신부를 불러 퇴마의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더군. 나는 그 병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아직도 결정내리지 못했네. 병원에선 분열증이라고 하지만……자네는 어느 게 진짜이름이라고 생각하나?”

아내가 처방받아 먹던 약이 머리를 스친다.
알레르기 약.
워낙 자주 긁어댔기 때문데 한번도, 그게 다른 약일 거란 생각을 품지 않았다. 아니, 품을 필요도 없었다. 다른 약일 리가 없으니까.

“난 이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서 누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텔 사장의 주장이 맞든, 내 주장이 맞든,
둘 중 하나는 정상이 아닐 터였다.

이 사람이 미친놈이거나,
내가 미친놈이거나 일 테니까.

만약, 그의 말이 진짜라면……아내의 병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을 정상이라 분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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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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