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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홍콩이 중국과 따로 출전하는 이유
게시물ID : humorbest_5088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왓이즈롱
추천 : 87
조회수 : 22599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8/07 20:53:00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8/07 20:10:29

일단 홍콩은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지방정권(특별행정구)입니다.

 

1. 특별행정구란?

 

중국은 22개 성(省, 대만제외)과 4개 직할시 5개의 자치구, 2개의 특별행정구로 이뤄져 있습니다.

홍콩은 2개의 특별행정구의 하나입니다.

 


청나라때부터 중국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성(省)인데, 산동성, 길림성, 광동성과 같은 중국을 구성하는  가장 큰 규모의 일반적인 지방단위입니다. (지도 빨간부분)

 

 

 

자치구라는 건 중국을 구성하는 소수민족 가운데 1개 성에서 소수민족의 역사적 연원 및 구성비율이 일정수준을 넘는 경우 기존 성(省)에 자치권한을 확대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인 북경(베이징), 최대도시 상해(상하이), 수도의 관문인 천진(톈진)과 같은 대도시는 성(省)과 동급인 정부가 직접 다스리는 직할시입니다. 국민당정권시기에는 12개까지 있다가 중공정권 수립이후에는 3개로(지금은 중경(충칭)까지 4개) 줄었습니다. (가운데 지도 까만 점부분)

 

그리고 나머지 2개의 특별행정구가 홍콩, 마카오입니다. (같은 지도 빨간점)

 

 

2. 특별행정구가 누리는 자치의 수준

 

  특별행정구라는 것은 성(省)과 동급이며, 자치구가 가진 자치의 수준을 뛰어넘은 독자적 관세권, 교육제도, 경찰권한 등을 누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세계무역기구와 같은 일부국제기구에는 독자적 관세구역이기 때문에 별도의 대표를 보내고 있으며, 올림픽에도 따로 대표선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자치구'가 누리는 자치가 '민족자치'라고 해서 독자적인 언어사용을 비롯한 민족적 전통계승에 관심을 쏟는 정도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특별행정구'의 자치수준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면 별개의 국가나 다름없을 정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상으로도 홍콩과 마카오는 표준중국어(Mandarin) 이외에 토착언어인 광동어(Cantonese)와 옛 식민종주국의 언어인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아직도 각각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3. 그럼 특별행정구는 왜 생겨난 것인가?

 

이는 중국의 불행한 근대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3-1. 영국령 홍콩의 탄생과 반환까지

 

청나라말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은 여러가지 엄청난 굴욕을 겪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영토의 상실로서, 1842년에 아편전쟁 패배로 영국에 홍콩섬을 할양했고,
이어서 1860년에는 홍콩섬 너머의 구룡반도를 영국영토로 내어줬으며
1898년에는 구룡반도의 나머지 광활한 지역인 신계지를 99년간 조차하게 됩니다.
조차란 쉽게말해 명의만 중국땅이고 실제 지배는 영국이 한다는 말이니 영국땅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도> 홍콩과 마카오의 위치

 

왼쪽 하늘색점선 안의 작은 지역이 마카오,

오른쪽 하늘색 선 안에 색칠된 부분이 홍콩, 그 가운데서

홍콩섬(주황색)과 구룡반도(빨간색)는 영국의 영토이나

신계지(노란색)는 조차지이므로 중국에 반환해야 했습니다. 

 

 

이외에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열강들도 중국에 식민지를 거느렸으며, 명나라때인 16세기부터 해적을 진압한 공로로 마카오를 비공식적으로 가졌던 포르투갈은 1887년에 마카오를 정식으로 식민지로 삼습니다.

 

여기서 독일과 일본이 빼앗은 영토는 해당국이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자연히 중국영토로 돌아왔으며, 프랑스가 통치하던 광저우만조차지도 장개석통치시절인 1946년에 중국으로 복귀했습니다만 유독 영국의 경우 승전국이었고 아직 조차기한이 남아있다는 핑계로 반환을 거부했습니다.

 

장개석정권은 무력으로 홍콩을 탈환하려고 했으나 내전으로 여기에 힘을 쓸 여지는 없었고, 중국은 공산화됩니다. 공산중국역시 홍콩을 무력탈환하려고 하였으나 영국과 일전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큰 탓에 험한 말만 오가는 정도였지요.

 

중국이 공산화 된 후 홍콩은 공산통치에 염증을 느낀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기회의 땅과 같은 존재로,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

 

 

3-2. 홍콩반환협상과 '1국가2체제'

 

하지만 신계지 99년 조차기한인 1997년 6월 30일이 다가왔고, 1970년대부터 영국정부는 이 기간을 연장하려고 중국과 협상을 벌였습니다.

