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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생 탁구 上
게시물ID : panic_503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정디
추천 : 3
조회수 : 111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15 19:55:46
(탁구라는 것은 말이네. 하나의 인생과도 같은 것이지. 자네가 공이라는 인생을 치면 나한테는 자네의 인생이 보이는 것이라네. 나또한 그렇고.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면서 치는 것이지. 안 그런가 친구?)

       -탁구를 잘하는 어느 중년의 일침.


어느 탁구장에서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 한 명이 탁구공을 서브한다. 탁. 탁. 탁구공이 탁구대에서 이리저리 튕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바닥에 내려놓은 용수철 같다. 


잠시, 이 중년 남성이 탁구를 치고 있는 탁구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녀노소 나이불문하고 누구나 많이 들르는 명소였는데 이름은 '하하 탁구장'이였으며 크기는 학교 운동장만 했다. 이 탁구장이 다른 탁구장과 다르다는 점은 단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것과 크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랭킹 제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랭킹 제도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들 익히 들어서 알 터이지만 말 그대로 탁구를 잘하는 순위를 1위 부터 꼴등까지 차례대로 정렬해 놓은 것이었다. 그 순위 명단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하하 탁구장'의 등록회원이었고, 매 주말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회를 치러 우승자부터 꼴등에 맞는 포인트를 각각 주어 합산 결과로 순위가 매겨지는 제도가 바로 랭킹 제도였다. 매 주 우승자에게는 현금 25만원 상당의 순금과 경품이 증정되었었고 그 달의 랭킹 1위에게는 탁구장 1년 무료 이용권과 현금 100만원 상당의 순금이 증정되었었다.


그 것 때문이었을까. 이 '하하 탁구장'에는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날이 없었다. 부모님을 따라온, 아무것도 모르는 7살 코흘리개부터 왕년에 탁구로 이름을 날렸던 전직 탁구선수의 70대 노장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지켜봐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조중동이요, 나이는 41. 직업은 어느 중소기업의 만년 과장. 머리는 유전과 스트레스로 벗겨져 반짝반짝 윤이 나는 대머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푸근한 인상이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의 탁구 실력을 말하자면 한 마디로 형편이 없다고 단번에 말할 수 있을정도 였는데, 그 이유야 이 남성이 탁구 하는 것을 3초만 보아도 알 수가 있었다. 서브만 잘했지, 토스는 전혀 받지를 못했고, 탁구채를 들은 땀에 절은 통통한 손이 자꾸만 미끄러져 공을 치기는 커녕, 제대로 잡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게다가 폼은 얼마나 웃겼는지 꼭 삼류 서커스에 나오는 분장한 뚱보 피에로 같은 모양이었다.


그의 랭킹 순위를 보자면 240위. 즉 꼴찌에서 2번째였다. 이 '하하 탁구장'에 등록된 회원 수가 총 242명. 그러니까 거의 꼴찌라고 봐도 무난할 정도의 순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탁구를 하는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탁구를 못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는 탁구를 좋아한다. 그가 탁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자신의 직장생활의 영향이 컸다. 매일매일 직장 상사들에게 까이고, 야유를 받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젊은 것들한테 버릇 없는 행동을 당하고...... 그 외에도 수도 셀 수 없는. 그에게 괴로운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야 될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조중동. 그는 스트레스를 풀 자신만의 해방구를 찾아야만 했었다. 그래서 5년 전, 갑자기 시작하게 된 것이 이 탁구였다. 상금이라는 속물적 감정으로 탁구장으로 시작한 사람도 적잖아 있지만, 이 조중동이라는 중년 남성만은 자신이 정말로 탁구를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몇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하기를, 자신이 탁구를 못하는것은 상관 쓰지 않는다고 했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랬다. 그는 실제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탁구 하나 못 하는걸로 자괴감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탁구로 자괴감에 빠질만한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다.


"자, 조씨. 간다네. 이번에는 좀 잘 받게나."


