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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50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멀레이드@
추천 : 14
조회수 : 31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01/26 09:47:44
-과거에 적었던 글인데..재업합니다.

일전에 나는 급한 용무때문에 B마을에 갔어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곳의 주민인 G라는 사람에게서 특이한 부탁을 받은적이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G라는 사람을 잘 몰랐다. 나는 그 때 당신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그 사람은 "이 일은 당신같이 낯선 이방인에게 부탁해야만 하는거에요! 마을사람들이 알면 곤란하거든요!" 라고 쾌활하게 말해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왜 마을사람들이 알면 곤란하냐고 물으니까 마을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기때문에 혹여나 다른 마을사람들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을 알게되면 자기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부탁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제 집앞에는 M씨라는 부인이 살고있어요. M씨는 제가 집으로 이사온지 몇달이 지나서 저희 집 앞으로 이사를 왔는데, 기이하게도 창문을 저희집 창문과 정면으로 마주보게 설치해놨어요. 그 때 왜 그랬냐고 따졌어야 하는것을! M씨는 창문을 통해서 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낮에는 사과농장에 사과를 따러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건 핑계고 저를 염탐하고 있음이 틀림없어요. 당신이 하루동안 M씨를 관찰해주신다면 제가 당신에게 사례를 해드리죠."

라고 말하며 내가 미처 동의하기도 전에 G는 나의 손을 잡고 M씨의 집 문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여기가 M씨의 집이에요. 보통 8시 30분쯤에 과수원으로 일하러가죠."

과연 내가 보아도 M씨의 집 창문은 G씨의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기에 용이했다. 혹여나 누군가가 창문이 서로 마주하고 있으니 반대로 G씨가 M씨를 훔쳐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을 할 수도 있을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G씨는 결정적인 부분을 내게 설명해주는것을 깜빡했다. M씨의 집 창문은 G씨의 집 창문보다 1미터정도 높게 위치해 있었고 창문의 크기도 사람 얼굴만큼 작았다. 반대로 G씨네 집 창문은 햇빛을 받기에 용이하도록 설계된 전신창문이었기때문에 M씨가 원하기만 한다면 G씨의 집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세요! 척 보기만해도 M씨가 저희 집을 훔쳐볼 수 있다니깐요! 그리고 저희 집 창문은 남향인데 반해 M씨네 집 창문은 쓸데없이 북향이에요. 요즘 누가 그렇게 창문을 설치하는지!"

G씨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G씨의 근거어린 확신때문에 단순한 논리의 비약같던 주장들이 그 활력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아! M씨에게는 저에 대한 아무것도 말하지 마세요!"

G는 쾌활하게 말하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날도 어둑어둑해져서 나도 숙소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거기 형씨, 잠깐 나좀 봅시다."

라는 목소리가 G씨네 집 모퉁이 뒷편에서 은밀하게 흘러나왔다. 워낙에 목소리가 낮고도 강압적이었던 탓에 나도 모르게 등 뒤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벌써부터 M씨가 눈치채고 사람을 내게 보낸걸까?' 라는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쳤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내가 목소리의 주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주저하고 있으니까 그 쪽에서 뚜벅 뚜벅 하는 (느낌상 일부러 위압감을 주기위해 뒷굽으로 바닥을 차면서 걷는 것 같았다) 소리를 내면서 왠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사나이는 덩치가 나보다 조금 더 컸고 회색빛의 두툼한 점퍼를 입었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몸도 나보다 더 탄탄해보였다. 사나이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는데 내가 담배냄새를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반쯤 남은 담배를 땅 위에다가 뱉어내고 남은 불씨를 발로 짓이겨 꺼버렸다. 그는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이 마을 처음 온거요?"

"아닙니다. 이전에도 한 번 온적이 있습니다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건 알 필요가 없고, 당신이 G씨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혹시나해서 당신을 찾아온거요. 혹시 G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지는 않았소?"

정중하게 이런저런 말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워낙에 그의 태도가 불손하고 건방졌던 탓에 나도 모르게 야릇한 복수심과 더불어 반항심이 피어올랐다.

"당신도 그건 알 필요가 없지 않소?"

사나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가 자신은 그런 반응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아무튼, 명심하시오. 당신이 G씨와 어떤 이야기를 하건 난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G씨와는 너무 가까이 하지 말도록 하시오. 이건 협박도 아니고 경고도 아니오. 충고라고 생각하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사나이는 다시 G씨네 집 모퉁이를 돌아서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도 별 꼴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는 찰나 이번에는 위쪽에서 똑똑...하면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나길래 고개를 들어 위를 살펴보니 G씨가 자기 집 창문을 통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맙소사! G씨는 내가 낯선 사나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무어라고 이야기하기도 전에 G씨는 홱 하고 몸을 돌려서 집 안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나는 G씨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몰래 M씨네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척하면서 M씨네 집을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어젯밤에 보았던 그 수상한 사나이는 보이지 않았다.