 

사실 영국은 조차기간에 관한 협상이니까 영국의 영토인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협상에서 제외하려고 하였으나 그동안 배후지 노릇을 해온 신계지없이 홍콩섬과 구룡반도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홍콩의 현실입니다.

영국이 가진 카드는 보잘것없었기에 1984년에 영중공동성명으로 홍콩은 공산중국에 귀속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마카오 역시 1987년에 반환협정으로 홍콩과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1984년, 홍콩반환협정문을 교환하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와 중국의 조자양(자오쯔양) 총리

 

이무렵 홍콩증시는 패닉상태에 빠지고 수많은 홍콩시민이 이민을 준비하는 등 탈출을 준비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때 중국정부가 생각해낸 것이 '1국가 2체제(一國兩制)'라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정부가 공산체제를 유지하더라도 홍콩은 향후 50년간 자본주의체제를 보장하며, 중앙정부에서 '총독'을 보내는 것이 아닌 홍콩시민 가운데서 뽑힌 '행정장관이 홍콩을 통치하며(홍콩사람이 홍콩을 통치한다, 港人治港), 국방과 외교를 제외하고는 일체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입니다(마카오도 마찬가지).


이리하여 생겨난 것이 '특별행정구'라는 것으로 홍콩이 중국에 귀속된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특별행정구'가, 1999년 12월 20일부로 '마카오특별행정구'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정부는 이들 지역에 완전한 자본주의체제를 반환 이후 50년간 보장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는 또한 궁극적으로는 대만을 멀지않은 장래에 흡수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물론 대만을 줄곧 거부하고 있죠. 

 

50년간의 체제보장이란 말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2047년 이후의 홍콩과 2049년 이후의 마카오가 특별행정구로 계속 남아있을지의 여부는 중국정부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이기도합니다. 게다가 사실 행정장관을 홍콩시민 가운데서 뽑는다지만 중국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고 있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강택민(장쩌민) 당시 중국국가주석 앞에서 취임선서하는 동건화(둥젠화) 초대 홍콩행정장관

- 중국국가원수가 홍콩지도자의 선서를 받고 있는 모습과

단상의 중국과 홍콩깃발의 크기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홍콩의 관계가 어떠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행정구는 독자의 깃발의 비롯한 상징물을 가지는데, 이 경우 다른 주권국가와의 차이점이라면 관공서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별행정구기를 게양할 경우 반드시 국기인 오성홍기와 같이 게양하며 그 높이는 국기보다 낮게 하는데서 홍콩과 마카오의 한계를 알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홍콩과 마카오는 주권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독자의 법률과 사법체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국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시민권만이 존재하며 미국시민권과 달리 이곳의 시민권은 영주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상의 예로 볼 때 중국과 홍콩, 중국과 마카오의 관계를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의 일부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준독립적 지위를 누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대만과의 관계

 

 외국의 식민지였던 홍콩-마카오와는 달리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중국의 정통정부'를 내세우던 정치적 실체입니다.

 

4-1. 지금의 대만정부가 생긴 유래

 

중국대륙을 두고 한판을 벌였던 두 사나이, 국민당의 장개석(장제스)과 공산당의 모택동(마오쩌둥)

당시 중국의 국가원수는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이었지만 결국 천하는 모택동에게 넘어갔다.

 

본래 중국대륙을 통치하던 장개석정권이 내전에 패하면서 일본에게서 돌려받은 대만으로 정부기관을 이전하면서 대만문제가 생겨납니다. 장개석 국민당정권은 반공을 내세웠지만 고질적인 부패로 대륙 중국인들의 민심을 잃고 내전에서 패배하여 1949년 12월에 대만으로 도피하게되는데, 이에 미국도 장개석을 저버리려는 때에 6.25가 터져서 국민당정권은 미국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하게됩니다.

