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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횡단보도 앞에서
게시물ID : readers_50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심화
추천 : 1
조회수 : 15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20:18:50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4년 전 이맘때 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내가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으로 갔을 때, 그녀가 그렇게 서 있었다.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음에도,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 그녀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말을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눈발이 점점 거세졌고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지워졌다.

 

 나는 그 설렘을 잊을 수 없었다. 미니홈피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는 있었기에. 수차례 쪽지를 보냈다. 좋아한다고는 못했다. 그냥 오랜만에 길을 가다가 너를 보았다. 그게 네가 맞을까. 안부가 뜸해서 소식이 궁금하다고 빙빙 돌려 말했다. 답장은 없었다.

 쪽지가 그녀에게 도착하긴 했을까? 그녀가 쪽지를 보기는 했나? 답장이 잘못 간 것은 아닐까? 나는 왜 그때 말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물밀 듯 차올랐지만 별 수가 없잖아. 이미 소식은 끊겼고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를 잊은 건 아닐까? 나만 기억 하고 있나?”

물어보고 싶지만 직접 연락할 방법은 없다. 주위를 겉돌 듯 멀리서 돌만 던져대니 창문에 맞을 리가 없을 것도 같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이 나를 향한 것 같아 포기할 수 없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같은 반이었다. 처음엔 아무 관심이 없었는데, 하루는 친구가 나를 교실 밖으로 불러 이야기 했다. “있잖아. 너만 들어 비밀이야. 나 사실 쟤 좋아해.”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친한 친구였으니까. 곧 둘이 사귀었다. 아마 6학년 끝날 때 까지였던 것 같다. 나와 그녀는 같은 학교로 배정 받았지만 친구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둘이 헤어지게 되었던듯하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었기 때문에, 나와 그녀는 다른 반이었지만 가끔 만나 이야기 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별로 표현을 못했다. 왠지 그녀가 싫어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을 당당하게 여기지 못했고, 그래서 남의 시선을 항상 의식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좋아한다 말을 해도 받아줄까? 라는 생각이 첫 번째였고, 만약 사귀면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똥 밟았다그러지 않을까? 가 두 번째였다. 항상 생각이 많아 여러 단계 앞서가곤 했다. 정말로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 못한 이유다. 별거 아닌 이유.

 3년 내내 같은 반이 되진 못했으나. 몇 번 만나기는 했다. 한번은 그녀가 우리 반에 왔다. 마침 내 주머니 속에 캐러멜이 있었다. 너무 주고 싶었으나, 그녀에게만 주면 눈치를 받을 것이 뻔해서 주변의 여자아이들에게 같이 나누어 주었다. “네가 어쩐 일로?” 라고 들은 게 전부 인 것 같다. 그렇게 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녀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다고 한다. 아마 멋진 남자가 많겠지. 그래도 나를 잊지 않았으면 했다. 사람들이 미니홈피를 하나 둘 떠나고, 그렇게 그녀의 소식도 끊겼다.

 그런데 오랜만에 내 홈피에 새 글이 올라왔다. “잘 지내니? 보고 싶다.” 그녀가 쓴 글이었다.

곧바로 답장을 보냈지만. 역시 반응이 없는 그녀였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젠 남이 되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받아 들여야 하나. 그냥 포기 할 수도 있었는데, 왜 나를 설레게 했던 걸까.

 그렇게 설렘이 시작된 지도 4년이 되었다. 몇 번 소식이 끊겼었다. 일방적이긴 하지만 다시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다가 가려고 한다. 여전히 대꾸가 없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자고 스스로 타협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나는 오늘도 눈이 내렸으면 한다.

 

 또 다시 그녀가 서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말을 해야지. 싫다고 해도 괜찮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네가 내 마음을 들어주었으면 한다.

이제는 그것밖에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후회가 계속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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