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따가운 사실들로 주단을 깔아볼려고 합니다
대중은 자본주의의 고객이다
대중은 정치인의 호구다
대중은 미디어의 노예다
꽤나 도발적인 이 문구들은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면멸히 관찰하면 쉽게 도출할 수 있는 결론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대중문화라는 것이 발생했을 때도 대중에게 겨냥된 시선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중문화란 대중의 대부분인 노동자들의 담배같은 역할을 해봤습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여흥을 느끼고 다시 일터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일이 힘들어지면 다시 여흥에 몸을 맡깁니다. 그리고 이 굴레는 제자리에서 반복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탈정치화라고 표현하더군요.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 '아일랜드'를 아시는지요. 이 영화 속의 복제인간들은 수조 밖 공기를 마시기 전에 오랜 시간동안 티비 속 이미지와 암시에 노출됩니다. 대중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차트 음악들을 듣거나 베스트셀러로 등록된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이를 부정하기 힘들게 됩니다. 컨텐츠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것들을 축적해놓고 봤을 때,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너무너무도 강력한, 일종의 암시덩어리가 발견이 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굴레 한 칸 밖에서 대중을 끌어올려보려는 사람들은 실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정치인 그 이상의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떠나버리거나, 스타 그 이상의 스타였던 사람이 단 한 건의 스캔들로 매장되었을 때... 여러분도 한 번 이상은 느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사실이라면 저도 대중에게 관심을 더 갖지 않았겠죠. 이제부터 역전의 문구들을 다시 깔아보려 합니다
대중은 혁명의 유전(oil field)이다
대중은 결국 진리가 전파되는 매개이다
대중은 지렛대 위의 거대한 돌이다
지식인들이 정신적 자위로만 평생을 살 생각이 아니면 대중에 대해 경멸만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식인은 지렛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지식인은 불을 옮기는 사람입니다. 지식인은 빛을 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중이 없으면 빛은 퍼지지 못하고, 대중이 없으면 불은 위선의 궁전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대중이 없으면 갇힌 원을 비틀어 나선형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지식인은 대중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도하 작가가 '발광하는 현대사'의 후기(동영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중은 자기의 원수이면서 애인이라고. 그런데, 지식인에게 있어 대중은 복합적인 존재이지만 대중은 그 자체로도 복합적인 존재입니다. 대중은 비겁자이면서 동시에 전사가 됩니다. 그들은 때로는 대의를 외치는 자를 입으로 깔아뭉겝니다. 그러나 한 청년이 최루탄에 맞아 죽자 그들은 신념을 들고 거리로 나옵니다. 대중은 마녀사냥을 하는 자이면서 스스로 피흘리는 순교자가 됩니다. 그들은 언론의 화형식을 불구경 끼듯 거듭니다. 그러나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도시로 쳐들어오자 그들은 기꺼이 총을 들고 도시를 사수합니다. 대중은 거대한 행성처럼 예측가능한 움직임을 보일 것 같지만 양자역학처럼 불특정한 움직임도 보입니다(이과드립...). 이 두가지 사실이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며 우리는 대중을 바라볼 때 두가지 모두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대중의 단면성만 보이지 않느냐구요? 확실히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서두를 저렇게 과격하게 쓴겁니다 알맹이를 보려면 껍질부터 깨야하니까요. 미디어와 비즈니스라는 꺼풀을 벗기면, 이데올로기와 유행이라는 장막을 걷어내면 그 무언가가 관찰되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대중의 심연이란 것이 꿈뜰대었고 그것이 별의 폭발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과거형이죠. 이제 옛날 음악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요
2.
70~80년대 대중음악의 분위기는 다방에서 퍼지는 음악이랑 통기타 옆에서 퍼지는 음악으로 나뉘었습니다. 후자의 것은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거액을 들여 유포하지도 않았는데 다들 '아침이슬'을 부르고 또 전파했습니다. 밤무대에서 외치던 '행진'이 만인의 거리에서 울려퍼졌습니다. 그 때 세상은 한번 바뀌었습니다. 격동의 시대라고 전 표현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문화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문화였습니다. 일반적인 산업문화론을 뒤집는 일이었죠. 그리고 그것은 현상이었습니다. 위에 몇개 곡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발표된 중요한 음반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그 음악들은 대중을 잠깐 위무하고 다시 일터로 보내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방향에 따라 대중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기존의 수로를 벗어나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로 세상은 또 크게 바뀌었습니다. 서태지가 등장했습니다.
