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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게시물ID : readers_50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1060604
추천 : 4
조회수 : 1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21:48:35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나를응시하던 눈동자는 금세 내 옆으로 미끄러지듯 옮겨갔다순간 잡고있던 그이의 손을 꾹 눌러 잡았다. ‘?’ 라는 물음이 내 귓가에 울렸다눈치가 빠른 그는 그녀를 얼른 힐끔 보았다. ‘아는 사람이야친구?’


유난히 붙임성‥ 아니넉살이 좋았던 나는 3월이 채 가기도 전에 금세 아이들과 친해졌다그러나 그 친목이란 굉장히 얕고 넓은 관계인지라짝을 지어 무언가를 하거라하는 말이 나오면 끼리끼리 짝을 짓는 아이들 틈에 멍하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시부랄의리도 없는 년들.”괜스레 민망해져 중얼중얼 거리며 남는 사람 아무하고나 섰는데그게 그 애였다붙임성 좋은 나도 말 한 번 걸어보지 못한 아이였다그렇다고 존재감이 없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본인은 모르겠지만교내에선 나름 유명했다빛을 받아도 갈색 빛 하나 돌지 않는 새까만 머리칼과 새까만 눈동자로딱히 예쁘게 생기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아우라 때문에 건너편 남학교에선 인기가 조금 있었다는 것 또한 유명했다말수도 없고수업시간이 아니면 공부를 하거나 간혹 그림을 그리는 애.


여학교의 체육시간그저 시장바닥이다. 21조로 하나씩 나누어 준 배구공은 어느새 누군가의 품 안으로 들어가있고 수다를 떨기에 바빴다나 역시 나에게로 온 공을 어딘가로 휙 던져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가위바위보 하자.”


이 웬 쌩뚱맞은 소리인가멀뚱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덧붙여 말했다.


이긴사람 소원 들어주기안내면 진 거가위바위보!”


그녀는 얼결에 꼭 쥔 주먹을 내었고나는 보자기를 내었다아싸하고 외친 나는 잠시동안 고민하다 개구지게 웃으며 이렇게 말 했다.


언니 대접해주기.”

?”

“1년동안.”


내가 깜빡한 것이 있었다그 애가 교내에서 꽤나 유명한 이유는 머리나 눈동자보다도시키면 다 하는 융통성 빵점바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1년동안 그 애에게 언니’ 라는 호칭을 들어야 했다.



어느순간그 애와도 제법 친해지게 되었다언니 하는 호칭은 나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금세 적응되었다친해지고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종알종알이라고 표현 했을 때 어색하지 않은 정도 쯤별 일 없이 그렇게 봄이 가고여름이 가고가을이 가다 만 늦가을이 되었다언니 것을 입은 것 마냥 한 품은 큰 하얀 니트에 파묻히다시피 하고서는 무언가를 열심히도 사각댄다그 애는 다른 과목은 더럽게’ 잘했으나 수학은 그렇지 못했다나는 다른 과목은 간신히 선생님의 매질을 면할 정도였지만 수학은 얼추 잘했다고 볼 수 있겠다그리고 아마 저렇게 사각대고 있는 것은 수학일 것이다저렇게나 매달리는데도 점수가 좋질 못하다그런데 놓지도 않고 끝까지 붙들고 간다징하다.


저기‥언니.”


아직도 뭔갈 부탁할때는 저렇게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언젠가는 농담처럼 너 아부 떠는거지?’ 했다가 그 소리를 들은 주변 아이들의 째림에 호되게 당했다. ‘왜 순진한 애한테 못되게 굴어망할 년아.’ 하는 눈으로 보는데솔직히무서웠다.


이거그래서뭐 어떻게 해?”

인수분해 했어?”

안되는데‥

줘봐,”


그애가 끄적인 계산들을 죽 보다가 에라이,’ 하고 뒷통수를 탁 때리‥지는 못하고 손만 대충 얹었다 떼었다.


 4의 제곱이 36이냐?”


맨날 이래가지고 다 틀리지멍청아하며 대충 찍찍 긋고 다시해하며 돌려주었다연습장을 돌려받더니 미술용 연필을 손에 쥔다.


너는 무슨 문제를 미술용 연필로 풀어?”

이러면 수학에도 좀 정이 가지 않을까해서.”


