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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에 대한 반박.
게시물ID : sisa_3785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슬슬
추천 : 10
조회수 : 704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3/04/10 17:48:21

http://todayhumor.com/?sisa_378559 


1 원문 링크입니다. 바로 밑에 있긴 하지만... 읽기 편하시라고 적어둡니다.



그럼 반박글을 좀 써보지요. 개인적으로 2번 글은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1번에 대한

반박만을 하겠습니다. 


 "동성애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먼저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이야기했는데 ... 같잖은 얘기입니다. 역사적으로

동성애가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된 것은 현대의 이야기입니다. 정신분석학을 과학이라고

주장할 사람이군요, 이 목사는. 동성애에 대한 학자들의 시각을 역사적으로 분석해보면

그 당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프레임을 그대로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조금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니메데스 유괴'를 읽어보았으면 하는군요.


 이 목사가 고대 그리스 얘기를 하면서 실컷 떠드는 이야기들은 .... 

동성애적 행위를 하는 자 = 동성애자라는 단순화된 논리에서 나올 수 있는 지적들입니다.

현대에서 동성애자는 그렇게 정의되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목사는 섹슈얼리티

에 대한 현대적 개념 없이 저런 단순화된 인식으로 동성애를 함부로 후천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것입니다.


 킨제이 보고서에 의하면 순수하게 이성애적,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다른 말로

극단적인 이성애자, 극단적인 동성애자) 합쳐서 전체 인구의 10%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양성 모두에 대한 성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경우 (엄밀히 말해 저 목사가 그리스의 동성애 문화를 정확하게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저 목사의 말이 온전한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동성애적

행위 > 이성애적 행위' 라는 문화적 압력이 가해진 상황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근현대의

보수적인 사회는 '이성애적 행위 > 동성애적 행위'라는 문화적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고요.


 정리하자면 인간에게는 이성애적 욕망과 동성애적 욕망이 모두 존재하고 (모든 개인이 

이것을 동시에 가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화는 어느 한 쪽을 억압하는 형식으로

존재해왔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욕망(동성애적이든 이성애적이든)은 자연적인 것이고 

어느 한 쪽을 억제하는 문화는 인공적인 것입니다. "욕망이 먼저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동성애가 도시문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후가 도치된 것입니다. 동성애를 핍박

하는 세상에서 동성애자들은 농촌보다는 도시를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한적한 농촌보다 익명성을 보장하고 (군중 속으로 숨을 수 있으므로), 대체로

농촌이 도시보다 보수적이기 때문이죠. 동성애자들이 도시로 모이니 동성애자들의 커뮤니티

가 도시에 존재하고 그들의 문화가 도시를 기반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촌의 모습보다 도시의 모습이 역사로서 더 많이 기록되온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농촌의

동성애자들은 역사에서 '누락'된 것이지, 그 때문에 '전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동물들에게서도 동성애적인 행동 양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굳이 예시를 들기는 

귀찮군요. 조금만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게이 건설 노동자나 게이 조폭은 상상하기 힘들다 ...... 하하. 직업(조폭을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에다가 젠더적인 잣대를 들이대다니 대체 얼마나 고루한 사람인지..

외국에는 게이 경찰관, 게이 군인, 게이 소방관 등 우리가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업

들을 가진 사람들이 커밍아웃한 사례가 무수히 많습니다. 


 오늘 날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에 대한 현대적 견해는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어 형성된다는 것이 정론입니다. 하지만 후천

적 요인이 결합되었다고 해서 이미 형성된 성지향성과 성정체성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장 이성애자인 여러분이 어느날 '그래, 난 게이가 되겠어'한다고

게이가 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토록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팽배한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설명해보십시오. 대한민국이 동성애 청정국이었다고 하는 윤모 목사의 주장은 개소리입니다.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문화적 압력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이 땅에 계속해서 존재해 왔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순수히 문화적 이유로 나타난다면 지구는 진작에 '동성애 청정 행성'이 되었겠지요.


성소수자들은 그들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의

'사회적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하고 차별하면 그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단지 그들은 고통받을 뿐입니다. 


기독교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해야하냐고요? 미국의 보수 기독교가 흑인 노예제를 지지하면서 내뱉었던

근거(?)를 말씀드리죠. "흑인들은 애초에 주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백인과는 다르다. 그들은 열등하게

만들어졌다." 이겁니다. 오늘날에 이런 주장을 하는 미친 목사는 미국 사회에 없습니다. 있다하더라도

잡혀가겠죠. 이미 기독교는 사회와 끊임없이 타협하며, 적절한 형태로 모습과 교리를 바꾸어 가며 생존해

왔습니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 기독교가 자세를 바꾼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 역사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이만 마치면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1. 성지향성이 순수하게 후천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주장은 헛소리다.

2. 제 3자가 동성애를 반대하고 이를 근거로 차별한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3. 그러니까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그만둬라.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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