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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제령 사무소 10
게시물ID : panic_507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26
조회수 : 123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6/19 22:27:10
오지 말아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이미 발걸음은 하우스로 향했다.
원래 나는 도박의 ‘도’자로 모르게 사는 사람이었는데... 무언가 나를 자꾸 도박장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근 한달 동안 이 곳에 쏟아 부은 돈이 자그마치 내가 삼십여 년 동안 일을 하며 모은 돈의 갑절이 넘었다. 오늘도 집을 나서는데 마누라가 맨발로 뛰쳐나와 그깟 돈 그냥 장인어른께 달라고 할게요하며 나를 말렸지만 나는 강하게 뿌리치고 나왔다. 나는 데릴사위로 장가와 삼십 년간 처가의 눈치만을 살피며 살았다. 이제 더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오늘 딱 한번 더 해서 여태 잃은 돈을 모두 만회한 후, 나는 손을 털 작정이다.
 
지금 내 안주머니에는 내 집을 담보로 끌어 모은 사채 돈이 있다. 이번만, 이번 딱 한번만 행운의 여신이 나를 보고 웃어준다면 나는 절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만약 오늘마저 돈을 잃게 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머리를 흔들어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고 하우스의 문을 열었다.
 
평범해 보이는 호프집 안에 있는 화장실 옆의 창고 문을 열면 바로 뒤에 붙어있는 하우스의 출입문이 보였다. 대규모의 도박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불법이기에 이렇게 들어오는 입구를 남모르게 만들어 놓았다. 이 곳에 드나든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서 안의 풍경은 내게 편안함을 주기까지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사람들이 다 모일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안주머니 근처를 더듬어 돈을 확인 한 후, 구석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자욱한 담배연기. 그 사이로 이 하우스의 총 관리인 역할을 하는 남자와 그 옆에 그를 지키고 있는 세 남자. 그리고 한 명의 다른 남자가 보였다. 그 둘은 귓속말로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데 엿들어볼까 하다 지키는 사내의 노려보는 눈빛에 그냥 관두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완전 풋내기라던데.”
“내가 조사해봤는데 돈은 많은 거 같더군. 오늘 아주 재미있어질 거야.”
“게다가 영도 아주 싱싱하던데..?”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던 두 남자는 갑자기 기분 좋게 웃었다.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처음 보는 남자 두 명과 한 여자가 들어왔다.
“잠깐, 여기 여자는 출입금지야. 우리 하우스는 룰이 빡빡하다고.”
“이 여자는 내 담보야. 여기서 한밑천 잡으면 모를까.. 다 뜯기면 여자라도 걸고 나와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을 듣고 앞을 가로 막던 두 남자가 그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답했다.
“좋아. 이 정도면 허가해주지.”
그 남자를 따라온 여자는 언뜻 보기에도 농염한 매력을 풍겼다. 지극히 동양적인 얼굴에 풍성하고 짙은 갈색 웨이브 머리가 묘한 느낌을 풍겼다. 게다가 짧은 민소매 원피스 밑으로 보이는 매끈한 다리는 자꾸 내 시선을 끌었다.
 
오늘의 딜러인 관리인 남자가 자리 배치를 해주었다. 동그란 테이블에 그 남자를 중심으로 나, 새로 온 한 남자와 그 여자를 데리고 온 또 다른 남자. 그리고 아까 관리인과 얘기하던 그 남자 – 순으로 자리를 잡았다.
 
*
 
'아까 내가 한 말 잊지마. 그리고 룰은 다 외운 거야?”'
'아잇, 자꾸 찌르지 마요 누나. 이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시끄러워. 풀하우스랑 스트레이트랑 뭐가 더 높다고 했지?'
'스..스트레이트?'
'야! 어떻게 스트레이트야! 풀하우스지!'
- 안나. 정말로 들키고 싶은 게 아니면 조용히 해라.
'호우 넌 조용히 몸이나 제대로 숨기고 있어! 아, 정말. 이 녀석 완전 닭대가리네. 그럼, 플러시랑 풀하우스 중에는?'
'프..플러시?'
'아아아아악!!'
 
*
 
딜러가 칩을 나누고 카드를 돌렸다. 스페이드 7과 하트3, 그리고 클로버 잭. 나는 그냥 습관으로 스페이드를 열어 놓았다. 늘 스페이드를 열어놓는 것 - 이것은 내 버릇이었다. 딜러가 카드를 돌렸다. 내 앞에 스페이드 3이 놓여졌다. 평소라면.. 한번쯤 버텨보겠지만, 오늘은 마음먹고 온 이상 가망 없는 판은 그냥 돌리기로 했다. 나는 작은 패를 들고 버티는 걸 못한다. 선천적으로 도박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늘 매사에 소심하기 때문에.. 아마 그래서 내가 늘 지는지도 모르겠다.
 