M씨는 G씨가 이야기한 것보다 30분정도 늦게 집에서 나왔다. 내가 몰래 숨어서 자신을 지켜본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분명 어젯밤의 사나이가 M씨에게 모든것을 이야기해 주었겠지. 나는 마을사람에게 뒷산에 오르는 길을 찾는 척 하면서 M씨의 뒤를 몰래 밟았다. 

M씨는 별 다른 이상한 행동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 의심을 둔다면 저 평범한 과수원 농군의 행동하나하나가 G씨의 말대로 어마어마한 음모이자 나와 G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연극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평범하게 바라본다면 M씨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모든 것을,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선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딱 한번 의심가는 적이 있다면 M씨가 특정 사과나무 근처에서는 고개를 좌우로 살펴본다는 것, 3시경에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것 정도인데, 이런게 무슨 의심거리가 되겠는가!

그날 밤 나는 G씨에게 돌아가 M씨는 그냥 평범하게 자기 일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G씨는 주먹을 꽉 쥐어보이며 신경질적으로 낮게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빌어먹을! 분명 당신이 미행을 한다는 것을 눈치챈게 틀림없어요! 아니면 낮에는 평범한 일꾼인척 가장을 하다가 당신이 미행을 할 수 없는 밤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솔직히 말할게요. 당신에게는 모든 것을 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저는 큰 사건에 연루되어 있어요. 얼마나 크냐하면 이 마을의 존폐가 달린 위기의 중심에 제가 놓여있는거지요. 마을사람들은 저를 보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지만 사실 속으로는 자기들끼리 뭉쳐서 저의 집 주변에 사는 3사람을 시켜 저를 감시하도록 했어요. 저는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한 것 뿐이지요."

그래서 이방인이 필요하다고 내게 이야기 했던 거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방인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면 당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요?"

G씨는 아니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마을사람들은 '내가' 당신보고 마을을 들쑤시고 다녀라고 이야기 한줄은 모르거든요. 저는 모든 것을 다 계획해뒀어요. 이번에는 S씨를 조사해주세요. 그는 저희 집 뒷편에 살고있는데 이따금씩 M씨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서 저에 대한 모의를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한번 조사해주세요."

말을 마친 G씨는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까 싶어서 얼른 자신의 집으로 사라졌다.

S씨는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개성없어 보이는 사람이 간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논리의 비약일정도로...G씨의 말로는 S씨가 M씨를 불러내어서 자신을 해칠 모의를 꾸민다고 했지만 이 부분도 상당히 틀리거나 과장된 점들이 존재했다. S씨는 M씨만 따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청년들을 하루에 한번씩 자기 집으로 불러모았다. S씨는 마을의 청년회장이었으니까. 청년회장이 마을의 일때문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건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는 일이다. 나는 그 날 저녁 G씨에게 돌아가 이 사실을 따졌다.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G씨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차분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길길이 날뛰면서 내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이 마을의 속사정을 잘 모르기때문에 그런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는거에요! S가 청년회장이라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게 당연하다고요? 그게 S가 꾸민 함정이에요! S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공공연하게 사람들을 모아서 저를 해칠 계획을 꾸미는거에요! 그러고보니 당신, 내가 당신을 만났던 첫째날 밤에 내 집앞에서 수상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던데, 혹시 그 사람에게 나의 계획을 모조리 일러바친건 아니지요?"

"아 그 이야기를 잊고 있었군요. 수상한 사나이의 태도가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지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미쳤기때문에 너무 가깝게 지내지는 말라고 하더군요."

G씨가 손뼉을 짝! 하고 치면서 말했다.

"그럼 그렇지! 그들은 당신을 경계하고 있는거요! 그들 입장에서는 당신이 나의 편이 되는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거든. 그들은 날 일부러 미친사람 취급하면서 당신이 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방지하려 하고 있어요! 내 생각보다 당신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 같군요.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세요. 절대로 저에 대한 이야기를 발설하면 안되요!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이때까지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내일저녁식사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은데 와주시지 않으실래요?"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G씨는 이번에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러고는 '꼭 내일 저녁에 오셔야해요!'라는 말과 함께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낯익은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몇일 전 밤에 들었던 그 불쾌하고도 거슬리는 뚜벅뚜벅소리!

"나는 당신이 무슨이야기를 하는지 똑똑히 들었소."