가지가지한다하고 웃다가 우연히 소매를 스치듯 보았다. 손등을 다 덮어 손가락만 빠끔히 고개 내민게 영 걸리더라니. 하얀 니트소매 끝이 연필 탓에 거뭇거뭇해진 모양새가 영 보기 좋지 않아 문제를 풀고있는 손에서 연필을 빼앗아 제 책상에 두었다어리둥절한 시선이 오기도 전에 손목을 붙잡아 와서는소매를 걷어주었다.


안그러게 생겨서 은근히 칠칠맞아요너 이거 빨려면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말이 없었다반대쪽 줘봐해도 반응이 없길래 막무가내로 또 손목을 붙잡아 와 걷어주었더랬다.


그날그 애는 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그다음날도그 다다음날도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얼마나 되었을까점심시간이었다이젠 내가 먼저 무슨 일 있어나한테 화난거 있어하고 말하기도 지쳐 가만히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그러더니 체념한 듯 하면서 결연한, 아이러니한 표정으로 나에게 와 앉더랬다색연필을 들고서.


내 눈동자가 예뻐?”


얘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어리둥절 했지만 고개를 주억였다.


나는 내 눈동자가 싫어.”


그러더니 연습장 한 장을 북 찢어 그 위에 검은색 색연필로 까맣게까맣게까만 동그라미를 그렸다또 한 켠에는가지고 있는 색연필 색깔을 다 덧칠한 동그라미를 그렸다둘 다 까맣지만덧칠한 눈동자는 탁하고 오묘한 색이었다예쁘지는 않았다상대적으로 굉장히 맑아보이는 까만 동그라미를 가리키며 그랬다.


내 눈동자는 이 색이겠지언니 눈동자는 이거 말고 옆에 있는 이 검정색이야난있지내 눈동자 색은 공허해서 싫어아무것도 없이 그냥 마냥 까맣기만 해그냥‥ 그게 나인 것 같아서 싫어.”

…….”

언니 눈동자는 안 그래여러 색깔 다 섞인 것 같은 검은색이야꽉찬 검은색쾌활한 색차분한 색경쾌한 색우울한 색다 섞인 검은색.”

그게 뭐가 좋아너 지금 나 다중인격이라고 놀리는 거지?”


나름대로 농담을 해 분위기를 풀려고 했지만 그 애는 끝까지 심각했다.


그래서 난그게 좋아나한텐 없는걸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이상한건데도 마냥 좋아. 이상한건데, 그래도, 좋아‥ 언니,”

저기잠깐만그러니까‥ 내가 머리가 나빠서 정말 모르겠어서 그러는데네가 좋다는게내 눈동자 색이야아니면‥?”


더는 물을 수 없었다어느틈에 시나브로 고인 눈물이 그 애 눈에서 뭉텅뭉텅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그 애는 오래도록 그렇게 울었고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영부인마냥 치렁히 장신구를 단 귀부인은 내 뺨을 불이 나게 때렸고그 부인 옆의 당시엔 흔치않던 교복을 입은 학생은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보였는데도 얼핏 귀티가 흐르는 얼굴로 날 더럽다는 듯 흘겼다그리고 곧싫다는 말을 못 하는 융통성 빵점인 그 애가 엄마 제발그만해요!!” 하고 외치는걸 보았고눈을 질끈 감았는데도 그 울음 섞인 목소리가쟤는 싫댔어내가 들러붙은거예요내가싫다는데도 매달린거야.” 따위의 내용을 말하는 것과내가 뺨을 맞았을 때와 비슷한 울림은 너무도 선명히 들렸다.


일주일간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일주일 뒤에는 누구도 모르게 전학을이사를 가버렸다.



여보아는 사람이냐니까?”


다른 생각을 좀 했어요하면서 그 애를 물끄러미 보았다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먼저 그이에게 성큼히 다가와서 같은 학교 다녔었어요안녕하세요.’ 하는 음성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서글서글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은 영 낯설다어느새 그이와는 이야기가 끝났는지나를 보고 그런다.


있지나 오늘 첫사랑을 만났어.”

어‥ 그래.”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웃기지그 사람결혼한 걸 보니까‥


그러더니 이전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그런다


그제서야다 잊었다.’ 싶더라고바보같지.”


난 그 옛날에도 그러했듯아무말도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


이렇게 글 써보는건 처음이네요. 여자 주인공을 생각해두고 있었는데 시제에 '그녀가' 서있었대서

어쩌지? 하다가 문득 생각난걸로 요래 끄적여봐요. 분량은 엔터 없이 2장 거의 다 채웠어요.

아이고 떨려라 ㅠㅜ

(퇴고도 다 안 마친 상태에서 실수로 등록버튼 눌러서 ㅠㅜ 삭제하고 다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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