*
 
은호가 카드를 받는 사이 나는 사람들을 둘러 보고 있었다. 은호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은 세든 약하든 모두 비령(費靈)이었다. 인간으로 분한 비령이라.. 재수가 좀 없군. 저 녀석들은 날 때부터 무언가 내기를 하게 되어 있는 영들이다. 그러니 내기를 해서 이기지 않고서는 제령 시킬 수 없었다. 게다가 딜러 녀석은 첫 판부터 계속 속임수를 쓰고 있었다. 아주 등껍질까지 벗겨먹을 작정인 것 같았다. 작게 탁탁거리며 바닥을 치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은호 녀석이 다리를 떨고 있었다. 나는 하이힐로 살짝 그 녀석의 정강이를 찍어줬다.
‘그만떨어! 개심부(開心符) 떨어지겠어! 그리고 집중해!'
‘아, 아야, 집중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포커란 게 확률게임이잖아요!.’
‘확률게임? 누가 포커보고 확률게임이라든?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집중이나 해.’
 
*
 
벌써 카드가 여러 번 돌았지만 베팅을 걸 만한 대물은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투페어 정도 만이 들어왔다.
“카드를 바꾸시겠습니까?”
“..........”
나는 과감히 다 바꿨다. 딜러가 새로 꺼내주는 다섯 장의 카드를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열었다.
카드를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
 
‘저건 분명히 스트레이트야.’
- 그걸 어떻게 알지?
‘은호한테 마운틴이 들어왔어. 베팅 판을 올려서 한번 크게 따주게 한 다음에 싹 긁어가려는 심산이야. 아마 저 사람과 은호를 빼고는 다 한패일걸?’
- 흠.. 도박이란 그런 건가?
‘그렇지 뭐.. 아슬아슬하게 은호를 이기게 해서 저 사람에게 불을 붙이려는 거지.’
역시 내 예상대로, 저 소심함이 얼굴에 가득 드러나는 남자와 은호를 빼고는 다 죽었다.
둘은 신경전을 벌이며 베팅을 했다.
“10 받고, 20 더.”
“..20 받고 20 더.”
저 남자는 손톱을 깨물며 긴장하고 있었다. 저런, 저런 행동은 포커판에선 금물인데 말이야.
“자, 이제 카드를 오픈 해주세요.”
남자의 표정이 흥분되어 있었다.
“스트레이트야! 스트레이트!”
은호가 얕게 숨을 내쉬고 카드를 뒤집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마운틴입니다.”
 
스트레이트를 기점으로 그 남자는 내리 몇 판을 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절망이 스쳤다. 저런.. 난 저런 표정은 질색인데 말이지. 만약 내가 지금 계속 시간을 끌면 저 남자는 돈을 더 뜯길 거고 그러다 혀라도 깨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제 곧 은호가 왕창 뜯길 시간이 올 것이다.
‘호우, 이제 하자.’ 
- 그래. 시작해.
 
*
 
쾅!!
 
갑자기 누군가 테이블을 걷어찼다. 깜짝 놀라 보니 한 남자를 따라 온 그 여자였다. 그녀는 기세 등등하게 테이블을 엎고는 딜러 앞으로 가 딜러의 무릎 위에 발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여자를 끌어내려 세 남자가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그녀와 같이 온 남자가 셋을 순식간에 바닥에 엎어 버렸다.
“나와.”

여자가 딜러를 보며 말했다. 딜러는 무덤덤하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봐. 우리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자구. 어서 나오라니까?”
그 여자를 빤히 보던 딜러가 대답했다.
“..지안나?”
“굿. 나를 알아보는 걸 보니 지령 중에서도 제법 세상물정을 아는 녀석이로군.”
도대체 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안나라는 여자는 누구며, 또 지령은 무엇인가.
“근데.. 온실 안의 아가씨가 이런 지저분한 곳은 어인 일로?”
남자는 슬슬 비꼬는 말을 던지고는 담배를 하나 빼 물었다.
“온실 안의 아가씨라. 처음 듣는 말이지만 썩 나쁘진 않군.”
여자는 다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끄윽..”
“이제 알았겠지만, 내 지금 온몸은 영기가 꽉 차다 못해 흘러 넘치고 있어. 이렇게.. 발을 살짝 비트는 것 만으로 너에게 고통스런 타격을 줄 수 있지.”
“아, 아악!”
“내가 너와 내기를 해서 이기지 않고서는 너를 제령 시킬 수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롭혀 줄 수는 있어.”
“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미안. 너한테 어떤 원한이 있는 건 아냐. 다만 저 남자의 부인으로부터 거액의 의뢰를 받았을 뿐이지.”
그녀는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 남자가 나라구? 내 부인이 무슨 의뢰를 했다는 거지?
“자.. 이제 나랑 한 판 하자. 너는 너와 네 부하를 걸고, 나는 나를 걸겠어.”

