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www.foulball.co.kr이란 야구커뮤니티에 올 렸던 글인데 생각해 보니 나름 재미있는 글 같아 올립 니다. 부산에서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내면서도 롯데가 아닌 다른 팀의 팬으로 지낸 이유를 쓴 글인데요, 지금 은 꼴지 언저리에서 놀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한화가, 아니 이글스가 참 좋네요...>
매번 들어오면서도 글만 읽고 나가다가 처음으로 한번 글을 남겨 봅니다.
저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와 20년 가까이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고향 을 물어 본다면 부산과 김천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그래도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부산이라고 얘 길 하곤 하지요. 이후 대학에 들어오면서 혼자 서울로 와서 10여 년 간 살다가 입사하면서 다시 부산 발령을 받고 내려와 있습니다.
제가 야구를 처음 보고 한 것은 1988년이었죠. 그러니 제가 부산에 내려와 있었던 지 약 3년이 넘었던 때였 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X알친 구가 당시 무지막지한 야구광이었기에 저도 자연스레 어울리며 야구를 즐기게 되었습니다.하는 것이든 보는 것이든요. 물론 당시의 야구란 테니스공을 던지며 타 구에 주자가 맞으면 아웃이니, 세잎이니를 매일 핏대 올리며 싸우던, 그러면서도 왠지 투수는 최동원의 영 향으로 금테 안경 하나끔 끼고 하이킥 한번쯤 해 줘야 되는 걸로 동네 꼬마들이 다 인식하고 있을 때였죠. 당 연히 그 친구는 롯데 팬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 지 “내기”라는 타이틀이 걸린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 하는 우리는 곧 야구를 가지고 떡볶이, 오뎅 등등의 내 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한 팀을 응원하면 내기 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즈음 떠오르고 있던 빙그레를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부산의 한화(빙그레)팬입니다.
기억은 1992년 가을로 넘어갑니다. “아 죽는다 ~~!!”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압사 직전의 위기를 넘기 며 겨우 들어갔던 사직 구장에서 빙그레는 롯데에게 지며 우승을 넘겨주게 됩니다. 그 때 한국 시리즈가 열 리는 사직 구장에서 빙그레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위험 한(?)짓을 했던 저는 “이런 XXX XX",(이것은 욕설을 쓸 수 없는 그 게시판의 성격상 쓴 것이고 실제 제게 날 아온 욕은 "개노무새끼"였습니다.) 부산 사람이 롯데 편을 들어야지 어데서 빙그레 편을 드노?” 라는 욕설 섞인 한 아저씨의 한 마디에 반감이 생겨 더욱 더 안티 롯데 빙그레 광팬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실 그 때까진 빙그레를 좋아하는 것이지 롯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 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어린 나이에도 어지간히 반골 기질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1999년 한화가 최초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던 날, 저는 부산 출신의 한 지독한 상병말호봉 고참과 함 께 일병 물호봉의 짬밥으로 같은 부산 출신이라는 혜 택으로 야구를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아~~그 날의 인 간적인 고뇌란...데이비스의 안타에, 구대성의 삼진에 "C8"을 왜쳐야만 했던 이글스 팬의 심정을 비교하자면 마치 '이종범의 안타와, 이대진의 삼진'에 ㅆㅂ를 외쳐 야 하는 해태 팬의 마음, 그리고 박용택의 삼진과 이상 훈의 폭투에 '아싸'를 외쳐야 하는 LG팬의 마음과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 날, 장종훈의 결승 희생 플라이 타점 이후 게임 오버를 알리는 소리를 듣고 그 고참의 “아 CX” 소리를 들으며 혼자 전투화 닦으러 막사 뒷편으로 가서 얼마나 혼자 온 몸을 뒤덮는 희열에 빠졌던지요.
롯데, 물론 매력적인 구단입니다. 사직 구장을 뒤덮는 신문지, 쓰레기봉다리 응원에 3만이 합창하는 부산갈 매기, 99년 플옵의 에너지, 92년 우승의 드라마틱함. 박정태와 공필성으로 상징되는 근성이 살아있는 팀.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뛰고있는 임수혁의 심장처럼 (당시까진 고 임수혁 선수가 식물인간 상태이긴 했지 만 아직 심장이 뛰고 있던 때 였습니다.) 꼴찌 근처에 서 놀 때에도 항상 가끔씩 심장을 뛰게 하는 야구를 하 던 그 에너지가 좋습니다.
제가 만일 독수리 부리처럼 입을 앙다물던 이정훈의 슬라이딩보다 박정태의 눈물겨운 재활을 먼저 보았더 라면, 스윙으로 벽지를 긁어가며 연습생 신화를 이룩 한 장종훈의 스윙보다, 호세의 퇴장 이후 홈런을 날리 고 홈베이스를 밟으며 헬멧을 땅에 집어던져버리던 그 마해영의 호쾌함을 먼저 보았더라면, 그리고 선동렬을 상대로, 그리고 자기를 버린 해태를 상대로 오기와 설 움을 던지며 노히트노런을 해 냈던 이동석보다, 언제 나 묵묵히 돌쇠처럼 부산의 마운드를 지켜주었던 윤학 길의 피칭에 마음을 먼저 빼았겼더라면 아마도 지금 저는 사직에서 신문지와 쓰레기봉다리를 흔들며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들보다 전자들을 먼저 보고 마음을 빼았겼 기에, 2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부산 출신 친구들의 핀 잔에도, 사직에서 한화 응원을 하다가 간혹 들리는 술 취한 아저씨들의 욕설에도, 당연히 부산 사람이니까 롯데 팬이겠지 하는 주변 회사 동료들의 선입견에도, 택시 기사 아저씨들의 롯데 예찬에도 저는 한화의 팬 입니다.
올해는 더욱 신나고 있습니다. 5월 첫째 주 한화와 롯 데의 경기가 사직에서 있네요. 또 보러 가서 목이 터져라 한화를 응원해야겠습니다. 가끔 들리는 욕설 정도야 이젠 귓등으로 흘리는 내공 도, 그렇게 응원하고 나서 롯데가 진 후 혼자 기쁨을 즐 기며 조용하고 잽싸게 빠져나갈 줄 아는 요령도 생겼 으니까요.
부산에서, 부산 사람이 롯데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 가끔 핀잔도 견디고, 선입견도 견디고, 그러다가 가끔 욕설도 감내해야 하는 것 그래서 더욱 더 그 팀을 사랑해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