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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아기야.
게시물ID : readers_50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rhbani
추천 : 11
조회수 : 2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2/02 21: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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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머리와 어깨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털어낼 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기바구니에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꼭 끌어안고 있었다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가운데 그녀는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꽃이 그녀의 울음소리를 지웠다가 다시 녹아 내렸다. 그녀의 볼은 창백했다. 눈물은 마르기 전에 얼어붙듯 그녀의 볼을 쥐어짰다. 그러나 그녀는 꼼짝 않고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곧 있으면 동녘이 밝을 터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으리으리한 저택을 바라봤다. 밥 먹을 입이 하나쯤 늘어도, 덮고 잘 이불이 하나쯤 늘어도 사는데아무 불편이 없을 것 같은 집이었다그녀는 저택에 인기척이 보이거든 움직일 생각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폭설 속에서 바구니를 대문 앞에 내려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저택은 밤새도록 기지개를 켤 줄 몰랐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곧있으면 길가에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가 남긴 발자국들은 눈 속에 파묻혀 모두 지워져있었다. 그녀는 갈 곳을 잃은 것이다그녀의 흐느낌을 알아차렸는지 바구니가 들썩거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울음을 멈췄다. 그러자 바구니도 움직임을 멈췄다.

 

아기야…….”

 

그녀는 바구니를 아기라 불렀다. 조금이라도 정이 생길까 두려워 그녀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축복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난 아이와 엄마. 둘의 이별의 시간은 다가와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그녀의 행동 뿐. 그녀는 마지막으로 바구니를 덮은 담요를 걷어 올렸다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눈 꽃처럼 자그마한 아기가 곤히 자고 있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한풀 꺾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침을 삼킨 뒤 대문앞으로 걸어나갔다. 대문 밑은 처마 덕분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그녀는 바구니를 내려놓으려 했다.

 

[까악! ! ! 까아악!]

 

갑작스레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났다. 그녀는 오싹함을 느끼며 내려놓으려던 바구니를 다시 품에 안았다.죄를 짓고 있음을 까마귀가 온 세상에 알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소리가 난 곳을 찾기 위해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뒤 이어 개 짖는 소리도 났다. 그리멀지 않은 곳이었다. 낡은 전신주 밑에서 까마귀와 들개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들개는 사나웠다. 덩치는 계란과 바위만큼이나 차이 났다. 그럼에도 까마귀는 날개만 퍼덕일 뿐 땅에 내려앉아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까마귀의등 뒤에는 새끼 까마귀가 누워 있었다. 전신주 위에는 까마귀 둥지가 있었다. 실수로 새끼 까마귀가 땅에 떨어진 것 같았다. 불행히도 지나가던 들개가 새끼 까마귀를 발견한 것이다. 까마귀의 저항이 생각보다 심해 들개는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발톱 한번이면 제압할 수도 있을 터인데 들개는 위협적으로 짖기만 했다. 반대로 들개의 이빨에 어느 한 곳이라도 물린다면 까마귀는 죽고말 것이다. 그럼에도 까마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겨울이라 먹이 감은 구하기 힘들다. 들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까마귀에게 달려들었다. 까마귀는 날개와 부리를 휘저어 가며 들개의 코를 쪼아댔다


[컹컹! 컹!]


[까악! 까악!]


들개가 까마귀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까마귀는 필사적으로 들개의 얼굴을 할퀴고 쪼으며 버텼다. 끝내 들개는 물러서고 말았다. 들개의 눈가와 코끝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어떻게든 힘을 쓰면 새끼 까마귀를 잡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은 것 이다. 들개는 꼬리를 내린채 까마귀로부터 등을 돌렸다. 까마귀는 깃털이 듬성듬성 뽑혀 있었다. 한 쪽 발톱은 부러져 있었다. 부리는 금이 갔다. 그럼에도 까마귀는 들개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채 한껏 경계했다.


들개는 그녀 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왔다. 그녀는 들개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들개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아니, 그녀가 품고 있는 아기바구니를 보고 있었다. 들개는 으르렁거렸다. 


'놓고 가려면 빨리 놓고 가. 난 배가 고프단 말이야.'


순간적으로 그녀는 아기바구니를 들개에게 보이지 않도록 뒤로 돌렸다. 들개는 낮게 목 울음을 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귓가엔 또렷이 들개의 의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들개를 노려보았다. 이빨이 따닥 부딪혔다. 잠시 후 들개는 콧김을 내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아기바구니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다시 담요를 걷어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평화롭고 아무 근심 없는 얼굴이었다.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결국 그녀의 마음은 꺾였고 꺾인 마음 사이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흐흑.... 미안해 아기야. 엄마가 잘못했어......"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려 아기 바구니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깊이 잠에 들었던 아이는 잠을 깨고 말았다. 


"으아앙. 으앙. 아앙. 으아아앙!"


가족에게 버려질 위기와 눈 속에 파묻혀 죽을 위기, 들개에게 잡아먹힐 위기 속에서도 꼼짝 않던 아이는, 


엄마의


슬퍼하는 모습에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며


엄마의 눈물을 볼에 묻힌 채


오열했다.


그녀는 자장가를 부르며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품에는 아기 바구니가 조용히 안겨 있었다. 그리고 머리와 어깨 위에 쌓여있던 눈은 어느샌가 녹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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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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