 

1949년에 모택동이 북경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지만, 이전부터 중국을 통치하던 '중화민국'정부는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영토인 대만에 여전히 굳건한 통치기반을 내려 중공정권은 더 이상 대만까지 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중국땅에 중국의 정통정부를 자처하는 두개의 정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침 냉전시기였으므로 전세계가 두 패로 갈라져 싸우는 동안 UN에서는 중국대표권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원래 중국을 통치하던 정권은 대만으로 넘어간 '중화민국'정부였으므로 대만이 유엔에서 중국대표로 활동하는데 반해, 실제 중국의 대부분을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가 무시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여년을 끌어온 이 문제는 결국 1971년에 '알바니아안(案)'이 통과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대표로 인정하면서 '중화민국'을 축출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대만사람들에겐 엄청난 고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청천백일기와 대만올림픽위원회의 깃발

 

그때부터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중화민국의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적의 깃발인 중국의 '오성홍기'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중화타이베이(Chines Taipei)'라는 이름으로 대만올림픽위원회의 깃발을 들게 된 것이죠. 올림픽때 대만이 '이상한 깃발'을 들고나오는 데는 그러한 사연이 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강력한 입김때문에 대만의 존재를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대만의 생활수준이 중국보다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으로 굴욕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입장때문에 생겨난 것인데, 따지고 보면 전쟁에 졌으니까 그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4-2. 대만과 중국, 홍콩의 관계

 

비록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대만은 독립적인 실체로서 (약소국들이긴 하지만) 23개국과 정식외교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중국도 분단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한쪽(중국)의 힘이 너무 압도적이다보니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합니다.

 

자국을 방문한 아프리카의 소국 감비아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는 마잉주(마영구) 대만 총통

- 중국의 대세에 눌려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대만은 스스로 독립국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서로 왕래하며 이젠 직통으로 왕래하는 단계에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별개의 존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구성하는 1개 성(省)에 불과하다고 보나 대만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수복해야할 영토라는 거지요. 물론 요즘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공화국'으로서 별개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등의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만 대만정부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전체든 일부든) 통치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홍콩과 대만은 준독립적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이 국제적인 인정여부에 관계없이 독립국가를 지향하며 독자적으로 지내온데 반해 홍콩은 식민지 또는 특별행정구의 형태로 특정국가에 부속된 존재였다는 점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홍콩인이 소지한 여권은 홍콩에서 발행한 것이라 하더라도 종주국 또는 외국여권을 갖고 있겠지만 대만인은 중화민국의 여권을 소지한다는 점에 큰 차이가 있겠지요. 특히 홍콩과 대만의 경우 중국대륙과 달리 같은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살아왔으므로 그동안 교류가 활발했지만 그들은 법적으로 엄연한 외국인이거든요. 동포라고 대우를 하긴 하지만.

 

그리고 홍콩의 국가원수 = 중국의 국가원수(후진타오 국가주석)이지만, 대만의 경우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국가원수인 총통(대통령)을 직접 뽑고 있다는 점도 대만의 독립성과 홍콩의 예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홍콩과 마카오라도 그들의 명목상 대표는 중국의 국가원수 '국가주석'이란 말쌈.

 

 

마카오의 경우는 홍콩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서울의 1개 구(區)만한 데라 홍콩과 중국대륙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고, 특히 홍콩에 갈 경우 여권말고 신분증 하나 딸랑 갖고 국경을 넘어다녔으니 홍콩에 준해서 생각하시면 거의 99% 맞을겁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인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503&docId=108310330&qb=7KSR6rWtIO2Zjey9qSDqtIDqs4Q=&enc=utf8



9줄요약


1. 영국이 중국 혼란했던시절 홍콩 뺐어가서 식민지 해버림

2. 홍콩섬은 영국령이지만 신계지를 99년간 조차(땅은 중국땅인데 영국이 관리)하기로 함

3. 영국은 99년후에 다시 반환해야하는데 신계지가 빠진 영국섬은 존속하기가

 힘들며 원래 중국의 땅을 강제로 뺐은거기때문에 명분이 좋지 않음

4. 결국 1984년에 전부 반환하기로 결정

5. 그런데 홍콩주민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다니까 이민간다 난리침 홍콩 경제가 붕괴될판

6. 그래서 중국에서 '특별행정구'라는 것을 도입 '자본주의체제'를 보장하기로 함 '군사'만 빼면 거의 모든것을 다른나라로 취급해주기로 함

7. 또한 '특별행정구'는 대만까지 자신의 속국으로 삼고 티벳등의 소수민족까지 전부 흡수할려는 중국의 시커먼 술수

8. 어찌되었든 홍콩주민들 안정을 되찾음

9. 그래서 올림픽도 따로 나감 중국사람들 홍콩갈때 비행기도 국제편으로 타야한다고함


1줄요약


-> 같은나라이지만 다른나라처럼 삼




제가 궁금해서 찾아봤던건데 아주 훌륭하게 설명해놓은것이 있어서 오유여러분도 공유했으면 하는 생각에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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