여러분이 30대이시면 불편하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요, 90년대 초를 저는 반항의 시대라 불립니다. 어느시대 어느청년이나 반항을 했지만 이 때의 반항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서태지가 그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면 '삐삐밴드'(안녕하세요)나 'H2O'(오늘 나는), '패닉'(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등의 노래들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종잡을 수 없는 신경질증을 무의식 중에 내포하는 듯한 음악들... 구조적으로 반항의 시대는 그 전과는 자본적으로 비교가 안되는 매스미디어, 대형기획사가 음악계에 들어오기 위한 발판이기도 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반항과 거대자본, 이 두개가 절묘하게 맞물려 기존의 가치들이 재개발하듯 거의 계승되지 않고 밀려났습니다. ♪'하나음악'의 분해가 그 상징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음악은 멸망했다...........(죄송;)
♪'하나음악'이라는 음악공동체는 '동아기획'을 전신으로 합니다. 조동진, 장필순, 들국화, 시인과 촌장 등등, 80년대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증거 그 자체였던 것이 '동아기획'이라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 '하나음악'은 조동익(조동진 弟), 장필순 등이 이끌어가다가 재정문제로 2000년대 초 문을 닫습니다. 희망적인 소식은 '하나음악'이 '푸른곰팡이'로 이름을 바꾸어 2010년대 초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반항의 시대가 끝나고 거대자본이 음악시장을 지배하면서부터 이미지와 암시의 음악이, 티슈위로 같은 음악이 수면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흐름이 저변에서 나타났습니다. 인디의 태동입니다. 인디의 발생은 마치 퀑과 전사체(만화 '덴마'를 아시나요)의 존재처럼, 빛이 비춰진 곳에 그림자가 생기듯 이루어졌습니다. 인디는 주류와 평행을 이루며 음악 산업 아랫물결을 차지했습니다. 이 인디음악들은 반항과는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초기인디음악을 대표하는 '델리스파이스' 데뷔작은 이를 잘 드러냅니다. 내성적인 비꼼 같은 것이 곳곳에서(가면) 느껴집니다. 저는 90년대 후반부터의 음악계를 냉소의 시대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까진 음악의 저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회적인 은유와 풍자로 등장했다가 2000년가 지나가면서 점점 의식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나머지는 가벼움으로 채워졌죠. 대신 인디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장기하를 필두로 인디 음악들은 어떤 '가벼움'과 어떤'의문'을 가지고 수면으로 올라왔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이 둘을 너무도 잘 혼합해보여주죠.
아직은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는데, '버스커버스커'를 보아 인디는 이런 방향으로 수면 위쪽에 안착할 듯 합니다. 여기서 갈랫길이 나뉩니다. 이 '의문'은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수면 위에 남아서 사람들을 건드릴 것인가. 그건 대형기획사의 태도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대형기획사의 태도는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죠. 그걸 토대로 판단하면 결론은 부정적입니다. '의문'은 결국 가라앉는다 이겁니다. 그리고 아래 쪽에선 또 다른 흐름이 나타날 겁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이번 흐름에서는 비로소 대중이 다시 빛을 나르는 자, 위선의 궁전을 무너뜨리는 자, 갇힌 원을 비틀어 나선형으로 바꾸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보다 더 나빠질수록 순교자들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처럼 굶어죽는 음악인, 예술인이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징후가 보이지 않습니다. 신이 죽고 예언자가 사라졌지만 징후를 느끼는 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죠. 다가올 시대를 느끼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려면 징후를 읽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대중 아래서 일어나는 그 무언가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대로 계속 음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벼움의 시대'가 지속되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감이 부족한 탓일까요. 어쩌면 여기까지가 이 글의 한계일 수도 있겠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