등 뒤에서 예의 그 낮고도 강압적인 목소리가 내게 이야기했다.

"말했을텐데. G씨는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그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터무니없는 공상에 불과하지. 그래도 그가 마을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가하지는 않았기때문에 우리는 그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는거지만."

나는 뒤로 돌아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누군데 자꾸 G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오? G씨의 말로는 자신이 마을의 엄청난 음모에 빠졌다고 이야기하던데!"

아차, 하는 마음이 들어서 얼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사나이는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나를 향해 씨익하고 웃어보였다.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곧이어 사나이는 미친사람처럼 큰소리로 껄껄대고 웃어댔다. 한밤중이라서 마을사람들이 그의 웃음소리에 깨지않을까라는 걱정아닌 걱정이 엄습했다. 하지만 아무도 창문을 열어 밤중에 누가 이렇게 소란스러운지 확인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웃음을 그치자 거리는 다시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역시 그자는 미친사나이야. 이봐, 당신은 모르니까 이렇게 진지해질 수 있겠지. 나라도 그렇겠지만. 한 가지만 똑바로 말해두지. 마을에는 음모나 계략도 없고 감시하는 사람따위도 있지 않아. 한 가지 특이한게 있다면 공공연히 헛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미친놈이나 있을뿐이지. 그래. 당신이 내일 저녁에 G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는 내용부터 뭔가가 이상하다 싶었어. 내가 한 가지 경고하지. G가 내일 당신을 초대하면 우리가 모르는 몇 가지 부탁을 할지도 몰라. 왜 우리가 부탁의 내용이 뭔지 모르냐면, 우리 중 아무도 G가 생각하는 계획에 연루된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아무튼 G가 당신에게 무슨 부탁을 하면 무조건 거절해. 당신이 이성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거절 할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야. 나는 G가 당신에게 어떤 부탁을 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G가 이때까지 저지른 행동을 보면 평범한 부탁을 하지는 않을거야. 나는 자네가 M을 감시하는것도 지켜보았고, S를 감시하는것도 지켜보았고 이전에 자네가 없을때는 G가 건너편 J의 집에 몰래 침입하려다가 붙잡히는 것도 지켜보았기 때문이지."

사나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누가 거짓이고 누가 진실이란 말인가?

다음 날 저녁, 나는 G씨의 초대를 받고 G씨의 집을 방문했다. G씨는 오래된 친구를 반기듯이 버선발로 나와 나를 반겨주었고 집을 천천히 둘러보라고 하면서 자기는 저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니 준비가 다되면 나를 부르겠다고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G씨는 집에서 혼자살고 있었는데, G씨의 집은 혼자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컸다. 그럼에도 모든 물건들은 적재적소에 놓여져서 매우 깔끔하게 배치되어있어 마치 가구며 찬장에 차들이며 할것없이 모두 병정놀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따라 놓여져 있는 것 같았다. 또한 2층으로 통하는 계단도 있었기에 나는 G씨에게 2층에는 무엇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거기는 제 침실이에요! 원한다면 잠깐 둘러봐도 좋아요!" 라는 목소리가 부엌에서 밝게 울려나왔다.

그곳은 단순히 침실이라기보다는 G씨의 생활공간이 집약된 것 같았다. 1층에는 트로피나 식기세트, 장식물들같이 하잘 것 없는 것들이 정렬되어있었는데, 이 곳에는 책장과 책상, 옷장등이 가지런히 위치해있었기 때문이다. 책상위에는 필기구들 역시 펜은 펜대로, 서류는 서류대로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침대시트는 주름살하나 없이 잘 펴져있었다. 단 한가지 이상한 점은 서류는 서류대로 차곡차곡 정리되어있었는데 침대아래에 서류하나가 불협화음처럼 떨어져있었다는 것이다. 주워서 바른 자리에 가져다 놓을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나는 서류가 한 두장이 아닌 것을 알고야 말았다. 

대여섯장 되는 서류가 침대밑에 숨겨져있었는데, 이는 이제까지 반듯하게 정리된 G씨의 집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위치에 놓여있었다. 호기심이 들어 서류뭉치를 주워다 한 장 한장 읽어보았다.