얄상하고 길쭉하게 생긴 두상의 중년 남성이 탁구공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서브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얼마 안 있어 탁구공이 그의 손에 들린 탁구채에 의해 탁탁 튀기며 빠른 속도로 조중동에게 돌진한다.


"너무 빠르잖아!"


조중동이 서브를 받지 못한 채 헉헉거리며 앞에 있는 남자에게 외친다.


"허허. 잘 좀 해보라구. 조씨."


남자가 소탈하게 웃으며 앞에 있는 조중동을 바라 보았다. 이 남자로 소개할 것 같으면, 이름은 김택구요, 직업은 사업가며, 큰 부를 가진 재력가였고, 키는 180 쯤 되는 거구였고 나이는 조중동과 비슷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랭킹 2위라는 엄청난 탁구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신은 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어째서 랭킹 2위라는 엄청난 고수가 꼴찌에서 두 번째인, 정말로 가망 없는 저 조중동과 상대하는 것일까라며,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조중동과 이 랭킹 2위의 남자는 5년 지기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것은 위대하며 끈끈한. 인생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그러므로, 지금 탁구를 하고 있는 이 두 중년은 랭킹이라는 경쟁적 감정을 벗어나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탁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 물론 외면적으로 보고 있을 때 말이다.


"자, 간다네!"


다시 남자의 서브 포인트. 랭킹 2위의 실력답게 안정적인 자세로 안전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서브를 조중동의 면전에 다시 꽂는다.


"허, 나 참. 받을 수가 없구만......"


조중동이 떨어진 탁구공을 주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느 덧 점수는 9대 2였다. 참고로 듀스 가능, 3세트 2선승제의 게임이었다. 2점도 랭킹 2위의 남자가 봐주면서까지 만들어낸 점수였기에 사실상 지금까지는 남자의 퍼펙트 게임이었다.


"친구. 이번에는 자네의 서브 차례라네. 마음껏 휘두르게나."


자신만만한 표정의 김택구가 조중동에게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때, 조중동의 마음 속에서는 끓어오르는 무언가의 응어리가 지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하기를 이것을 자존심이라고 하지만, 이 두 중년의 모습을 보는 우리들은 '이, 조중동이라는 40대 중년의 자존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무시하지 말라네! 나도 한다고 하면 하는 놈일세!"


나름 무너져 내리는 자존심을 쥐꼬리만큼 지키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조중동의 자존심은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였기에, 사실상 소용이 없는 말이었다.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켰다고 조중동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상대방 김택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이 미소에 대해 설명하자면 상대방을 무시한다는 느낌도 첨가 되어 있었지만 자신이 더 높다는 느낌이 더욱 많이 포함되어 있는 미소였었다.


아, 조중동이 친 탁구공의 움직임으로 넘어가보자. 뭐, 설명할 것도 없겠지만은 말이다. 공의 움직임은 한 마디로 느리고, 아니 하염없이 느렸고 볼품이 없는 더티볼이었다. 김택구는 그런 비루한 움직임의 공을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스매쉬 자세를 취했고, 공이 자신의 앞에 오자마자 바로 돌직구를 때려 버렸다.


"이런!"


김택구의 노련한 파워 스매싱 볼에 조중동은 당연히 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중동은 바닥에 미끄러지기까지 했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따로 없었다. 조중동의 추락해 버린 프라이드가 떨어진 탁구공만큼이나 초라해보였다.


"허허. 친구. 좀 봐줄까?"


상대방을 무시하는 김택구의 장난기 어린 발언이었다. 이 망측한 발언은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있는 조중동의 뭉툭한 귓 구멍 속으로 쏙쏙이 들어왔었다.


'오호.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봐주셔 보시지?'


