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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6월 25일의 약속
게시물ID : readers_50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킬링타임~
추천 : 3
조회수 : 1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21:40:17

조용히 오유 눈팅만 하다가 갑자기 혹해서 글을 적기 위해서 회원 가입을 했어요

 

처음 적어보는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6월 25일의 약속-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62년전 전쟁터로 떠나기 전에 장난처럼 했던 그 약속을 잊지 않은 채 그녀는 그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늦게 찾아온 나를 보며 화를 내긴 커녕 오히려 다가와 반갑게 안아주는 그녀를 모습에

그만 난 어린아이처럼 나이도 체면도 잊은 채 울어버렸고 내리는 눈도 마치 나의 마음을

아는 듯이 모든 것을 감싸듯 내렸다

 

1950, 625일 전쟁이 발발했고 철없고 생각은 없었지만 용기 하나만은 누구보다 앞선

난 학도병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족들 몰래 사랑을 키워가던 그녀에게 제일 처음 이야기했다

나 학도병 지원했어, 내가 널 반드시 지켜줄게 그러니까 날 믿고 기다려줘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황당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날 꼭 안으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무사히 돌아와, 니가 제일 처음 날 볼 수 있게 항상 저 언덕에서 널 기다릴께

난 웃음으로 대신 대답하고 그녀를 뒤로 한 채 전쟁터로 떠났다

 

전쟁터는 어린 시절 즐겨하던 전쟁놀이와 너무나 달랐다

어제 나와 함께 웃으며 밥을 먹고 같이 자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이제 다들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들 매일 밤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나 역시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밤을 지새우기 일수였고 그 두려움만큼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또한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전쟁터 그렇게 지냈는지 모른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늦게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지쳐 잠들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31개월, 그 기나긴 지옥 같은 전쟁이 드디어 끝이 났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그녀를 볼 수 있단 생각에 설레는 맘에 밤새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설레는 마음과 달리 너무 가벼웠다

하지만 그 가벼운 발걸음 역시 길게 늘어선 피난민들의 행렬을 어찌하지 못하여 더디기만 했지만 사람들과 다 같이 고향을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엇보다 행복했다

 

그 행복도 잠시 마을에 도착한 난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게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포탄이라도 떨어진듯한 폐허가 된 마을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적막감만이 나를 반겨왔다

 

미친 듯이 가족을 찾아 그녀를 찾아 마을을 뛰어다니고 건물더미를 헤집고 다녔다

손이 찢어지고 갈라져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그 사실만이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무엇을 위해서 그 고통을 참으며 그곳에서 견뎌왔는데 모든 것이 허무해지기 시작했고

난 마을 한구석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게 그날을 지새웠다

새벽의 찬바람은 부서져버린 내 몸과 정신이 견디기엔 너무나 차가웠다

이젠 손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나지 않았고 잃어버린 가족과 그녀 곁에 갈 수 있다면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고통보다는 마음의 위안이 찾아왔고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난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악!!!!!!!!!”

얼마나 쓰러져 있었을까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눈을 제일 처음 본 것은 마을에서 보던 하늘이 아닌 하얀색으로 뒤덮어진 천장 이었고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한구석 어귀가 아닌 어떤 병원 안 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안부를 물어보며 이곳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마을이 부서졌고 파괴 되었고 사람들 역시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큰 피해가 없는 마을에서 파괴된 마을을 돕기 위해서 찾아갔던 것이었고 나 역시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라고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수는 현재 지어진 병원들을 전부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그렇게 아무런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기지수였다

 

이곳 병원 역시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래서 살려달라며 호소하는 사람들도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적절한 치료도 해줘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약과 일손이 너무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그렇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고 죽으려고 했던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졌는지 몰랐고 그나마 멀쩡했던 난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병원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곳에 정작해서 지낸지 62년이 되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내 몸 역시 빠르게 늙어갔고 무리하면서 사람들도 돕다

자잘한 병들도 이제 그만 나보고 쉬라는 듯 빠르게 내 몸으로 퍼져갔다

 

이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기에

마지막에 부모님과 그녀에게 안부 인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가슴 깊이 묻어뒀던 그 장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62년만에 도착한 마을은 내 기억속의 죽음과 적막만이 전부가 아닌 생기와 활기가 느껴졌다

포탄으로 폐허가 되었던 마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고 어린 시절 추억은 장소들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허탈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며 추억에 잠겨 있다가 우연히 보게 된 그때 그 산은 아직도 괜찮다는 듯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며 솟아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겨울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난 산을 올랐고 나를 반기듯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 추억의 장소에 도착했을 땐 흰 눈을 맞으며 날 반기는 그때 어린 시절 그모습 그대로 그녀가 서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를 놓지 않겠다

 

 

어제 마을 야산 꼭대기에서 왠 할아버지 한분이 나무를 안은 채 웃으며 죽어 있었다면서? 뭐가 그렇게 죽을 만큼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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