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지구의 비행기를 태양계의 여러 천체들에서 날려 보내면 어떻게 되나요?"
비행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비행기라고 할 수 있는
Cessna 172라고 칩시다. 연료는 산소가 필요한 화석연료 대신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하도록 하죠.
파일럿도 어디서 구해야겠네요.
준비가 됐다면 태양계에서 가장 큰 천체 서른두곳에서 비행기를 떨궈 봅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기가 없어서 곧바로 추락합니다.
비행기가 바로 추락하지 않고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의 대기가 있는 곳은 지구를 제외하면 태양계에서 총 여덟 곳입니다.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죠.
1. 태양
...이게 잘 될 리가 없죠.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는 그 온도가 수십만도에 달합니다. 파일럿의 명복을 빌어줍시다.
2. 화성
비행기 전체에 대한 유체역학 계산을 일일히 실행하는
X-Plane이라는 고급 비행 시뮬레이션이 있습니다. 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 중력, 대기, 행성 반지름을 조정해주면 화성에서의 비행을 체험해 볼 수 있죠,
하지만 화성의 대기는 대단히 옅기 때문에 계속 떠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야 합니다. 이륙하는 데만도 마하 1 이상의 속도가 필요하고 - 이 정도 속도로 계속 이동하다 보면 관성이 너무 강해서 선회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조종간을 돌리면 기체는 회전하지만 방향이 변하질 않는 거죠.
결국, 빈약한 경비행기인 세스나로 화성에서의 비행은 무리입니다. 4~5km 상공에서 떨어뜨린다면 추락하기 전에 어떻게든 기수를 올려서 활강할 수는 있습니다. 음속의 절반 정도의 속도로요. 착륙은 어떻게 할까요?
3. 금성
X-Plane으로 금성의 지옥 같은 환경을 정확히 시뮬레이션할수는 없지만, 계산해보면 대략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금성에서 비행기는 꽤 잘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내내 기체에 불이 붙어 있을 테고, 머지 않아 날지 않게 되고 비행기가 아닌 무언가가 되겠지만요.
금성의 대기 밀도는 지구의 60배입니다. 우리의 세스나는 사람이 달리는 속도로만 움직여도 이륙할 수 있습니다...납을 녹일 정도로 뜨거운 대기 속으로 말이죠. 몇 초 지나지 않아 페인트가 녹아내리며 부품들이 전부 고장날테고 머지 않아 우리의 비행기는 열로 인해 산산히 분해되어 짙은 대기를 가르고 우아하게 땅에 안착할 겁니다.
금성의 구름 위 대기 상부에서 날아다니면 한결 나을겁니다. 금성의 지표면 근처는 끔찍하지만, 55km 상공은 지구와 나름 비슷하니까요. 인간도 방호복과 산소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온도는 상온이고 기압은 지구의 고산지대와 비슷하죠. 방호복이 왜 필요하냐구요? 황산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구랑 비슷하다는 말은 취소.
아무튼 황산 때문에 손상될 수 있는 노출된 금속 부품만 없다면 금성의 대기 상부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기 꽤 좋은 곳입니다.
...대기 상부에서 줄곧 휘몰아치는 시속 250km 이상의 바람에 견딜 수 있다면요. 아까 이걸 말하는걸 잊었습니다만.
금성은 정말이지 끔찍한 곳입니다.
4. 목성
세스나가 날아다니기에 목성의 중력은 너무 강합니다. 직선 비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출력은 지구에서의 세 배...세스나는 결국 시속 1000km에 달하는 속력으로 목성의 대기 속으로 추락해 어느 순간 으깨집니다. 목성은 중심부로 들어가면 기체에서 고체로 매끄럽게 변화하죠. 부딪힐 표면이 없으니 이걸 '추락' 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5, 6, 7. 토성, 해왕성, 천왕성
토성은 목성보다 중력이 약하고 대기가 짙기 때문에, 날아다니기엔 목성보다 낫습니다.. 추위와 거센 바람 때문에 오래 버티긴 힘들겠지만.
해왕성은 가스행성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낫습니다. 특징이라고는 없는 해왕성에 비행기를 보내는 의미는 없겠지만요.
천왕성도 해왕성이랑 비슷합니다. 얘는 그나마 얼어죽기 전에 구경할 구름이라도 있겠네요.
8. 타이탄 (토성의 위성)
이 글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비행에 있어서 타이탄은 지구보다 환경이 좋습니다. 타이탄의 대기는 짙고 중력은 달보다 약합니다. 대기 밀도는 지구의 4배인데 비해 기압은 1.5배밖에 되지 않죠. 우리의 세스나는 엔진 없이 자전거 페달만 밟아도 이륙할 수 있을겁니다.
사실, 타이탄에서는 인간이 행글라이더를 달고 뛰어서 이륙할수도 있습니다. 오리발을 달고 발을 젓거나 날개를 달고 날갯짓만 해도 계속 날아다닐 수 있죠. 오히려 걷는 것보다 더 편할지도 모릅니다.
단점은 타이탄의 기온이 액체 질소와 비슷한 영하 200도라는것. 경비행기의 방열 성능을 고려해 볼 때 우리의 세스나 내부는 분당 2도 정도 기온이 꾸준하게 떨어지겠군요. 타이탄에 착륙해서 사진을 찍은 카시니-호이겐스 탐사선도 착륙 몇 시간 후 추위 때문에 작동을 정지했습니다. 저 사진은 지금까지도 인류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태양계 외곽 천체의 표면 사진입니다.
타이탄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려고 한다면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날개가 얼고, 부서져서 추락해 죽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한테 있어서 이카루스 신화의 교훈은 '인간은 무력하다'가 아니라 '접착제로 밀랍을 쓰지 말자'입니다.
타이탄의 추위는 공학의 문제일 뿐이죠. 제대로 된 준비와 적당한 열원만 있다면...세스나 172도 타이탄에서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