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묘한 감정이 생기는....
게시물ID : humorstory_1049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닭마의저주
추천 : 2
조회수 : 47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5/09/07 20:16:45
"아들아, 반장 포기하면 안 되겠니?" 
 
[오마이뉴스 2005-09-07 10:21]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2005 이정희 
한 학기가 마감될 무렵인 지난 8월 막바지 어느 날 저녁, 아내보다 조금 이른 퇴근을 한 내게 아들 녀석이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자기반 친구한테 받은 것이라며 조그만 쪽지를 내밀었다.

"반장 된 것을 축하해… ○○이가"

그랬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들 녀석이 덜컥(?) 반장에 당선했던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당연히 축하해줄 일이었으나 그 순간 부자 사이에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시시때때로 '어머니, 아버지는 맞벌이 하느라 바빠서 학교 회의에도 못나가고 하니까 너희들은 절대로 반장 같은 거 하면 안돼 알았지?'라고 농담을 빙자한 진심을 이르곤 했다. 

그때마다 아들 녀석 또한 웃으며 "네 알았습니다" 농담처럼 대답하곤 했다. 그랬는데 오늘 아들 녀석은 이러한 부모의 간절한 여망(?)도 무시한 채 반장 출마 거사를 단행했고 마침내 당선한 것이다.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엔 만감이 교차하며 신속한 대응 멘트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러나 침묵도 잠시 나는 아들 녀석을 번쩍 안아 올리며 말했다.
"그래 잘했어, 정말 축하한다. 우리 아들이 반장이 되었구나."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아이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뿐이었다(사실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억지를 부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런 나의 태도를 본 녀석은 안도가 되는지 "정말이세요, 아버지? 저 반장해도 되는 거지요?"라고 되묻는다. "물론이지. 아주 잘했어. 친구들 도와주고 열심히 하려무나" 나의 대답을 들은 아들은 신이 나서 놀이터로 나갔다. 

반장 포기를 종용하는 어처구니없는 부모

아이가 놀이터로 나간 후 나는 퇴근하여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내에게 난감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건넸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당신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사고 쳤다네!"

아내가 정색하여 다가서며 물었다. 
"사고라니 무슨 일인데? 웃지만 말고 빨리 말해 봐." 
"아, 글쎄 이놈이 부모 말을 거역하고 오늘 반장에 당선되었대."
"뭐야! 난 또 깜짝 놀랐잖아. 그런데 그놈은 왜 부모 말을 안 듣고 그런대." 

   
 
▲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 학교행사 참여는 대부분 할머니의 몫이었습니다. 2004년 큰아이 입학식날 할머니와 아이들  
 
ⓒ2005 이정희 
아내는 일단 사고가 아니란 것에 안심을 하면서도 싫은 것은 아니지만 걱정이 앞서는 표정이다. 

우리 부부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우리는 지난해 첫 학부형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큰 아이(오늘 반장이 된 녀석)가 1학년을 다니는 동안 입학식에 한 번, 운동회 때 한 번 학교에 잠깐 들러 사진 찍고 점심 같이 먹었던 일이 전부였다. 학부형으로서 학교행사나 모임에 전혀 신경 쓸 일이 없는 줄 알고 1년을 지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올해 다시 연년생 둘째 딸이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때까지 한글 읽고 쓰기가 서툴렀던 딸아이 때문에 나와 아내는 선생님과 자주 상담도 하게 되었고 특히 아내는 자연스럽게 자모회 모임에도 몇 번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모회 모임이라는 것이 맞벌이 하는 엄마가 참석하기엔 녹록치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 학교의 자모회는 교통지도, 청소지도, 학습 도우미 등을 담당하는 이른바 치맛바람과는 관계없는 봉사활동이 전부였지만 대부분 일과 중에 이루어지는 활동이 많아 아내는 실제 활동에는 전혀 참석을 하지 못했다. 

특히 아내는 그 과정에서 반장 어머니의 할일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윽고 우리 부부는 은근히 아들에게 아예 반장 같은 것을 꿈도 꾸지 말 것을 세뇌시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당신은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하지. 반장 엄마가 얼마나 부담되는지 알기나 해? 그나저나 이놈은 왜 오버해 가지고 걱정을 만드는 거야 도대체. 보나마나 아빠 닮아가지고 친구들이 부추기고 추천하니까 우쭐해서 한다고 그랬을 거야."

이윽고 한참 저녁준비를 하며 고민하던 아내가 한마디를 남긴다. 
"그래도 어떻게 이왕 뽑힌 거 축하해줘야겠지?" 
아내는 한참만에 내가 바라던 결론은 내렸다. 그러나 괜스레 상관없는 나까지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아 심기가 그리 편치만은 않은 듯하다.

얼마 후 놀이터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아직 엄마가 내 당선 소식을 모르는 것일까'라는 눈빛으로 엄마 눈치를 살피다가 아무 말이 없자 전화기로 가서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
할머니 저 오늘 반장으로 뽑혔어요. 그런데 엄마가 바빠서 반장 못할지도 몰라요…."

전화를 끊고 저녁상으로 다가오는 아들에게 아이엄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어머니 말 안 듣고 반장되었다며? 그런데 아들. 어머니를 위해서 반장으로 포기해주면 안 되겠니?"
(역시 능글능글 웃으며) "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어머니." 
"알았어, 대신 아이들 열심히 도와주고 잘 해야 된다. 알겠지?"

그러자 녀석은 신이 나서 제 어머니 볼에 뺨을 비비며 연신 고맙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렇게 녀석의 반장 당선 거사는 아들의 승리로 마감했다.

고마우신 담임선생님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아내는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수업시간과 겹친 것인지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그날 저녁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 우리는 다시 한 번 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 녀석의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어서 다행이었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 위해 열심히 봉사하거라.  
 
ⓒ2005 이정희 
담임선생님 말에 따르면 녀석은 어제 반장선거에 자신이 추천을 받자 근심어린 표정으로 담임선생님에게 말하기를 "어머니가 바쁘셔서 저는 반장을 못할 것 같아요" 하더란 것이다. 

이에 담임선생님은 "반장 하는 것 하고 어머니 바쁘신 것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란다. 어머니 학교에 안 나오셔도 되니까 네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노라고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이어서 아내에게 말하길 "반장은 아이가 하는 것이니까 어머니도 학교 봉사활동에 대한 부담감을 전혀 갖지 마시라"고 했다. 

순간 아이의 기분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우리식대로 밀어붙이려 했던 일들이 더욱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녀석의 반장 사퇴권유 해프닝은 이틀만에 마감을 했다. 

그러나 부모의 편협한 마음이 그동안 어린 가슴에 상처를 주지나 않았을까 미안한 맘이 그지없다. 또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격려해주고 전화까지 주신 담임선생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아들! 정말 미안하구나 어머니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친구들을 챙겨주는 심부름꾼 같은 그런 반장이 되길 바란다.
반장된 것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미안한 어머니, 아버지가….
 
네이버 펌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