라는 생각이 조중동의 뇌 속 뉴런세포를 훑고 지나갔다. 조중동의 자존심은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최악의 상황까지 떨어져 내려갔고, 마음속에서는 동요가 일고 있었다. 물론, 이 둘이 탁구를 친 것이 오늘만이 아니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이들은 5년지기 친구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되었느냐라고는 알려주지 않았으니 지금 말하겠다. 5년 전 '하하 탁구장'이 처음 생길 때 부터 이용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두 중년들이다. 이들은 그러니까 초창기 멤버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또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왜, 도대체, 어째서 이 둘의 탁구실력은 그렇게 차이가 나느냐고 말이다. 분명히 시작한 것은 똑같은데 5년이 지난 지금은 무려 둘의 랭킹 차이가 240위나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라고. 의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면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결론에 대한 해답은 찾아낼 수가 없다.왜냐? 지금 이 상황을 당신들한테 설명해주는 전개자인 나 자신 조차도 이 미스테리한 일의 해답을 알 수가 없으니깐. 뭐, 당신들 상상하기 나름대로 아니겠는가.


"으엇!"


애쓰는군. 누구긴 누구겠나. 이 조중동이라는 중년말이다. 무려 탁구 경력 5년차의 베테랑이라 부를 수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실력면에서 아닌 경력면에서.


"허허! 이번은 한토스 갔구먼! 대단하군!"


자신만만하다. 누구긴 누구겠나. 이 김택구라는 중년말이다. 무려 탁구 경력 5년차의 베테랑이라 부를 수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실력 면에서나 경력면에서.


"헥헥. 1세트는 졌군......"


조중동이 땀에 절은 런닝셔츠를 답답해하더니, 이내 벗어버리고는 기능성 티셔츠로 바꿔입었다. 그러고 바닥에 주저 앉아 스포츠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1세트의 게임은 끝이 났다. 점수는 역시나 11대 2.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은. 어쨌거나, 1세트는 그렇게 김택구가 가져갔다.


"분발해보게나. 앞으로 2세트가 더 남았으니 말이네. 뭐, 쉽지는 않겠지만 말일세."


의기양양한 김택구의 사기는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힘도 안 들었는지, 땀은 전혀 나지를 않았었고 기능성 티셔츠는 여전히 쾌적해보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행동은 상대방. 즉 조중동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잘 보아라. 저 조중동의 분노하는 모습을 말이다. 당신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탁구라는 것이 살의를 일으키는 운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 물론 없겠지. 왜냐하면 그런 것은 우리 일상에서 상당히 비상식적인 것이니까. 그렇다면 말을 바꾸지. 당신은 탁구를 잘하는가?


"아니. 쉽게 분발할걸세."


조중동이 스포츠 음료의 마지막 한 모금을 거침없이 입 안으로 쏟아 부은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김택구는 '조중동이. 과연 네가 쉽게 분발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중동을 바라본다.


"자, 그럼 2세트 시작하지. 서브는 자네가 먼저 하게."


김택구가 탁구대에 서서 탁구채로 조중동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마치 '이 경기는 내가 이겼다' 라는 표정같이 보였다. 당신들도 지금까지 봐 와서 잘 알고 있잖은가. 겉으로는 남을 배려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시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오지를 않았는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이 김택구라는 중년이다. 


"알겠네! 바로 가지!"


이런. 조중동의 목소리에서 깊은 분노의 느낌이 묻어나고 있었다. 조그만한 탁구공이 그의 통통하고 거대한 손에서 놀아나다가 마치 우주로 가는 로켓처럼 갑자기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급강했었고 공은 바로, 무너져 내려버린 프라이드와 분노로 가득 쌓인 오오라를 머금은 탁구채에 엄청난 힘으로 부딪혔다. 덧붙여 말하자면 조중동의 손에 들려 있는 이 탁구채에는 또 다른 힘이 실려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쌓인 조중동의 거대한 스트레스와 속세에 대한 억울함.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는 힘이었다. 그러니까,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탁구채에도 조중동이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이 실려있단 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바보라도 알겠지. 지금 이 조중동이라는 불쌍한 중년이 온 힘을 다해 실은 탁구공은 여태까지 봐왔던 것과 다른 움직임의 공이라는 것을.


"아니! 빠...... 빠르잖아?"


봐라. 저 표정을. 어이없어 하는 저 김택구의 표정을 말이다. 아, 물론 글로 읽는 당신에게는 참 안타깝다고 밖에 전하고 싶다. 하기야, 뭐, 나도 글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쌈박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다. 


