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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청춘의 벽이 무너졌도다 7
게시물ID : panic_502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6
조회수 : 120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14 03:57:11
1~3편> http://todayhumor.com/?panic_49808 
 
4편> http://todayhumor.com/?panic_49873 
 
5편> http://todayhumor.com/?panic_50021
 
6편> http://todayhumor.com/?panic_50085
 
 
 
 
 
 
[7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아니, 당연한 말입니다만, 제 아내는 사장님 따님이 아니고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 다른 사람이지.”

모텔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 안에는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인격이 존재한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답답했다.
쳇바퀴 돌 듯, 매번 원점으로 돌아온다.

곧죽어도 너는 나의 사위고, 내 딸의 남편이라는 식이었다.
올바른 선택지를 골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속에 빠져든 것처럼 당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영원히 이 시간속에 갇혀버린 듯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고 있는 모텔 사장의 눈에는 그 어떤 광기도, 짓궂음도 숨어있지 않았다. 그는 오직 위로받고 싶은 외로운 사내일 뿐이었다. 누구에게든 좋다는 식이었다. 그를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정직한 눈을 통해 적어도 거짓을 논하고 있지 않단 확신은 얻을 수 있었다.

나를,
아니, 아내를 둘러싼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내 직감은 오래전부터, 모텔 벽이 무너지고 이를 구경갔던 날 밤에 혜연이가 보인 이상증세를 목격한 순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부정을 거듭했을 뿐이지.

모든 추리물에서 그러하듯,
결정적 단서,
거대한 기계를 돌아가게 하는데 꼭 필요한 중요한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 있었다.
한가운데에 톱니바퀴 하나만 끼워 넣으면 완성될 것만 같았다. 기기긱긱기긱- 잘만 굴러갈 테지.

그 톱니바퀴를 찾는 결정적 단서는 아내, 혜연이에게서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오랫동안 애써 무시했던 아내에 대한 의문을 인정하고나자, 조바심과 초조함, 그리고 희미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손에 바짝 차오른 땀을 바짓단에 문질러 닦은 나는 모텔사장을 향해 돌아섰다.

“벽에서 찾은 여자 시체……그 여잘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봤다고?”
“네. 확실한 게 아니라서 제보는 하지 않았지만 짐작가는 바가 있습니다. 아마, 제 와이프하고 관련된 일일 테죠.”

모텔사장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쏟아낼 듯 벌어진 그의 입을 막았다.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그가 질문을 허락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누구입니까. 사장님이 알고 계신 딸의 남편……이 맞습니까?”





* *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해장국과 구이를 같이 하는 식당이었다. 때마침 저녁시간이 지나간 때라 밥손님보다 술손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약간 부산하긴 했지만, 술손님 특유의 소음이 우리의 목소리를 감춰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모텔 사장과 나는 적당히 주문을 하고 앉았다. 모텔 사장도 나처럼 입맛은 없어보였지만, 앉아서 대화할 공간이 필요했고 마침 가까운 곳에 이 식당이 보였을 뿐이다.
멀지 않은 자리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냄새가 풍겼다.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다. 시끌벅적한 배경 속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모텔 사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최준. 올해 서른, K기업에 다니고 있고. 틀린가?”
“맞습니다.”

그는 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말이다.
최근 일어난 일들과 주변인들의 반응으로만 보면, 모텔 사장과 나 사이에 무엇이 어긋나있는지 추론해내기는 아주 쉬웠다.

‘내 기억이 증발해 버렸다’

아내의 병도, 장인장모의 얼굴도 잊어버린 내 머릿속이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멀쩡하게 출근해 하루종일 일하다가 퇴근한 참이었다. 모텔 사건 전에는 생활에 불편했던 적도 없다. 평범한 가족의 일원이자 가장으로 살아왔을 뿐. 기억상실은커녕 건망증조차 없는 편이었다.
옆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 탓인지 갑자기 토기가 느껴졌다.

