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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사람사는 세상 펌]
게시물ID : sisa_44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쌀밥먹는돌쇠
추천 : 20/4
조회수 : 481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08/03/11 00:54:44
http://www.knowhow.or.kr/app/bbs/view?meta_id=bestview&list_op=YTo3OntpOjA7czo1OiJsc3RvcCI7aToxO3M6MTc6ImJic19saXN0X2Jlc3R2aWV3IjtpOjI7czowOiIiO2k6MztpOjA7aTo0O3M6MjoiMTUiO2k6NTtzOjI6IjEwIjtzOjExOiJjYXRlZ29yeV9pZCI7YjowO30=&id=3156839dfcd7158c7ab72ed3



저는 80년 중반에 서울에서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한 사람입니다.
많은 꿈을 가지고 서울에 왔지만, 2학년때부터 다른 꿈,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꾸어야 했습니다. 


국민을 죽인 장군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는 부조리한 상황, 뭐라 말했다가는 
잡혀서 고문을 받을 것 같은 공포감을 매일 느끼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병원에 갔더니, 
"머리가 멍하고, 소화가 잘 않되는 이유는 학생이 민주화를 포기하거나, 
정권이 바뀌어야 되겠네요"라고 
40중반으로 보이던 의사선생님이 진담반, 농담반으로 말씀하셨죠. 


눈을 뜨면, 이 땅에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학교에 가면, 양 옆에 도열해 있는 전경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가끔 가방을 조사받고, 뭐라고 한마디 하면, 쌍소리 들어가며, 교문을 
들어가야 했고, 수업시간에도 자유로이 정부가 저지르는 온갖 잘못된 상황을 토론조차 하기를 거부하던
(두려워하던) 교수님들과 우리 자신들을 보면서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의 독재적인 정치 상황을 바꾸는 것은 이루어야 꿈으로 그러나 과연 실현가능할 까 두려운 꿈으로 저에게 자리잡았습니다. 


결국 박종철과 이한열이 죽던 날, 나도 같이 죽었습니다. 
그동안 얌전하게 뒤에서만 지켜보며 대모하는 학생들의 응원꾼이었던 
나는 더 이상 뒤에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대열의 제일 앞에서 죽어라 소리치고, 어떨 때는 모르는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전경들 바로 앞에 누워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밟고 지나가라". 


가끔은 짭새들에게 쫓겨 차밑에 숨어 있기도 하고, 명동에서는 30cm 정도 열려있는 
셔터 밑으로 슬라이딩에서 들어가 도망가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제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천만 오산입니다. 
그저 대모를 하던 당시의 많은 학생중의 한명이었죠. 


그렇게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더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정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룰 수 있을 까? 어쩌면 내가 사는 동안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민주화라는 것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우리를 누르고 있던 상황이 없어진 이 상황을 두고, 
어떤 분은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분들이 계셨던 10년은 단 한번도 누군가가 나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보수언론과 딴나라당의 말을 그들 입으로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반 이후로는 이 소리가 더욱 크게 자주 들렸습니다. 


친일이 뿌리들, 독재의 후예들, 부정부패의 온상들....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재 주변의 사람들이 반복하는 현실.... 


점점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어낸 민주화인데... 
아니 이 사람들이 자꾸 왜들 이러지... 


경제?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실제 생활을 가만히 돌아보기만 해도, 
그리고 조금만 시간을 내서, 경제지표를 보기만 해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을 텐데... 


어느 날 만날 친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단 몇 년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태국 골프 여행을 다녀와서 하는 말이 "경제가 힘들어서 한 두 번 밖에 못 다니겠어... 노무현 이놈 뭐하는 놈인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장님! 10년 전에 가게 테이블 위에서 잠자신 것 생각 않나요?" 
"5년 단위로 사장님 차량과 여행횟수 만 생각해 보세요..." 