"자네...... 방금 그 공 어떻게 친건가? 아니 애초에 너무 빨라서 친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군......"


놀란다. 김택구는. 묻는다. 김택구는. 누구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탁구공을 친 조중동에게. 왜 묻는가? 자신이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반대로 확인해보자. 그러니까, 조중동으로 넘어가보자. 지금 그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살에 파묻힌 눈은 동전 모양 마냥 휘둥그레 떠졌었고, 뭉툭한 코는 가빠른 숨으로 인해 크게 벌렁거렸고, 동그랗고 조그만한 곱창같이 생긴 시퍼런 입술은 망측하게 위로 쩍하며 벌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겠네...... 그냥 온 힘을 다해서 쳤을 뿐이라네. 정말로 그뿐이야."


정말로 그뿐이었다. 방금전의 그 강력했던 서브는 오로지 조중동의 힘만으로 나왔던 서브였었다. 물론, 외면적으로 봤을 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즉, 그가 그토록 엄청난 서브를 치게 된 이유를 따지고 들자면,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다. 


속상함에 대한 분노


이것이 정의다. 아, 물론 당신은 아까 전에 조중동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변화에 대한 글을 읽었을 것이다. 방금 내가 내린 정의가 바로 그 글에 대한 요약이자, 해답이자, 결론이다. 


말할 것이 정말로 많아지는군. 예컨대, 그가. 조중동이 이런 신비한 일을 겪은 것은 바로 지금이 처음이었다. 즉, 그 말은 그가 탁구를 처음 시작한 5년전부터 강력한 서브를 치기 전 까지는 탁구채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신도 보았듯이 지금의 조중동은 보란듯이 강력한 서브를 날렸었다. 정말로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필자도 놀랄 따름이다. 


"우연이겠지. 암, 그렇고 말고."


김택구가 자기합리화 하듯이 중얼거린다. 굳은 신념에 실금이 가기 시작하니, 그것을 메꾸려고 노력하는 것만 같이 보인다. 그래, 우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조중동의 마음 속에서는 '가능성'이라는 응어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자네 서브라네. 친구."


김택구는 자신이 너무 방심을 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자, 고개를 저었고 손에 쥔 탁구채를 바로 잡았다. 마음속에서 이상하게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불안감이 어디서 오는지는 대강 알았지만, 정확한 곳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점수는 1:0이었고, 그가 1점 뒤지는 상황이었다. 겨우 1점 차이였지만, 상대방이 상대방인지라 그의 자존심이라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금색찬란한 벽에는 길쭉한 금이 나서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김택구라는 중년의 자존심이라는 벽의 크기는 어마어마했지만 그 내구성은 길바닥에 떨어져있는 장난감 쥐만도 못했다.


"그래. 서브하지."