내 이런 생각들을 잠자코 듣고 있던 모텔 사장이 “흐음”침음을 흘렸다.





“그 분열증이란 것이, 전염병이 아닌 바에야……어떻게 자네의 기억까지도 혼란을 줄 수 있는지 모르겠군.”
“아니면.”

나는 모텔 사장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사장님이 그럴싸한 말들로 저를 속이고 계신건지도 모르죠.”
“그럴만한 이유는? 아무 이유도 없지 않는가.”
“사람은 때때로 이유 없이 타인을 때리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죠.”
“내가 자네를 조롱하고 있다?”
“솔직히 저도 이젠 모르겠습니다. 어긋난 기분만 들뿐이에요. 그게 뭔진 몰라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사장님을 무시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누구 말이 맞는지 증명하기 손쉬운 방법은.”
“아니. 딸애한테 말해선 안 돼.”

그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할 말을 안다는 듯이. 그의 예상이 정확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모텔 사장을 아내에게 데려가 확인시키려고 했었다. 아버지와 딸 사이라면 아무리 소원하다고 해도 숨기지 못할 반응들이 오가겠지.

“왜, 여태 딸을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멀리도 아니고, 바로 지척에 살고 있는데도. 그애를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었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더구나 이젠 아이까지 있는데……돌발행동이라도 벌였다간……. 정말이지, 그 뒷수습을 어찌 하려고 그러나? 우리는 딸의 다른 인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네. 그 애가 우리를 끔찍이 싫어하는 한, 우리도 모른 척하고 남남처럼 살기로 말이야. 아내도 동의해서 내린 결정이지. 병원에서도 그렇게 조언을 해줬고.”

완벽한 변명이었다.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큰 인심을 쓰듯이 말했다.

“자네만 괜찮다면 지금 우리집으로 가세. 내 말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군.”
“………좋습니다.”

우리는 계산을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어차피 좁은 동네라서 그의 집까진 별로 멀지도 않았다. 나는 앞장서는 모텔 사장의 뒷모습을 보며 1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묵묵히 뒤따라갔다. 그의 집은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집 건물은 꽤 안락해 보였지만 마당은 너무 좁아서 있으나 마나였다. 옵션에 적어 넣기 위해 구실에 맞춘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마당을 가로질러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위아래 두 개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잠금장치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있던 서류더미들이 우르르 쏟아졌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디 있을 텐데.”

그는 부산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내 시선은 탁상 위에 놓인 작은 액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보다 앳되지만, 분명히 아내의 사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증명된 것 같아서 머리가 핑 돌았다. 그가 자기 키보다 약간 높은 위치의 선반에서 따로 철해놓은 파일을 몇 개 끄집어 내리며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시체가 누군지 짐작가는 데가 있다고 했는데, 혹시 그건가?”

“그거라뇨?”

“소문 말일세. 동네에 수다떨기 좋아하는 족속들이 몇 명 있지 않는가.”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고 다니는 그 아주머니가 순간 떠올랐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는 다시 선반 쪽으로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

“누가 아는 형사한테서 들었다는데 그 여자, 자살한 게 아니냐는 말이 돈다더군. 시신에서 암환자였다는 증거가 나왔어. 살아있었대도, 병 때문에 한 두 달이나 더 버텼을 거라더군.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살해당한 거야. 자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게 됐지만. 아무튼 그 단서 때문에 경찰에서도 수사 방향을 바꿀 거라더군.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 이거야. 사람의 목숨에 경중이 없는 건데, 죽음을 코앞에 앞둔 여자였다고 해서 수사열기가 갑자기 시들해지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사람이 죽어서 벽 속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은 똑같은데 말이야.”

꽤 긴 말이 이어졌음에도 내 귀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액자 속의 아내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충격으로 인해 뒷목이 뻣뻣하게 당겨왔다.

그때
모텔 사장이 서랍 문을 탁, 닫으면서 기세 좋게 돌아섰다.

“이게 여기 들어가 있었군. 이리 와보게, 찾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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