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미아X토마스] 세계수의 지휘자 Ep. 01
게시물ID : cyphers_382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하모니
추천 : 4
조회수 : 2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4/08 11:08:23

 

 침입자는 낯선 여자였다. 머리에는 꽃과 나무덩쿨을 엮어만든 장식품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녹색빛으로 빛나는 눈망울로 나를 응시한 채 웃는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옥탑방 이불 위에 나른하게 누워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등장한 것은 우중충한 노을빛이 지고 으슥해질 무렵이였다. 막 선배가 있는 연합의 일회용 전투요원으로 큰 성과를 거두어 포상을 받고 기분 좋았을 무렵이였다.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절로 웃음이 나왔었다.

 

 

" 흐히히. 이번 달 생활비는 쪼개고 쪼개면 어떻게든 될 거 같고… "

 

 

 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낡아빠진 건물의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발을 댈따마다 위태로운 삐걱소리가 내 간담을 서늘해지고 언제 수리가 될려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불평을 해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선택한 결과였으며 부모의 반대에 무릅쓰고 영국에 왔기 때문에 이런 처지에 마냥 불평을 늘어 놓을 수만은 없었다.

 

 행여나 무너질까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난간을 붙잡았지만 여전히 발은 떨렸다. 정말이지 언제든 무너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허나 이런 나의 떨림은 이내 곧 정지됐다. 아무 기척 없이 나의 보금자리의 철문이 덜컹 울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였다.

 

 저절로 몸이 정지됐다. 머리카락마다 전율이 퍼져 정수리에 쥐가 오르는 듯 했다. 혼잣말이 목구멍 속에 숨어나오지 못해다. 화들짝 놀란 귀가 쫑긋거렸으며 7월의 습한 더위에도 선배나 트리비아 누님이 내뿜는 것과 비슷한 냉기가 오금을 파고들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솟으며 불길한 예감이 따라 흘렀다. 퍼뜩 몸을 낮춰 창문턱 아래로 웅크렸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옥상에 들어섰다. 나는 빠르게 결정을 응집시켰다. 여차하면 그것을 상대의 얼굴에 뿌려 달아날 수 있도록 말이다.

 

 

' 으어어… 누, 누, 누구지? "

 

 

 어둠이 시작될 시간에 올라올 사람은 없었다. 나의 보금자리인 옥탑방은 늘 인적이 없어야 옳았다. 왁자한 골목의 소음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야만 했다. 철문을 닫아걸고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한달에 한 번 월세를 받으러오는 아저씨 외에는 오롯 나만의 공간이였다.

 

 덜컥 겁이 솟았다. 회사나 다른 세력에서 과거의 공성전을 빌미로 날 붙잡으러 온 걸지도 몰랐다. 걸쇠를 내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리지 않았다면 치명적이였다.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만 단 한번의 실수도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트와일롸잇의 킬링필드에서의 동료의 죽음이 머릿속에 불쑥 일어섰다.

 

 

'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닌데… '

 

 

  이미 지난 일이였고 과거의 죽음이였다. 예전의 폭풍보다 현재 닥친 냉기가 더 급했다. 파국의 과거보다 다가올 시간의 섣부른 불길함이 더 두려운 법. 지나간 불행보다 확인되지 않는 인기척이 더 공포스러웠다.

 

 

' 치, 침차, 침착하자. 으, 으어어어… 불안해 미치겠네. '

 

 

 차마 고개를 내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벽에 등을 붙이고 웅크린채 들리는 것에먼 온 신경을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선배가 말하길, 생존에 필요한 것은 조용히 숨죽이는 거와 집중하는 것 뿐이라고. 잠자코 숨죽이고 있는 것이 상책으라 여겼다.

 

 두려움을 이기려는 몸부림이 머릿속에서 떨었다. 짧고 깊은 한숨이 소리 없이 흘렀다. 그 순간이였다. 한숨 끝자락에 울음같은 노래가 들려왔다.

 

 

' 노래? '

 

 

 노래인지 울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고음의 노랫소리가 옥탑방에 울려퍼졌다. 흥얼거림이 속살거리는 가랑비처럼 가벼이 흩어졌다가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단락으로 들리는 소리, 울음소리처럼 애처러운 멜로디. 여자, 아니 여자의 음색같았다. 울음같은 음색에 긴장의 날이 뭉툭한 단검마냥 무뎌졌다. 회삿 사람들이 여자의 노래를 앞세워 닥치진 않을 것이였다.

 

 굽은 등을 들어 창틀에 눈을 대자 어스름 짙어진 잿빛 하늘이 시선에 잡혔다. 흥얼거림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살금살금 까치발로 부엌을 질러 문가에 쪼그려 앉자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여자의 음색이 분명했다. 더 깊숙이 몸을 웅크려 숨을 죽였다. 낯선 목소리에 불길한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처지가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호흡은 절로 무거워졌다. 압박감이 조바심을 부채질했다. 소리의 박자가 느릿느릿 이어졌다. 쉽사리 내려갈 태세론 보이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침입자가 물러날 때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용기 아닌 망설임 끝의 체념으로 문을 빠끔 열었다. 삐걱. 낡은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천둥소리같이 느껴졌다.

 

 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치지 않는 소리만 청각을 조롱했다. 문을 더 열어보았다. 조명 없는 옥상풍경이 더 다가섰다. 짙은 무채색 하늘에 비라도 곧 내릴 것 같았다. 장마철 습기를 머금은 피부는 여름에 익었지만 시각만큼은 스산하게 오싹했다.