조중동은 이번에야말로 방금 같은 기적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의 신념은 김택구의 신념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김택구의 신념이 '바로 내가 승자다'라는 것이면 그의 신념은 '아아, 난 패배자다'였다. 이 신념은 탁구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확대해서 보자면 그의 인생으로까지 뻗쳐있는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인생을 산다. 이 대비되는 두 중년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조중동은 손에 쥔 탁구공을 부들부들 떨며 올린다. 이제 자신은 저 김택구라는 범접할 수 없는 거인에게 점수를 또 내줄 것이라는 생각에 치를 떨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무능한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탁구공은 그대로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가고 다시 내려온다. 그러고 조중동은 탁구공을 치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의 식도로 침이 꼴깍 넘어가기 시작했고, 심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아까 전과 같은 우연이라는 기적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역시나. 기적은 절대로 우연으로 찾아올 수가 없는건가. 그의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브는 미스가 났었다. 그렇다고 아예 땅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탁구대의 정중앙 방향으로 천천히 튀기며 네트를 간신히 넘고, 그 상태로 계속 전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절규했다. 여태까지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전에는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수 1점을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따고 나니, 또 이길 수도 있다는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이건 조중동만이 가지고 있는 욕심, 아니 기대가 아니었다. 인간의 기대는 사소한 희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탁구가 아닌 글쓰기에 대한 예를 들어봐도 그렇다. 글을 꽤 쓰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글을 잘 쓴다고 자꾸 칭찬하게 되면 그 칭찬을 받은 사람은 우쭐해져 자신의 글은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신보다 높은 이가 수도 없이 많은 것이다. 그 사람은 얼마 안 있어 자신보다 글을 훨씬 잘쓰는 다른 이의 엄청난 글들을 보고는 좌절하고 만다. 그러고는 '나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없구나! 내 글은 저 사람이 쓴 글에 비하면 한심스러울 정도야!'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누가 우쭐해지고 기대하라고 했는가? 그런 감정은 자신을 깎아먹고 좀먹게 하는 벌레들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은 주변의 환경에 인해 변하게 되는 것이다. 자, 봐라. 이 조중동이라는 중년을 말이다. 그는 불과 전까지만 해도 탁구라고는 전혀 못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자신의 실력을 벗어난 서브를 하고 말았었다. 단지, 그 완벽한 서브를 했을 뿐이었는데 탁구를 못한다는 절망에서 잘한다는 기대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기대는 글 좀 잘 쓴다고 믿는 사람의 절망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었다.


'역시나, 우연이었군.'


볼품없게 튀기며 돌진해오는 탁구공을 바라보는 김택구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강 공을 칠 자세를 취할 준비를 했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단 한 가지의 생각 밖에 없었다. 


'조중동이. 내가 5년 동안 자네와 탁구를 친 이유가 뭔지 아는가? 단지 내 명성과 부를 조금이라도 더욱 올리기 위해서였네. 이것들을 올리기 위한 과정에는 자네가 가장 필요한 존재지. 암, 그렇고 말고. 자네도 조금은 알고 있을거야. 나같이 거대한 존재는 자네 같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사람은 쳐다도 보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 말일세. 세상은 정말로 무서운 놈이라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잖은가. 우연히 겨우 1점을 땄다고 우쭐해지지 말게. 승부는 냉정한 것이라네. 내가 자네를 언제나 이겨왔듯이 이번에도 당연히 이길걸세. 오랫동안 무실점으로 이겨왔으니 한 번 점수를 내준것이라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 지고 나서 그 진 것에 대한 슬픔을 좋아했던 것의 배로 받을 테니 말일세. 허허허! 내 승리라네! 이제부터 내가 자네를 잘근잘근 1점. 1점. 씹어주지.'


"허허. 이번에는 내 승리같군!"


아주 자신만만해진 김택구는 껄껄 웃으며 탁구채를 힘껏 들고 탁구공을 향해서 팔뚝에 있는 핏줄이 솟을정도로 내리 꽂으려고 했었다. 이번은 정말로 김택구. 자신의 승리라고 다짐하며 말이다.


"아니! 이런 썩을!"


안됐군. 헛스윙이었다. 그의 탁구채는 볼품없이 통통 튀겨오던 탁구공을 정확히 빗겨갔다. 그러고는 엄청난 힘에 의한 반동으로 인해 허공을 가로질러 휙휙 돌아가며 탁구를 치고 있는 다른 사람의 탁구채로 저돌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서 그들의 탁구채로 내리 꽂혀 타앙하는, 마치 총을 쏘는 것만 같은 소리를 내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아, 증말! 포인트 깎였네! 아우, 빡도네 진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아가씨의 등장이다. 솔직히 따분했잖은가? 지금까지 이 글을 읽는 당신들한테하는 소리다. 이 글 쓰는 놈은 왜 이렇게 재미없게 전개하는거냐! 왠 아저씨들 탁구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거냐! 에라이, 썩을!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미안하다. 그리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들한테 감사하다. 반대로 여기까지 읽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 그러나. 아돈워리. 이제부터 걱정하지 말아라. 지금부터 새로운 인물, 즉, 탁구를 재밌게 하고 있던 예쁜 아가씨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를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해줄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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