대충 5년 단위로 자신의 과거를 살펴 보라고 하면,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러게... 지금 좋아졌지..." 
대부분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는 지 조차 모르고,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그저 평범한 대다수 국민들은 당시 정부가 무엇을 했고,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 가에 대한 객관적 논의 보다는 귀에 들리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러기를 몇 년... 
결국 민주화된 후 10년동안 
저는 우리가 많을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이전에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가두었던 독재의 시절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상식보다는 비상식적 삶이 우대받았던 암울한 시절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정치가 경제를 누르고, 어떤 업체도 하루 아침에 없애 버릴 수 있었던 시절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대부분 버스를 타야했던 우리네 평범한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테니스를 치면 사치스럽게 보였던 우리의 문화수준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일방적 언론 통폐합을 당했던 시절이 있었고, 수많은 해고기자들이 있었던 시절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대통령을 찬양하던 시절이 있었고, 감히 찍소리 못하던 시절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전셋집도 당당했던 우리의 삶의 수준을 잃어버렸습니다. 
10년 이전에 이것도... 저것도... 지금의 10년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힘든 날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돌아본 10년은 
민주화가 발에 걸리는 돌처럼 널려 있게 되었습니다. 
인천공항이 "오메 어디 가시요?", "일본 이라", "어디 가노", "태국~" 이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로 상당부분 채워졌습니다. 
언론이 매일 같이 동네 북 패듯이 대통령을 두들켜 팰 수 있었습니다. 
언론만 아니라 이전에는 숨어서 말하던 나랏님 흉도 우리는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북괴가 북한이 되어, 금강산을 오가고, 공단이 설립되어 기업이 북한땅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신차가 나오고, 가구마다 차가 있어, 이제는 주차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한국도 모자라다고, 엄마아빠 허리띠 졸라 아이들 연수라도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천항이 세계에서 몇 째가는 편리한 공항이 되어, 옛날에는 선진국이라 부러워했던 나라의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더 불편하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잠시만 생각해도 
최근 우리가 겪은 10년은 과거의 많은 세월과는 너무도 달라 
내가 숨을 쉬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참 소화 잘 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소화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부터, 자신의 자식만 생각해서 부정이사, 부정취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금융사기
(누구를 보고 투자를 했을 까요? 새파란 김경준이 보고? 아니죠...)... 
그리고 최근에 꾸려진 장관들의 삶의 족적... 
누가 부자라고 미워합니까? 
얼마나 좋은 부자가 세상에 많습니까? 
부자가 문제가 아니라, 


남들 10년 죽음을 내놓고 민주화를 위해 고생할 때, 
자신의 개인의 명예와 부만 쫓아 살았던 이들, 
자식새끼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미국인 만들어 놓고, 
땅을 사랑해서 수십필지 땅 사러 다니고, 
마누라까지 외국인 만들어 놓고, 이땅의 통일에 대해 어쩌구 저쩌구, 
돈의 가치를 더럽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비리의 원천 삼성의 장학생으로 살았던 이들... 
또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유의 10년 그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왜 이리 불편한 걸 까요. 


성숙한 국민이 있어, 니네들이 어떻게 하든 걱정없어라고 말하기에는 
삶의 족적에서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긴 
이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걱정이 됩니다. 


현재 저는 10인 미만의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던 저를 기억하기에 
노짱님이 말한 수평적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씁니다. 
이윤의 상당 %를 직원에게 돌려, 같이 운영하는 기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찌 기업이 순탄하기만 하겠습니까? 
그러나 회사도 마찬가지로 
천만원을 잃더라도 합리적이면 나나 우리 직원들이 마음에서부터 받아들입니다. 
그래 우리가 잘못했어. 잃는 것이 합당해. 
그러나 부조리한 방법으로 상대에게 1000원을 잃는 것은 더 고통을 줍니다. 
나쁜 인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마음이 편하기는 합리적인 상태에서 천만원 잃어 버리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거죠. 


지금의 정부를 보는 것이 마치 부조리한 방법으로 1000원 보다 훨씬 많은 돈을 잃은 느낌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어찌 되었든 이 정부가 잘 해 나가기를 바래야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노짱님을 비롯한 숱한 많은 사람들이 10년 이전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할 때, 
이들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 지를 똑똑히 알면서 
그들이 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버릇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않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인식과 삶의 버릇을 바꾸기 힘듭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인식과 삶의 버릇데로 국가를 운영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선거때도 도장을 잘 찍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0년은 잠 편하게 자고, 밥 잘먹었는데, 
이제는 최소한 5년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군요. 
마치 나라의 불침범이라도 된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다른 희망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삶의 신선한 향기를 맛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전부터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시골에 가면, 고향의 맛을 느끼기 전에 
중구난방으로 들어선 공장과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들을 손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아직 유럽의 국가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의 장소를 일과 쉼과 생활이 일어나는 곳으로 인식하는 듯한 느낌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곳 같습니다. 


노짱님이 건져 올려 봉지에 넣은 그 쓰레기가 지난 수십년 삶의 내용을 보지 못하게 가린 덮게라 생각되며, 
가려진 덮게를 치우는 일에 저 역시 동참하고자 합니다. 


실제적인 삶의 공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지금 해 나가자, 
그것이 현재 저를 위로하는 말입니다. 


깨끗하고 탁트인 시원한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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