 

 

' 누, 누, 누굴까… 연합 쪽에서 찾아 올 일은 없을텐데… '

 

 

 그 싸늘한 풍경 속 귀퉁이, 정확히 말하면 철문 반대편 난간 아래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어둑해진 하늘 탓에 실루엣은 흐렸다.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뒷모습, 어깨에 닿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가 눈에 띄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중엔 저런 헤어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쪼그려 앉아 무엇을 하는지 어디를 향해 노래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형광이 시작된 허공을 향해 여자의 뒷모습이 노래 같은 흥얼거림을 읊고 있다는 것만 아슬아슬 느껴졌다.

 

 늙은 관리인 아저씨 대신 온 사람일까? 옥상에선 마주 칠 것이 없으니 초면이 당연했다. 호기심 섞인 두려움이 말초신경을 타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도망자가 아니더라도 예고없는 누군가의 조우는 공포를 야기하는 것이 당연했다. 겁이 문제가 아니였다. 물론 겁이 많은 성격이긴 했지만… 아, 지금 내가 무슨 소릴…

 

 정체를 모르니 제 발로 내려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노래가 멈췄다. 동시에 불쑥 일어선 실루엣이 나슨한 반바지를 내린 후 다시 쪼그려 앉아… 오, 오줌을 쌌다. 시선에 들어온 엉덩이 밑으로 바닥을 적시는 오줌발 소리가 노랫소리와 함께 발랄했다. 그 순간, 흥겨운 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삐꺽하고 철문이 울어댔다.

 

 

" 어? "

 

 

 소리에 화들짝 고개를 돌린 여자가 외마디를 질렀다. 철문의 울음소리 뒤에 숨은 내 시선을 본 모양이였다. 절로 몸이 얼어붙었다. 으어어어… 자칫하면 변태로 오인 될 수 있는 일이였다. 내 월셋방에 눈치를 봐야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 하다 생각됐다.

 

 여자의 흐린 몸짓이 덩달아 정지됐다. 잠시 사위가 멈춘 듯 했다. 마치 트와일롸잇 아공간 전투에서의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 같았다. 괜한 죄의식이 그녀를 향했다.

 

 

" 누, 누구? "

 

 

 서둘러 옷을 추스리는 여자의 얼굴이 황망했다. 유난히 큰 눈이 외마디의 여운을 따라 들어섰다.

 

 

' 어, 어쩌지? '

 

 

 엉겁결에 문을 닫아버렸다. 여자의 알몸을 훔쳐보다 들킨 사춘기 소년처럼 행동했다. 침대로 후다닥 돌아와 불을 켰다. 들킨 이상 어둠속에 숨을 필요가 없었다. 죄의식 대신 치욕감과 두근거림이 가슴께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반가워 - 몇 달전에 이사 온 그 안경잡이 오빠지? 안녕 오빠야? 집에 없는줄 알았어. "

 

 

 짧은 핫팬츠와 은행잎으로 장식을 한 듯한 티셔츠 차림이였다. 어정쩡 일어서려다 주저앉는 몸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낯선 방문을 맞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낮에까지만 해도 디시카에서 일어난 불량배들의 폭동을 잠재우기 위해 고생하여 옷차림이나 꼬라지가 엉망이였다. 감지 못한 머릿카락을 긁적이며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 들어가도 돼? "

 

 

 초롬한 표정의 여자는 목소리보다 먼저 나풋나풋 부엌에 발을 들여 놓았다. 살뚱맞은 반말이였지만 표정이 맑았다. 엉덩이를 보인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 누, 누구세요? 저, 저를 아세요? "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체도 모르고 방안에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들인 다는 것은 도리적으로도 이상했다.

 

 

" 아니, 몰라. 나, 포트레너드는 처음인걸. 그냥 아는 친구와 오빠따라 따라왔어. "

 

" 그, 그렇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

 

 

 대답이 이상했다. 애당초 이 곳에 올라온 것도 충분히 이상했다. 애당초 모르는 사람의 집에 찾아와, 오줌을 갈긴다는 것은… 으아, 또 그 모습을 상상하니 얼굴에 핏기가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 오빠야 얼굴 빠알개졌다. "

 

" 아니 이건 , 그러니깐. 아유 참, 그니깐… "

 

 

바보 같이 말을 더듬었다.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여자는 이미 바닥에 펼쳐진 이부자리에 다이빙하고는 기분좋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어댔다.

 

 

" 오빠야. 나 잠오니깐 잠깐 눈 좀 붙이고 갈게 - "

 

 

 그러곤 여자는 빠르게 눈을 감곤 잠이 들어버렸다. 옥상은 다시 잠잠해졌다. 흥얼거리는 소리도, 두근대는 심장소리도, 이제 모두 없고 새근새근 잠을 청하는 여자의 숨소리만 옥탑방위에 가득했다. 여자는 여전히 옆에 있었지만 왠지 귀신에 홀린 기분이였다.

 

 

' 벼, 별일이 다 있네… '

 

 

 긴장이 내려앉으며 오금이 풀렸다. 낯선 침입에 대한 두려움과 불길함에 대한 께름칙한 뒷맛이 서늘함으로 가라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비어버린 아랫배에 급하게 똬리를 트는 놈이 울어댔다. 이런, 허기였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