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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바둑史 2-2 (브금)
게시물ID : sports_508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lfl
추천 : 20
조회수 : 143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09/16 18:19:28
2부 1편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388096&page=2&keyfield=&keyword=&mn=&nk=&ouscrap_keyword=&ouscrap_no=&s_no=388096&member_kind= 아이의 눈 보이는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낯선 환경. 새로운 언어. 모든것이 신기할 따름일 뿐 그에게 거는 세상의 기대란 겨우 6살의 나이로는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타고난 천재성. 조남철로 부터 지도받은 엘리트 코스. 그 모든것도 그곳에선 평범할 정도로 천재들이 모였는 곳이었고 달랑 바둘돌 하나를 무기로 전쟁터에 홀로 던져진 6세 아이는 자신이 왜 그곳에 남겨졌는지 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천덕 꾸러기로 자라났다. 툭하면 또래 아이들과 싸움을 해댔고 바둑 공부는 빼먹기 일수 그러나 타고난 천재성은 뚜렷해서 노력에 비해 제법 그럴듯한 바둑을 두곤했다. 계기. 조치훈에겐 바둑을 둬야만 하는 계기가 없었다. 단지 필연적으로 바둑돌을 잡았을 뿐. "왜 나를 일본으로 데리고 온거야!" 어린 조치훈은 자신을 다그치는 형 조상연을 보며 울부 짖었다. "난 일본으로 오고 싶다고 한적 없어! 왜 나를 혼자 이곳에 보낸건데! 왜! 난 한국으로 가고 싶단 말야" 조치훈의 공부가 소홀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무라기 위해 왔었다. 조치훈의 천재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질투가 날 정도로 타고난 천재. 그러나 코흘리개 아이의 절규에 막상 할 말이 없다. 이미 홀로 설 나이인 자신또한 타국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빛나는 천재성에 눈이 부셔서 어린 조치훈이 감당해야할 고독을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상연은 울부짖는 동생에게 아무말도 못한 채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부족한 것. 스승은 그것을 꽤뚫어 보았을까? 조치훈이 8살 되던해 훗카이도 출신 12살 소년이 기타니 문하로 들어왔다. 입단을 하면 필연적으로 기력측정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4살이나 어린 조치훈에게 맡겨 버린다. 2점 접바둑. 어린 조치훈은 연상의 신입생에게 혹독한 신고식을 치뤄줬다. "그렇게 둬선 절대 프로가 될 수 없어" 패배한 연상의 신입생에게 조치훈이 비수같은 말을 던졌다. 첫 만남부터 어린 조치훈은 그를 몇 수 아래로 낙인을 찍어 버렸고, 패배감에 가득찬 신입생에게 조치훈의 이름 석자는 깊게 남겨졌다.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두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67년. "너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 늘 한수 아래라고 여기던 고바야시가 프로 기사 입단에 성공했다. 조치훈은 자신의 입단실패보다 고바야시의 입단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업신 여기던 나이많은 사제를 이제는 선생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 기타니의 노림수는 과연 정확했다. 조치훈에게 필요한 한수를 정확히 찾아낸 것. 이듬해 1968년. 조치훈은 11세의 나이로 일본 기원사상 최연소 프로 입단기록을 남긴다. 타고난 노력파 고바야시는 잠자던 천재 조치훈을 깨웠고, 그때부터 서로가 한발씩 앞서 나가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시작한다. 최초의 한류. 1970년. 조훈현의 신인왕. 한국 바둑계의 속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불이 붙었을까? 1971년. 이듬해. 조치훈이 신인왕에 등극한다. 일본 바둑계는 오청원이라는 거대한 중국의 별 이후 또 한번의 지각변동을 예감한다. 일본 바둑계를 놓고 싸우는 두 한국 기사를... 그러나 조훈현은 귀국했고, 조치훈은 남았다. 홀로 남겨진 조치훈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세상을 향해 외쳤다. "명인이 되기 전에는 한국 땅을 밟지 않겠다"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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