-몇일전에 J의 집에 몰래 침입하려다가 들켰다. 빌어먹을! J는 망할 S와 M과 마찬가지로 나를 감시하는 3명중에 1명이다. 그가 이따금씩 S와 M을 불러다 모으기때문에 나는 그의 집에 나에 관련된 음모에 대한 중요한 서류라던가 그런 증거자료들이 숨겨져있는 것을 알고있다. 나는 그것을 토대로 그들에게 복수하려고 했지만 아깝게도 잡히고 말았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이 자들이 나에대한 비열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사정사정했지만 아무도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이었는데, 이 사람은 나의 어려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는 기꺼이 M을 감시하겠다는 역할을 자처했고, 그 덕분에 나는 의심받지 않고 마을사람들 속에서 태연히 지낼 수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둘러싼 음모마저도 알아낼 수 있는것이다.

-이방인은 M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 큰 희망이 될 것 같았는데 실망감이 느껴진다. 그 역시 3인조에게 속아넘어간것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에 우리집앞에서 형사와 이야기를 하는것을 지켜본적이 있다. 형사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내 얼굴을 본 그는 화들짝 놀라 어딘가로 달아나던데...혹시 그도 연루되어있는것이 아닐까?

-의심이 가긴 하지만 내게 믿을 사람은 이방인밖에 없다. 그에게 S를 조사해달라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S도 별 잘못이 없어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방인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런 멍청한 답안을 내놓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모든 진실을 꿰고 있는것은 나밖에 없다는 것인가?

-모든것이 거짓이고 모든것이 음모다. 경찰또한 믿을 수 없고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제또한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이 속으로는 음흉한 계략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들은 우매하고 평범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어림없지! 오늘 이방인이 우리집에 오기로 했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M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할 것이다. 만약 그가 거절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는 많은 것을 모르니까. 혹여나 그가 부탁을 거절한다면 나는 내 손으로 M을 죽일 것이다. 오늘을 위해 낫을 갈아두길 잘했다.

한 장 한장을 읽어갈수록 내 손은 파들파들 떨리고 입술은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미쳤어!

라는 한 마디만이 내 머릿속을 경보등처럼 울리기 시작했고 도망가야된다는 생각이 따라붙어서 나의 두려움을 더 자극시켰다.

"저녁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이제 내려오세요!"

나는 그 서류 5장을 바짓주머니속에 대충 쑤셔놓고 억지로 태연한 척을 하며 부엌으로 갔다. 저녁식사는 생각보다 진수성찬이었지만 그의 실체를 알고나니 그 모든것이 거북했다. 한시라도 좋으니까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G는 계속해서 나에게 여러가지 음식을 권했고 나는 토할것 같이 울렁거리는 속에도 불구하고 G의 의심을 사지 않기위해 음식을 먹으며 억지웃음을 여러차례 지어보였다. 불안불안하던 저녁이 무르익을 무렵 G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마지막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사레가 들고야 말았다. 기침은 한참이 지나서야 멎었지만, G는 그런 나를 참을성있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제까지와 달리 너무 차가웠던 탓에 뜨거운 내 심장마저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저를 둘러싼 큰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아셨을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중 한 사람인 M을..."

G의 입에서 ㅈ 라는 발음이 새어나오자마자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G의집에서 도망쳐나왔다. 혹여나 G가 쫓아올까 싶어서 연신 뒤를 돌아보며 정신없이 달렸지만 G는 나를 쫓으려고 나오지 않았다. 빨리 마을을 벗어나야겠다! 라는 생각뿐이 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M이 죽을 것이다. 목숨을 둘러싼 갈등에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초조해하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형사와 대화하는것을...'

사나이! 그래 그 사나이는 형사라고 했었어! 그를 찾아가야해! 

마을의 경찰서로 내가 소란스럽게 들이닥치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뒤로하고 맨 먼저 보이는 경찰에게 달려들어 그를 붙잡고 말했다.

"빨리! 빨리 이야기해주세요! 회색빛 점퍼를 입고 키는 저하고 비슷한데 덩치는 좀 더 크고 그 형사 어디있나요! 빨리 이야기해주세요!"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하는 형사 뒷편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 사나이가 문을 열고 나를 보러 나온것이다.

"무슨일인가?"

나는 그 형사에게 달려가서 이야기했다.

"당신이 옳았어요! G는 정말 미친사람이에요!"

형사가 또 기분나쁜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야기했다.

"그래, 속으니까 어때? 이제까지 당신은 시간만 낭비한 꼴 아냐. 그러길래 내가 이야기한 충고를 잘 들었으면..."

"그자가 오늘밤에 M을 죽인다고 했어요!"

일순간 그 형사를 포함한 경찰서 일대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그 형사가 내게 말했다.

"사실인가?"

내가 바짓주머니에 꼬깃꼬깃하게 접힌 서류뭉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게 그자의 일기에요! 그자가 오늘밤에 나보고 사람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하면 자기가 직접 M을 죽여버리겠다고 일기에 써놨어요!"