하우스 안은 아까와는 180도 상황이 바뀌었다.
다시 일으킨 테이블을 중심으로 딜러와 지안나라는 여자, 둘이 앉아서 무슨 이상한 언어가 쓰여진 계약서를 작성하고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둘 사이의 공기가 섬찟했다. 그 사이에 있는 것 만으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은호, 카드 꺼내.”
은호라는 남자가 재빨리 안주머니에서 새 카드 한 벌을 꺼냈다.
“뜯어.”
지안나라는 여자는 놀랍도록 침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딜러는 은호가 한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녀석은 도박엔 젬병이야. 당연히 속임수도 없지.”
“...좋아.”
“게임은.. 블랙잭이야.”
“누나 나 블랙잭이 뭔지 모르는데..”
“그냥 잘 섞어서 너부터 카드 돌려. 총 두 장씩 주면 돼.”
 
*

은호가 카드를 섞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내가 이틀 동안 손이 부서지도록 셔플 연습을 시켰는데도 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호우가 지령 뒤에서 지키고 있어서 속임수는 없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야, 옷 벗어.”
“나를 말하는 거냐?”
“그래, 웃옷 다 벗어. 그리고 은호, 카드 주기 전에 저 녀석 앞 테이블과 의자 샅샅이 뒤져봐.”
내 말대로 뒤지니 다양한 뒷무늬를 지닌 카드가 우수수 떨어졌다.
“너, 지금은 봐주는데 한번만 더 까불다 걸리면 게임이고 뭐고 없이 너 질 때까지 내가 쫓아다닌다.”
지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슬슬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자, 그럼 카드 돌리겠습니다.”
사악, 사악,
쥐 죽은 듯 고요한 방 안에 카드를 돌리는 소리가 얕게 울린다.
카드를 한 장 열었다. 이건 하트 에이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하트 4 였다. 난 이렇게 한 장을 더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 지가 애매한 이런 때가 제일 싫다. 눈을 흘끗 들어 보니 지령도 역시 애매한 숫자를 받은 것 같았다.
 
“한 장 더”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지령이 한 장 더 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나도 한 장을 더 받았다.
 
“나도 한 장 더”
이번엔 클로버 2가 들어왔다. 합이 17, 아니면 7.
 
“한 장 더”
내친김에 한 장 더 받았다. 스페이드 10이었다.
‘정말 미치겠네. 결국 제자리잖아!’
- 응? 뭐라고?
‘됐어. 넌 그 녀석이 헛짓 못하게 감시나 잘 해줘.’
지령을 보니 그 녀석은 이미 카드를 덮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만족할 만한 수가 나온 모양이었다.
‘어쩌지. 한 장 더 받아, 말아.’
찰나에 수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저 놈이 단판 승부에서 어중간한 숫자로 배짱을 튕길 리는 없고… 분명히 21에 거의 가깝거나 21일 텐데.. 17..17..은 무리야..’
한번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한 장 더!”
은호가 카드 한 장을 건네 주었다.
‘제발.. 제발..’
 
내가 연 카드는 다이아 5였다.
 
“이런 제길!!”
지령이 내 표정을 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게임은 끝났군. 지안나씨.”
펼친 카드에는 스페이드 에이스와 10 그리고 다이아 8이 있었다.
“어디.. 지안나씨 카드도 좀 볼까..?”
난 내 카드를 열어 보여주었다.
 
“큭큭.. 네 운도 여기까지군.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당신은 젊고 아름다우니 쓸모가 많겠어.”
 
“누나, 이제 끝난 거에요?”
 
지령의 말을 듣고 있던 은호가 말했다.
“나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나는 카드 안 열어요?”
“뭐?”
은호 앞 테이블을 보니 은호가 카드를 돌리며 받은 은호의 카드가 있었다. 갑자기 눈 앞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잠깐, 아직 안 끝났어. 딜러가 이기면 모든 게 다 딜러에게 가는 건 알지?”
지령이 잠시 움찔했지만 은호의 도박실력을 생각하고는 안심하는 듯 했다.
 
“좋아. 단, 카드는 더 받지 말고 그냥 열어. ”
“좋아..”
나는 마지막 기대를 걸고 은호 앞의 카드를 열었다.

은호의 카드는 하트 잭과 다이아 10 이었다.
 
*

“아이구.. 어쩐지.. 그랬었군요.”
“네, 이젠 지령들도 다 청소했으니 다시 도박하시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 생전 도박 따윈 안 했는데...”
의뢰인의 남편은 멋쩍게 웃으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나는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 한 후,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은수의 가게로 돌아갔다.
 
“근데 누나. 누나는 도박 좋아하나 봐요?”
“나? 글쎄. 도박이 아니라 돈이 좋은 거지.”
“그런건가?”
“암튼, 다음 건은 뭐지?”
“아, 어떤 꼬마애가 자기 인형이 밤마다 달려든다고 쫓아달라고 의뢰했어요.”
“그걸 받았단 말이야?”
“네”
“..너, 순진한 거니 아님 얼빵한 거니?”
더 잔소리를 해주려다 소용없을 거 같아 그냥 참았다.
 
오늘은 차가 밀리지 않아서 좋았다. 벌써다 싶게 은수의 가게 앞에 도착했다.
은수가 내 전화를 받고 가게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나는 은수를 가족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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