일기를 읽어보던 형사의 얼굴이 첫번째 만남때처럼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형사는 읽고있던 일기를 집어던지고 "이런 미x새x!" 라는 외침과 함께 경찰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버렸다. 나 또한 그를 쫓아 뒤따라갔다.

한참을 달려서 겨우겨우 G의 집에 도착을 했다. 형사와 나는 지칠새도 없이 그의 집 문짝을 발로차서 부수고 들어갔지만 집 안은 소름끼치도록 고요했다.

"이 새끼야! 나와! 당장 안나오면 가만안둘테다!"

어둠속에서 형사가 소리쳤지만 집안의 기괴한 분위기가 형사의 외침을 삼켜버린 것만 같았다. 소리울림 조차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 때 여자의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소리가 그의 집 건너편에서 울려퍼졌다.

"M씨의 집이에요!"

내가 소리쳤다.

형사는 "에이 x팔!" 이라는 외침과 함께 M씨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M씨의 집 현관문 자물쇠는 예리한 물건에 베인듯이 두동강이 나서 바닥에 힘없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엄습한 형사와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바로 M씨네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마자 내가 본 풍경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온 몸 여기저기에 베인 흔적이 더군다나 배 부분은 심각하게 베였는지 옷에 피가 배여서 원래 옷 색깔조차 가늠하기 힘든 옷을 입은 M씨가 우리를 향해서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는 형사를 밀치고 내게 달려들어서 절박한 어조로 G가 자신을 낫으로 죽이려고 한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형사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빨리 119에 신고해요! 나는 이 미친자식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기로 인해 눈이 반쯤 뒤집혀진 G가 낫을 치켜들고 2층계단에서 뛰어내려고오고 있었다. 형사는 바로 득달같이 G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덮쳤고 곧이어 G와 형사사이에 치열한 난투극이 일어났다. 나는 오들오들 떨리는 손을 간신히 억제하여 119단추를 힘있게 눌렀다. 

119 상담원에게 사건의 위치를 설명하려는 찰나 M씨가 내 곁에서 또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G가 몸싸움끝에 형사를 쓰러뜨리고 다시 낫을 집어들어 형사를 내리칠려고 하고 있었다. 

"날 방해하지마!!!"

라고 외치며 G의 낫이 그의 머리위에서 반짝이던 순간

탕! 하는 금속성의 소음이 M씨의 집 안에 울려퍼졌다.

G는 힘없이 낫을 떨어뜨리며 고꾸라졌다. 그의 머리에서는 피가 연신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미친.."

형사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의 위로 엎어진 G의 시체를 치우고 일어나 옷을 털기시작했다. 형사의 오른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잠시 후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M씨의 집앞에 도착했고 곧이어 치료를 위해 M씨를 차에싣고는 사라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경찰들도 M씨의 집에 도착하여 사건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담배?"

형사가 내게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담배를 피지 않으므로 그의 권유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깐깐하기는..."이라고 중얼대면서 형사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형사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형사님은"

형사는 무슨일이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나요?"

형사가 멋적게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은...감이라고 해야하나? 실은 이전에도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하기도전에 형사가 먼저 내 말을 가로막았다. 처음에 만났을때와는 달리 유순한 말투였다.

"G는 편집증 환자에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과도한 폭력성을 띄게 된 것이구요. 일전에도 G는 옆 마을 사람을 죽을정도로 두들겨 팬 적이 있었어요. 뭐 그 사람이 자기를 노려보는 것이 마치 자기를 해칠 마음이 있었다나 뭐라나. 정신이상때문에 형을 살지는 않고 병원살이만 하다가 나왔는데, 그 이후로는 정상적으로 사는 것 같아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그자가 당신과 한밤중에 몰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의심이 들어서 접근했던거구요."

"그럼 왜 그때 미리 G가 편집증 환자이며 폭력을 행한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거죠?"

"반쯤은 복수였고, 반쯤은 기대였죠."

형사의 아리송한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에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당신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거에요. 그러면서도 G가 이전보다는 나아져서 착하게 살고있겠지..라는 기대도 했었구요. 당신이 나에게 G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느니 뭐라니 하면서 이야기를 할때도 그건 그냥 G의 병세였기에 아무말 하지 않았던 거지 나도 G가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나서 멋적은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말투는...잊어버려요. 당신이 낯설어서 경계하려는 투도 있었고, 처음에만 그러려고 했는데 당신의 말투를 듣자하니 좀 거슬려서 계속 그렇게 말했던것뿐이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한 겨울철에 있었던 광기의 종말의 마무리를 찍어갔다.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서브퀘스트 Paranoia를 각색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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